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벨과 산책하기 프로젝트, 봄에서 겨울까지.

언제 한번 나를 초대해 줄 수 있어? 너랑 같이 저녁 먹고 싶어.

by 반하의 수필

누드스케치 수업이 끝나고 나는 큐와 아나벨과 함께 리들에 갔다. 리들은 학교 근처에 있는 큰 식료품 마트여서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장을 본다. 살 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저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리고 독일 아이들은 리들에서 무엇을 사는지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나벨은 슈프누들이 엄청나게 맛있다는 얘기를 하며 슈프누들을 샀고 마울타쉬도 샀다. 슈프누들은 보통 자우어크라우트와 함께 요리를 한다고 했다. 마울타쉬는 슈투트가르트와 같이 독일 남부 음식으로 만두 같은 건데, 아나벨은 시금치가 들어간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나는 먹어보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얼마 후 나는 새로운 독일 요리를 도전해 보기 위해 슈프누들을 샀다. 자우어크라우트가 뭔지도 모르고 슈프누들은 무엇으로 요리를 해야 할지 몰라 유통기한이 다 지나도록 냉장고에서 꺼내지 못했고, 결국 버리고 말았다. 내가 슈프누들을 다시 사서 자우어크라우트와 함께 요리를 한 건 여름 방학이 되어 친구 인영이 놀러 왔을 때이다. 그때 나의 플랫메이트 모리츠가 그 음식을 하고 있었고 옆에서 요리를 하던 내 친구는 처음 보는 식재료에 관심을 갖는다. 무엇이냐고 묻자 모리츠는 한입 먹어보라고 했고 우리는 냉큼 그의 요리를 한 숟가락씩 먹었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인영이에게는 무척 맛있었나 보다. 인영이 눈을 반짝이며 레시피를 묻자 모리츠는 방에 들어가더니 종이에 재료와 1,2,3… 넘버링이 되어 있는 레시피를 적어서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레시피를 따라 슈프누들과 자우어크라우트를 사고, 그 둘을 팬에 볶았다. 하지만 우리의 슈프누들은 모리츠의 것처럼 쫄깃쫄깃하지 않고 다 퍼진 맛이었다. 이때 한입 먹어본 은주는 이것이 떡볶이 떡과 비슷한 것 같다며 슈프누들로 떡볶이를 해먹기도 했다.


리들에서 나와 큰길 쪽이 아닌 그 반대편으로 가면 샛길로 기숙사 방향으로 갈 수 있다. WG 플랫메이트의 생일파티를 하러 간다며 와인을 한 손에 든 큐는 그 길에서 왼쪽으로, 기숙사에 사는 나와 아나벨은 오른쪽으로 갔다. 큐와 헤어지는 걸 아쉬워하는 아나벨에게 너는 생일파티에 함께 가지 않느냐고 묻자, 자신도 초대를 받았지만 그런 자리는 불편해서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나벨은 참으로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더 내성적인 아이들에게 쉽게 매료되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다. 아나벨은 말이 많지 않음에도 조잘조잘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녀의 혼자 있는 시간이 궁금해지는 친구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정말 보석처럼 푸른색이라 눈을 보는 것이 신비한 느낌이 들었고 (큐도 마찬가지다) 걸친 옷들이 예뻤다. 어두운 갈색의 가죽점퍼나 통이 큰 검은색 청바지, 진한 오렌지색의 맨투맨, 진한 보라색의 조끼 등 보통 그녀는 커다란 빈티지 옷을 입었다. 아나벨과 더 친해지고 싶었기에 이렇게 둘이 걷게 되어 좋았다. 감기 기운 때문에 목이 아팠던 내게 아나벨은 꿀이 있냐고 물었다. 자기에게 좋은 꿀이 조금 있다며 그것을 내게 주겠다고 했다. 아프다는 말에 약 먹었니? 가 아니라 꿀을 줄게라니! 달콤한 문화차이였다. 꿀을 받으러 아나벨의 기숙사로 함께 걸었다. 그녀의 기숙사는 내 기숙사를 지나서 산책을 하러 가는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되었다.


