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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과 그림자 Sep 23. 2024

<크리스마스 파티>

13. 모퉁이 돌면 크리스마스

3저 들 밖에 한밤 중에 양 틈에 잠자던 목자들

천사들이 전하여 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현우는 티테이블에 놓인,  작년 크리스마스 때  현정이 선물해 준 블루투스 스피커를 틀었다.

하얗고 납작한 동그란 캔 모양의 스피커에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마루 전체로 울려 퍼졌다.

현우는 마루 소파에 누워 그 곡을 작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듯 따라 불렀다. 3절까지 나오는 곡을 연속 재생으로 들으며, 듣다 따라 부르다를 반복했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성탄 발표회를 할 때 어린이 합창단에서 불렀던 노래였다.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이 몰려와 현우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가득 찼다.

현우는 크리스마스 한 달 전쯤부터 크리스마스인 것 같았다. 대림절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현우는 요즘은 성당을 다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기억이 생생하게 났다. 성탄절 한 달 전부터 성당 마당에 마구간이 꾸며졌다.

양 떼들과 목동들, 동방 박사 3명,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이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둘러싼 구유는 비어있다. 성탄절이 되면 아기 예수님이 구유에 누워 있었다.


성당 안 제대 앞에는 초가 4개 꽂힌 커다란 리스가 놓여 있었다. 대림환이었다. 초는 짙은 보라에서 시작해 옅은 보라, 분홍, 하얀색으로 점점 밝게 변했다. 한 주마다 짙은 초부터  차례차례 켜지다 성탄주가 되면 모든 초들이 같이 타올랐다.


현우는 크리스마스 리스를 좋아했다. 어머니 미솔이 성당 제대회에서 꽃꽂이를 담당했었다.

대림절 전에 미솔은 집에서 제대회 꽃꽂이 팀과 100개가 넘는 대림환을 만들어 어떤 해는 판매하고 어떤 해는 무료로 나눠 줬다.

매해 크리스마스 한 달 전에는 현우가 학교를 다녀와서 현관문을 열었을 때 100개나 되는 대림환이 현우를 맞이해 주었다. 현관부터 마루까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대림환의 편백나무에서 숲냄새가 났다. 노란색부터 연두, 짙은 초록이 섞인 편백 잎 사이로 빨간 펠리컨사스나 낙산홍 열매, 호랑가시 열매가 선명하고 따듯한 느낌을 주며 풍성하게 꽂혀 있었다.


 현우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들으면 편백나무 향, 대림초 특유의 기름진 과일향이 같이 났다.

 들판에서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구세주 나신 소식을 전해 주는 장면은 상상할수록 아름다웠다.

현우는 대학교 2학년 때 조각 수업 과제로 그 장면을 나무를 부조로 깎아 채색한 적도 있었다.


별이 쏟아지듯 총총하게 빛나는 밤, 양 떼들과 목자들이 들판에서 자고 있다.

하늘에서 날갯짓하며 내려와 한밤중에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

별이 빛나는 밤에 지상에서  하얀 천사들의 날개는 얼마나 찬란했을까.

날씨는 춥지 않았을 것이다. 들판에서 목자들이 양들 틈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으니까.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북반구의 경우이다. 남반구의 크리스마스는 여름이다.

현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상념들에 미소를 지었다. 현우는 고개를 돌려 창문가에 있는 게발선인장 화분을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 때에 꽃을 피워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고도  불리는 게발선인장 줄기 끝에 작은 꽃망울들이 붉은색으로 맺히기 시작했다. 현우는 선인장 꽃망울들을 본 김에 일어나서 물뿌리개로  화분에 물을 주었다.


                                      *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따뜻했어.

사람들이 비키니와 반 바지 수영복을 입고, 해변가에서 산타 모자를 쓰고 파티를 하는 것을 봤지.

누드 비치에서 파티를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네."


 현우는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진서가 생각났다. 그녀와 헤어진 지도 다섯 해가 지났다.

 몇 년 전 현우는 진서가 진오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 년 전에는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도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진서와 사귄 시간이 꽤 길어서, 둘 사이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서의 소식은 때때로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렸다.


 진오가 아직 [청춘] 관련 일을 한다고 들었다. 현우는 진오를  몇 번 본 사이었다. 어쩌다 청춘 운영위원회에서 만났었다.  진오는 학부 때 사진을 전공했지만, 작품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진오는 작가로서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경영 대학원을 졸업한 후, 회계법인의 영업 지원부장을 겸직하는 능력자로 알려져 있었다.

 현우는 진오의 경력에 관심이 갔다. 현우 본인도 조각가로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현우는 서울에 있는 미대에 합격했을 때 정말 감격스러웠다. 원주 시내에 플래카드를 걸만큼 합격자와 가족들은 기뻐했었다.

현우는 조소과에 진학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현우는 산 넘어 산이란 기분이 들었다.

현우는 취업을 위해서는 부전공을 디자인으로 택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현우는 취업이 잘되는 산업 디자인을 부전공으로 신청했다.

현우는  산업 디자인을 공부할 때, 학교 수업에서 이해가 안 가거나 부족한 부분들은 따로 강남 학원가에서 배워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모델 활동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현우는 모델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의 미래가 무척 걱정되었다.


 현우는 좋아하는 미술의 어느 분야든 대학에 진학만 하면 앞길이 열릴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취업 고민이 시작되었다.  철부지 소년이었던 현우는 원주집을 떠나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한 순간, 많은 걱정거리들이 생겼다.

