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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Nov 22. 2024

<CCTV가 있다면>

 선미 부부는 접는 자전거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계단식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공간에서 자전거를 폈다.

자전거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비어 있었다. 사람이 탄 경우는 짧은 시간이지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자리 배치가 필요하고, 타고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선미 부부는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와 분수대 앞에 섰다. 분수가 설치되었지만 여름이 지나자 작동을 멈췄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선미는 남편 준호에게  물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선미 부부는 다양한 경로로 자전거를 탄다.


"이번에는 퇴계원으로 갈까? 한강을 지나 왕숙천길을 달려 퇴계원역까지. 지난번처럼 봉선사까지 가지 않고 이번에는 왕복으로."

선미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광릉 수목원 부근 봉선사에서 별내역까지만 달린 후 지하철을 타고 점핑했었다. 남편 준호는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달려서 지하철이나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을 선호했다. 선미는 적당히 달린 후 왔던 길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것이 점핑하는 것보다 좋았다. 사실 선미는 점핑하는 게 싫었다. 몸에 딱 붙는 자전거복에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끌고 지하철 역에 들어서면, 자신이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별로 신경을 쓰거나 쳐다보지 않았지만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그러면, 지하철 역 안은 조명들이 켜있어도 컴컴했다. 답답해서 얼굴 가리개는 내려도 선글라스는 써야 민망함을 어느 정도 덜을 수  있었다. 선미는 주말을 이용해서 자전거를 타기 때문에 지하철 첫 번째 칸 자전거 거치대에 자전거를 세우고, 좌석에 앉아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준호는 앉아서 편하게 집에도 가고 먼 거리를 달렸다는 만족감이 있어서 점핑이 좋다고 여러 번 말했다. 준호는 같은 길을 달리는 것을 지겨워했다. 선미는 준호가 길을 잘 기억해서 그런 것 같았다. 선미는 길치였다. 여러 번 간 길들도 항상 새로웠다.  그래서 선미는 길눈이 밝은 준호를 따라다녔다.

 두 사람은 달리는 경로를 정할 때 가벼운 신경전을 벌인다. 지난주 집으로 돌아올 때,   선미는 전철에 앉아 제발 다음에는 자전거로 왕복하자고 준호에게 툴툴거렸다. 아무리 자전거 칸이라도 보행자들이 더 많았고, 자연스레 여러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

평소 자전거 없이 탈 때보다는 확실히 눈이 많이 마주쳤다. 선미는 선글라스를 안 벗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물러났다. 그래도, 선선하지 않았다. 햇빛이 강해서인지,  선미는 도톰한 옷을 입었더니 땀이 났다. 그래도, 옷을 얇게 입기에는 온도가 적절치 않아 그냥 출발했다. 달리기 시작하니 온도가 맞았다. 가을 길을 달리니 억새들이 바람 부는 방향을 알려줬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온다. 속도가 붙고 편하게 달렸다.


바람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는 건 힘든 일이다. 작년 늦가을에 인천 쪽으로 한강 자전거 길을 달릴 때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달리느라 혼났던 기억이 났다. 속력도 나지 않은 데다 두 귀 속까지 찬 바람이 들어와 얼굴 안 비강에서 만나는 것 같았다. 머리가 바람에 관통되는 느낌이었다. 아라뱃길을 따라 달렸는데 운동할 때 에너지가 배 이상 들어 울면서 달렸다. 최근에 그 방향으로 갈 때는 9호선을 타고 점핑한 뒤 집 쪽으로 달린다. 나이가 들수록 힘이 없어서 바람 역방향으로 자전거 타는 게 부담스럽다. 게다가 잠실에서 인천 가는 길에 새로운 공포가 더해졌다. 그저께 거실 소파에서 앉아 TV뉴스를 보다 안방으로 들어오며 준호가 선미에게 물었다.


"우리 자주 타는 아라뱃길 옆 자전거도로 알지?"