* Wie alt bist du? (몇 살이야?)

- dreiundzwanzig (23) Und du? (스물셋. 너는?)

Einundzwanzig (21) (스물 하나.)


꿀에 도착하기까지 아나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이도 밝혔다. 아나벨이 나보다 한 살 많은 2001년 생이었다. 물론 저 부분만 독일어로 한 것이지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다. 내 마음은 그녀와 더 친해지고 싶다는 바람으로 가득 찼다. 저녁을 같이 먹고 싶다! 아나벨이랑 더 있고 싶다! 아나벨 방을 보고 싶다! 이런 말들이 속에서 아우성이었으며 나를 초대해 줄 수 있냐는 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나를 초대해 줘.. 너랑 같이 저녁 먹고 싶어.. 우리 같이 요리할래.. 그러다가 작은 목소리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Can you invite me someday? I wanna have dinner with you.

언제 한번 나를 초대해 줄 수 있어? 너랑 같이 저녁 먹고 싶어.


이 짧은 문장을 뱉는데 얼마나 더듬거렸는지 모르겠다. 영어로는 돌려 말하는 법을 몰라 서툴고 솔직한 그 말에 아나벨은 “당연하지! We can cook together! 너 샤루 알지? 가끔 샤루랑 같이 요리해서 먹어. 큐랑 율리아도 가끔 와서 같이 요리하고. 다음에 너도 부를게.”라고 답했다. 나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것보다 그저 아나벨과 둘이 만나는 게 좋았고 내심 그것이 오늘내일이 되길 바랐지만 이 대답으로 미래의 어느 좋은 날이 하나 생긴 것에 만족했다.


아나벨의 방은 꼭대기 층인 4층에 있었다. 다 올라오니 숨이 찼다. 그녀는 그곳에서 벌써 3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WG는 내가 사는 10인 WG의 형태랑 달랐다. 주로 독일인들은 이런 4인 WG에 살았다. 꼭대기층이라 천장이 무척 높았고 식탁이나 선반 등 전체적으로 텅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아나벨과 베라가 어딘가에서 주워서 낑낑거리며 가지고 올라왔다는 달구지를 구경했다. 그녀의 방을 궁금해하자 아나벨은 방을 치우지 않았다며 망설이다 방문을 열었다. 작고 꽉 차 있는, 아늑한 방이었다. 불을 켜지 않아서 약간 어두웠고 난 안경을 쓰지 않고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책상 위에 많은 그림 도구가 놓여 있었던 것 같고 스웨터들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커튼봉에 걸린 채 창문을 가리고 있는 얇은 종이가 반가웠다.


내 방에 커튼을 사는 것이 고민되어 같은 기숙사에 사는 아나벨에게 커튼을 어떻게 달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아나벨은 커튼이 너무 비싸서 그냥 학교에서 쓰는 큰 얇은 종이롤을 사서 커튼 봉에 걸었다고, 벌써 3년째 그렇게 하고 있는데 종이가 햇빛이 바래서 누렇게 된 것 말고는 문제없이 제 역할을 잘한다고 했다. 난 그녀가 창의적이고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프레첼과 물고기와 견과류와 사과를 사랑했다. 그녀는 일 년 동안 프레첼을 먹을 때마다 작대기로 표시해서 센 다고 했는데 겨울에는 오렌지로 같은 일을 했다. 내가 가방에 있던 프레첼을 꺼내주었던 날에 그녀는 그 종이에 작대기 하나를 추가하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또 사과를 유달리 좋아하는데 어느 날에는 한 친구와 어떤 품종의 사과가 맛있는 가에 대해 다투다시피 토론을 했다. 나는 줄곧 사 먹던 핑크레이디 밖에 몰랐지만 아나벨의 말을 들으면 그것보다 맛있는 게 있는 듯했다.