 부모님이 등록금을 보내줬지만, 서울에 사는 생활비가 만만하지 않았다. 모델일을 하며 공부하느라 현우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피터팬은 네버랜드에서 어린아이로 머물렀다. 현우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일과 공부로 고군분투하며 매일매일을 살아갔다.  몇 년이 지난 후 현우는 훌쩍 커져 있었다.


 [Intro]

워워워워워

워워워워워

워워워워워

워워워워워

모든 게 궁금해 how's your day?

Oh, tell me.(Oh yeah, oh yeah, ah yeah, ah yeah)

뭐가 널 행복하게 하는지

Oh, text me(Oh yeah, oh yeah, oh yeah, oh yeah)


* [방탄소년단 작은 것들을 위한 시] 도입 부분


 현우는 핸드폰 벨소리를 듣고, 과거에서 현재로 소환되었다. 어머니였다.

따뜻한 염려가 담긴 목소리였다. 감사함에 현우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어머니, 정말 감사해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제게 부치셨어요?

 저는 0이 하나 더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싱가포르 물가가 거의 유럽 수준으로 비싸서, 고민고민 끝에 말씀드린 건데...."


 "뭘, 우리가 너한테 그동안 해준 게 뭐가 있니?

 네가 몇 년 전 다쳤을 때 병원비도 제대로 못해줘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네가 병원비 다 내고, 재활하러 다니는 거 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 “


 미솔은 현우가 다쳤을 때,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현우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다. 현우가 교통사고로 잘못되었다면 미솔부부는 살아갈 의욕을 잃었을 것이다. 미솔은 자신이 죽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아들, 항상 건강해야 해.”


 미솔은 현우에게 돈을 보낼 수 있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소중한 아들이 산업 디자인 전공으로 대학원을 진학한 후, 무사히 졸업했다.

미솔은 현우가 졸업하고 일 년도 안되어서 다국적 회사에 취업해서 싱가포르로 떠나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현우는 3년 전쯤 모델일을 관두고, 강남역 근처에 있는 학원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배워 취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배우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프로그램의 전문성이 낮았다. 항상 초단기 임시직만 취업이 되어 한 달 앞의 안위도 알 수 없었다.


새로운 결심을 한 날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라는 격언이  현우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지겹도록 어디선가 들은 말이지만, 자신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생각 아니 감흥이 달랐다.


“원주로 돌아가야겠어. 서울에 산다는 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어."


현우는 생활비가 많이 드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수입이 괜찮았던 모델일을 접었는데, 자신이 허드렛일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생활비를 아끼고, 공부도 더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과 같이 생활하면, 일단, 집세가 절약되었다. 흥업에 있는 Y대 미대 대학원을 다니면, 현우가 가진 돈으로 4학기 등록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학부 전공이 조소인 현우가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원주에서는 미술학원 강사로 입시지도를 해서 생활비를 벌기로 했다.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


 현우는  어머니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청했다. 취업하려는 회사에 일정한 은행잔고를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우가 가진 돈으로는 그 잔고를 채울 수가 없어서 대출을 받아야 했다.

현우는 대출을 신청하기 전에 적은 돈이라도 부모님께 빌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대출이 필요한 만큼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어머니, 죄송한데 싱가포르 회사에서 일정한 은행 잔고를 요구해요.

혹시 되는대로 몇 백만 원이라도 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제 신용으로 대출금이 좀 부족할 수도 있어서요.”


 미솔은 현우가 물어보자마자 내일 은행 가서 돈을 부치겠다고 했다. 다음 날, 미솔은 5천만 원을 송금했다.

현우는 입금을 확인한 후 깜짝 놀랐다. 금액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현우는 착오가 생긴 것 같아  확인을 위해 미솔에게 얼른 전화했다.

 미솔은 웃으면서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물려주신 유산이라고 했다.

현우는 생각지도 않게 경제적 고민이 없어져한동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실없는 웃음이 계속 나오자 현우는 언젠가 보았던 연극 <찰리 브라운> 속 라이너스가 떠올랐다.

자신이 따뜻하게 햇빛 비치는 날,  담요를 들고 춤추는 < 찰리 브라운> 속 찰리의 친구 라이너스가 된 것 같았다. 연극에서  애착 담요를 항상 들고 다니는 라이너스는 마당에서 실컷 춤춘 후 “ 아, 행복해” 하고 외쳤다.

현우는 미솔에게 전화를 받을 때마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미솔은 현우가 다쳤을 때 도움을 못줘 미안했다고 사과하고 항상 건강하라고 했다.


 현우는 크리스마스 가까이에 이삿짐을 거의 정리하고, 싱가포르에 가져가지 못하는 짐들은 2년 정도 미니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현우가 기르던 식물들도 생사를 책임지지는 않는 조건으로 미니 창고 사무실에서 돌보기로 했다. 미니 창고에 새로 온 직원이 화초 기르는 것을 좋아해서 맡아주는 특별한 경우라고 했다.

현우는 그 직원이 직장을 그만 두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현우는 싱가포르행 비행기표를 찍어 현정에게 보냈다.

현정이 가급적이면 마중 나올 수 있는 시간을 도착시간으로 정했다.


‘이제 곧 현정과 같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다.’


 현우는 크리스마스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놀이 기구들을 탈 생각을 했다.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붕 뜨고 짜릿했다. 현우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티테이블에서 가져와 손으로 만져보았다.  매끌매끌하고 단단한 촉감이 좋았다. 소중한 현정의  선물이었다.

현우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입을 다물고 콧노래로 따라 불렀다.


싱가포르에서 현우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놀이 기구를 타고 내린 뒤 현정에게 청혼할 계획이었다.

현정과 현우는 놀이 기구 타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현우는 집 전체에 가득 찬 즐겁고 기쁜 공기를 깊게 들여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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