 선미는 침대에서 책을 읽고 있다 대답했다.

"역바람 때문에 개고생 하며 달렸던 데?"


"거기에 토막 시체들이 많이 발견된대.

방금 뉴스에서 영상까지 나왔서. 몇 년 새 많이 발견됐나 봐."


 "왜?"

선미는 비스듬히 누워 있다 책을 내려놓고 침대 머리에 등을 대고 똑바로 앉았다. 섬뜩했다. 평범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음습해 보이지 않는 길이었다.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사각지대가 있어서 많이 버리나 봐. 죽은 사람은 말을 못 하니까. 밤에는 특히 누가 보겠어. 접근하기는 편하고."

선미는 순간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준호에게 이제 그쪽으로 가지 말자고 말했다.


"글쎄.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데가 어디 한두 군데겠어. 당분간 가지 말자. 겨울 되면 어차피 못 타."

준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범죄물을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모든 유기된 시신들이 발견될 것 같지는 않았다.


 올해는 11월이 돼도 춥지 않았다. 왕숙천에는 큰 새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선미는 황새나 두루미 같이 큰 새들을 볼 때마다 신기했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갈 만큼 먹이가 풍부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 덕에 샛강에는 물고기들이 생각보다 많이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물속을 관찰해 보니 작은 물고기부터 큰 물고기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떼 지어 다니고 있었다. 한 번씩 튀어 오르기도 했다. 청둥오리 같은 새들은 큰 물고기들을 아예 먹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인 건 분명하다.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니까.

오리의 몸보다 긴 물고기들이 어쩌면 청둥오리가 다치거나 못 움직이면 잡아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청둥오리들 옆에 물고기 떼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흐흐흐"

선미는 헛웃음이 나왔다. 호러물 같은 상황인데 자연은 항상 평화로워 보인다. 선미의 마음도 자전거의 속도감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몸의 움직임으로 차분하고 평온했다.

선미는 자전거를 타면서 도심 속에서도 쉼터와 먹이만 있으면 다양한 생명체들이 터전을 잡고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선미는 준호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준호가 갑자기  자전거를 세웠다. 선미도 따라서 손잡이를 잡고 속도를 늦추었다. 준호가 바라보는 쪽을 바라보았다. 중년 부인으로 보이는 하얀 잠바와 청바지를 입은 여자가 자전거도로 바닥에서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었다. 그 곁에서 자전거 옷을 입고 헬멧을 쓴 젊은이 두 명이 여자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남편은 길 건너 보행자 도로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전거를 멈추고 서 있는 낯선 사람과  말하는 중이었다.

사람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떠났다.


"어떻게. 저 여자분. 많이 다쳐 보이는데. 119에 연락은 한 거야?"

선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렇데. 조금 전에 목격자가 그러는데  여자분이 저기 보이는 아파트에서 내려오는 길에서 자전거길로 갑자기 뛰어들었대. 자전거에 부딪힌 후 멀쩡하게 일어났다가 사람들이 경찰 부르고, 갑자기 누웠다는데. 119도 물론 불렀대. 나한테 조금 전 충돌 장면을 봤다는 아저씨는 저분이 크게 안 다쳤대. 엄살 같대."

준호는 들은 바를 선미에게 전해 주었다.

선미가 보니, 누워 있는 여자는  한 번씩 몸을 작게 들썩이거나  다리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빨리 와야 할 텐데. 119든 경찰차든."


준호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전거 타다 충돌한 청년들과 누워 있는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선미는 청년들 중 누가 사고를 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꾀병 아니에요."

 선미 부부가 대화하는 것을 듣던 보행자 길에 조용히 서 있던 남자 노인이 슬며시 부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아. 그러세요. 처음부터 보셨어요?"

선미는 자신의 짐작과 같은 말을 하는 노인에게 믿음이 가서 물었다.


 "네. 저 여자분이 천천히 도로에서 왕숙천 길로 내려와 길 건너려고 할 때 자전거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려와 꽝 부딪혔어요.