해가 지기 전에 산책을 다녀온다는 아나벨과 함께 그녀의 WG에서 나왔다. 나의 기숙사를 지나쳐서도 그녀에 옆을 걷고 있는 내게 아나벨이 물었다. “너…. 같이 걸을 거야?” 물론 같이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왠지 조심스러워져 말을 꺼내지 못하던 차였다. 그녀의 산책을 방해하는 것인가, 혼자 걷고 싶으면 어떡하지, 지금까지 나한테 같이 산책하자고 말하지 않았으니 혼자 걷고 싶은 거겠지… 따위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 그래도 돼?” “당연하지!” 기쁜 마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같이 했다. 먼저 물어봐주지 않은 것이 살짝 괘씸하기도 했다.


곧 어둑어둑해질 저녁의 날씨가 좋았다. 아나벨은 보라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노란 꽃밭과 연둣빛 풀들과 잘 어우러져 정말 예뻤다. 아나벨의 모습을 뒤에서 스치듯 몰래 찍었다.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자주 쓰는 방법인데, 영상으로 다른 풍경을 담는 척하며 그 사람을 쓱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이후에 그 사람이 있는 부분을 캡처한다. 원래도 질문이 많은 편이지만 누군가에게 약간 반해있을 때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 이 팔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이 신발은 몇 년을 신었는지 따위가 궁금할 정도이다. 느껴지는 배고픔을 이 시간의 소중함으로 달래며 그녀의 자매들에 대해, 진로, 취미, 과거에 좋아했던 학교 과목에 대해서 물었다. 아나벨은 마리라고 하는 8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는데 사람들은 누가 언니이고 누가 동생인지 헷갈려한다고 했다. 마리는 아나벨이 프레첼을 좋아하는 것처럼 비행기에 환장하며 파일럿이 꿈이라고 했다. 당시 내 남동생의 꿈도 파일럿이었기에 우리는 신나게 파일럿보다 파일럿의 가족이 되는 것이 좋다며 떠들었다.


이후 우연히 아나벨과 함께 있는 마리를 본 적이 있다. 마리는 아나벨보다 키가 크고 앳된 얼굴이지만 흰 피부나 표정 같은 것이 정말 닮아 있었다. 그 애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슈투트가르트 공항에 갈 것이라고 했다. 큰 공항에서 비행기를 보고 싶은 마리의 염원이었고 나는 기대에 찬 마리를 보며 언젠가 그녀가 슈투트가르트 공항보다 100배는 클 것 같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가는 날을 상상해 보았다.


아나벨은 이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자신이 워낙 내성적이라 대학교에 오고 금방 친구를 사귀지 못했는데 학생회에 들어가며 지금의 친구들을 만났다고 했다. 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자기가 그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말하는 아나벨은 마치 아주 맛있는 사과를 입안 가득 베어 물고 음미하는 것처럼 달콤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내가 사랑했던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을 떠올리느라 잠시 한국에서의 대학생활로 돌아가기도 했고 내가 이 독일 학교에 입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 속에서 다시 태어나보기도 했다. 독일에 살았으면 교육 대학인 이 학교에 입학해서 미술을 전공과목으로 택했을 것처럼 이 환경이 나와 잘 맞았다. 그랬으면 나도 미술 학생회의 멤버가 되어서 아나벨과 큐, 율리아와 베라, 샤로 등을 만나고 친하게 지냈을까. 그들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상상되었다. 유일하게 검은 피부를 가진 인도계 독일인 샤로, 유일하게 아랍인의 얼굴을 가진 하프 모로칸 새미처럼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 되겠지. 경험하지 못한 고단함이 있겠지만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아나벨에게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유럽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스웨덴으로 이민을 생각할 정도로 북유럽 국가에 관심이 많았다. 독일은 그녀에게 너무 더웠고 덥기보다는 추운 곳에서 친구들, 동물들과 함께 살고 싶은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이 학교에는 노르웨이 교환학생의 선택지가 있었다. 아나벨은 교환학생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 겁이 나서 못 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너처럼’ 말을 잘 걸지도 못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너무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무서운 것과 별개로 항상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은 나와 달리 아나벨은 별로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그녀는 내게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먼저 물어보는 것이 멋지고 좋다고 말했다. 내성적인 자기라면 부끄러워서 절대 너처럼 저녁에 초대해 달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을 거라고 말이다. 종종 독일 친구들에게 나는 그렇게 보였다. 낯선 이에게 말을 잘 걸고, 금세 새 친구를 사귀며 별로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용기에 용기를 얹어 막 발현하기 시작한 모습이었기에 나로서는 그들의 시선이 대단한 오해로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연고 없는 사람에게 친해지자 애원할 만큼 친구가 없지도 않았고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채 남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달랐다. 친구가 필요했고 시간과 마음의 자리는 여유롭다 못해 비어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이곳에서 즐거움을 찾고 내 세상을 넓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과하게 수줍었고 낯을 많이 가리던 나, 하고 싶은 말을 끝끝내 못 하던 소심한 나, 먼저 다가가는 법을 모른 채 내게 다가와주기만을 기다리던 나, 오래도록 이미 있는 관계에만 머물러 있던 나를 그들은 알턱이 없었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내가 그 순간에 가장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뱉어 낸다면 나는 용감하고 솔직한 사람이 된다. 과거에 쌓아두었던 성격은 매 순간 새로고침 할 수 있다. 용감해서 용기를 내는 게 아니라 용기를 내서 용감한 것이다. 매일같이 그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자꾸만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훈련하는 마음으로. ‘너답지 않아’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멋진 사람이야’ 그뿐이었다.