심하게 부딪혀 쓰러져서 이제껏 있는 거예요. 부딪힌 후 일어나려다 픽 쓰러졌어요. 그러고는 저 상태예요."


선미 부부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다 구급차 기다리는 거예요. 경찰차도 올 거래요."

노인은  안타까운 얼굴로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었다. 다친 아주머니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선미 부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경찰과 구급차를 부른 상태고 목격자도 아니어서 딱히 할 역할이 없었다.


'같은 순간 자전거를 탄 목격자와 보행자인 목격자의 말이 어떻게 다르지?'

달리면서 선미는 생각했다. CCTV가 없다면 진실공방이 시작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어떻게 사건 현장을 봤다는 사람들의 말이 그렇게 달라?"

선미는  갈림길에서 선미를 기다리며 길가 벤치에 앉아 있는 준호에게 자전거를 세우며 물었다.


 "나도 이상했어. 처음에 말해준 사람도 자신이 분명히 봤다며 말해줬는데. 입장이 달라서 다르게 느끼나? 자전거 탄 사람이랑 보행자는  확실히 다르게 느낄 수 있지."

준호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선미는 먼저 출발한 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진실은 무엇일까?"

선미는 일어난 지 30분도 안 되는 일을 다르게 진술을 하는 두 목격자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퇴계원 역 바로 앞 카페에서 선미 부부는 팥빙수와 따듯한 라테를 시켜 나누어 먹었다.


" 이렇게 같이 먹으면 이 시려.. 온도 차이가 너무 큰  음식을 함께 먹기 힘들 텐데."


준호가  느긋하게 앉아 있자고 했다.

"천천히 먹으면 되지. 나도 다른 것 시키려고 했는데, 빙수를 해서 시켰어. 곧 12월인데."

 

선미도 아직까지 카페에서 빙수류를 파는 게 새로웠다. 사실 올해는 그럴 만하다. 아직 추운 날이 거의 없었다. 온도와 상관없이 절기에 맞춰 옷을 꺼내 입은 사람들은 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몸에 땀이 진땀처럼  찝찝하게 낫다. 실내에서는 더 덥게 느껴졌다.


준호는 팥빙수를 나눠 먹다 선미를 바라보며 뭔가 떠오른 듯, 엄지와 중지를 교차시켜 "딱"소리를 냈다.


 "다친 여자분이 괜찮아야 할 텐데.... 조금 전에 본 사건을 생각하니, 언젠가 봤던 연극이 떠오르네. <쇼몽>* 기억나? 내가 20대 초반에 영화로 봤을 때는 뭐 저렇게 말이 다르나 그랬거든. 근데 20년이 지난 후에 너랑 연극으로 봤을 때는 상황이 이해가 가더라고. 같은 사건도 입장에 따라 다 다르다는 걸. 왜 명작이라고 하는지도."


선미는 연극에서 죽은 사람이 유령으로 나타나 진술해도 진실이 모호해져서 충격받았었다.


 "와, 정말 비슷하다. 시시티브이가 거긴 없어 보이던데. 그건 그렇고 그분, 심하게 안 다쳤으면 좋겠다. 내출혈이라도 일어났으면 심각할 텐데."


 선미 부부는 돌아가는 길에 사건 장소를 지났다. 물론 아무도 없었다. CCTV도 보이지 않았다. 선미가 집을 향해 달릴 때, 아까는 내리막 길이었던 길이 방향을 바꾸어 달리니 오르막길이 되었다. 선미는 기어를 낮추고 페달을 힘주어 꼭꼭 밟으며 올라갔다. 다시 내리막길이다. 이번에는 발에 힘을 빼고 속력이 너무 나지 않도록 오른쪽 손잡이를 한 번씩 가볍게 잡았다.


선미 부부는 집을 향해 말없이 달렸다.




*1950년에 개봉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 영화.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두 편[라쇼몽+ 덤불 속]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걸작이며 일본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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