아나벨은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고 했지만 아나벨에게 먼저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 나의 일 년이 다 지나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나와 은주는 아나벨, 율리아, 베라, 샤누를 초대했다. 만둣국을 끓이고 떡볶이를 요리하고 함께 호떡을 만들었다. 헤어질 때는 한국 라면이나 과자 같은 것을 선물했다. 그것이 나와 아나벨이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저녁식사였다. 아나벨의 초대를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때 냈던 마음이 아까워지는 건 아니다. 친해지고 싶었던 이에게 ‘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어’라고 하는 말을 해보았고 이제는 그 말을 하는 데에 필요한 긴장과 용기가 적어졌다.


아나벨과 했던 노을 녘의 산책, 그것은 금세 먼 과거의 기억이 되었다. 나는 자주 혼자 산책을 했고 그녀를 떠올렸다. 코앞에 사는 그녀에게 여러 번 “같이 산책 갈래?” 하는 메시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끝내 보내지 못했는데 그녀가 나를 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두 번째 산책은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찾아온 눈길 위에서였다. 우리는 미술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2박 3일 여행에 함께 있었다. 오두막 1층에서 모든 학생들이 노래를 틀고 게임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둠이 슬슬 내려오는 창밖에서는 흰 눈이 내렸다. 나는 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책을 하고 싶어 혼자 밖으로 나갔다. 땅에는 흰 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고 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은 검은색으로 보였다. 흰색과 검은색만 존재하는 풍경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오두막은 따뜻한 오렌지색 빛으로 은은하게 빛났고 시끄럽던 음악 소리로 잔잔하게 떨렸다. 혼자 멀리 가는 것은 겁이 나 오두막 근처를 돌아보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대문을 여니 목도리를 두르고 신발을 신은 아나벨이 있었다. 그녀는 산책을 나갈 참이었다. 나는 모자를 쓰고 오겠다고 그녀에게 기다려 달라 말했다.

오래 바라온 그 일, [아나벨과 또 산책하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제야. 혼자 나왔을 때보다 눈이 더 많이 내렸다. 길에 쌓인 눈도 두터웠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첫눈이었기에 우리는 둘 다 잔뜩 신났다. 어둠은 짙어졌고 눈보라는 거세졌다. 우리는 겁 없이 그 눈을 반기기만 했다. 정말이지 사방팔방으로 날리는 눈에 꼭 스노볼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아나벨은 두툼히 쌓인 차디찬 눈 위로 맨 얼굴을 푹 담그고 눈밭에 누워 데구루루 굴렀다. 프레첼보다, 물고기보다, 사과보다 눈을 더 많이 사랑하는 아이였다. 여름이 오기 전 연둣빛 들풀을 그녀와 지나고 이렇게 눈길을 함께 미끄러진다. 그 사이에 억지가 없어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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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101.jpg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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