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어느 금요일 (3)

지루한 공기를 흥미롭게 들이마셨다

by 반하의 수필


우리는 축제에서 나와서 S반역으로 갔다. 열차를 기다리며 마치 공사장 같이 컨테이너가 가득한 축제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소피는 담배를 폈다. 지하철도 타고 미술관에 가는 동안 나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채 소피와 소피의 친구가 이야기하는 걸 보며 뒤에 서 있었다. 목적지도 모른 채 그들을 졸졸 따라 걷다 보니 거대한 횡단보도 너머로 꽤 큰 미술관이 보였다. Staatgalerie Stuttgart였다. 큰 규모에 곡선이 있는 건물의 형태가 멋졌다. 1층에 작게 마련된 카페 공간에서는 투명 유리 너머로 조각상들로 꾸며진 야외 공간이 보였다. 기념품 샵에도 사고 싶은 그림엽서가 많이 있었다. 학생들이 모여있는 그곳에는 신기하게도 아나벨과 율리아, 베라가 있었다. 이 수업을 듣는 것은 베라이고 아나벨과 율리아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길을 찾는 걸 어려워하는 베라를 데려다주러 왔다고 했다. 한편 소피는 강사님으로 보이는 마르고 키가 큰 중년의 여성분께 다가가 내가 참관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허락해 주신 강사님께 난 독일어를 못 한다는 것을 알렸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이동시킬 때 쓸 것 같은 바퀴 달린 커다란 철창에 학생들이 전부 가방을 넣었다. 그림도구만 꺼내서 말이다. 일기장과 안경, 검은 펜, 그리고 와인색펜을 챙겨 강사와 학생을 따라갔다.


학생들이 그림들이 가득한 미술관의 한 공간의 바닥에 둘러앉아 가운데에 있는 작품을 보았다. 강사는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했다. 당연히 영어는 없었다. 나는 그 지루한 공기를 흥미롭게 들이마셨다.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도 마찬가지의 반복이었다. 일기장에 대고 말을 했다. ‘와, 여기 정말 흥미롭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네. 언어를 알아듣는 애들도 지루해 보여.’ 아이들이 강사를 보고 강사의 이야기를 듣고 노트에 필기를 하는 동안 나는 떠다니는 먼지, 아이들의 옷차림, 표정, 미동 없는 미술관의 작품들, 창밖 풍경 같은 것을 보았다. 같은 곳에 있지만 온전히 나만 다른 세상에 다른 활동을 하며 존재하고 있었다.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적혔다. ‘다들 글씨를 쓰고 나는 그림을 그린다. 글씨의 세상을 알아듣지 못할 때 모든 것은 그림의 세상이 되는데, 그림의 세상을 즐길 때 재미없는 것은 없는 듯하다. 사실 여행은 많은 부분 그림으로 보는 세상이다. 스쳐가는 창밖에 풍경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철저한 이방인이자 듣는 사람. 어느 것에도 내 자취를 남기지 않지만 내게는 그 장면들이 남는다.’


미술관에 학생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만으로 내게는 처음 보는 흥미로운 광경이었고 그런 시간 안에서 마음껏 끄적이는 건 즐거웠다. 근 3시간을 그렇게 강의에 함께 있느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림을 구경하지도 못했고 기념품 샵에서 엽서를 살 시간도 없었지만 이 장소를 알게 된 것만으로 좋았다.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으니까. 나를 데려와준 소피에게 참 고마웠다. 수업이 계속 진행되다가 마지막 세션을 앞두고 15분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모두가 쓰던 의자를 가지고 1층 로비로 내려가서 반납을 했다. 가방을 두었던 철창에서 자기 가방을 찾아 물을 마시고, 이제 노트는 필요 없는지 가방에 노트를 집어넣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우르르 카페테리아처럼 책상과 의자가 모여있는 곳에 가서 앉았다. 아이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그냥 혼자 멀리 떨어진 다른 구석에 앉아 엎드려 누웠다. 참았던 피곤이 몰려왔다. 수채화 수업에 갔던 아침부터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오후 4시가 되어 있었다. 창 밖으로 멋진 조각상들이 보였다.


그렇게 쓰러져서 쉬다가 아이들이 다시 우르르 일어나서 미술관 안으로 수업을 하러 돌아갔다. 수업 시간에 옆에 있던 베라(Vera), 같이 온 소피는 먼저 갔다. 혼자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앞에서 이야기를 하며 걷던 2명이 살짝 뒤를 돌아보더니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교환학생이야? 이름이 뭐야? 얼마나 있어? 어느 나라에서 왔어? 전공이 뭐야?’ 매번 비슷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언제나 반갑고 고마운 질문이다. 혼자 있으니 또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때 말을 건 친구는 릴리아(Lilia)였다. 릴리아는 밝은 표정으로 웃었고 라임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키가 작고 액세서리도 눈에 띄었다. 그녀가 쨍한 색의 빈티지 옷을 좋아하고 옷 스타일이 멋스럽다고 생각했다. 릴리아는 BTZ에서 했던 짜이츠(Zeitz) 여행 오리엔테이션에서 본 나를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릴리아는 쨍한 분홍색 민소매 탑을 입고 있었다. 릴리아는 Zeitz 여행이 엄청 기대된다며 자기도 처음 학교에서 하는 미술 여행에 참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같이 요리 그룹을 하자고 제안했다. 3명씩 팀이 되어 하루씩 아침, 저녁을 요리하는데 자기는 아직 팀이 없으니 나와 은주랑 같이 하면 좋겠다고 했다. Sure! Of course! So good!


미술관 수업의 마지막은 학생들과 미술관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직접 하는 거였다. 모둠을 나누고 선생님이 모둠별로 가지 각색의 소품들을 주셨다. 전화기, 가방, 머리띠, 꽃, 수건 등이었다. 나는 릴리아와 같은 모둠을 했고 우리 모둠이 받은 것은 초록색 부채였다. 우리가 할 일은 미술관 작품들을 보며 이 물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을 고르고, 그 그림 안에서 이 도구가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이야기를 만들어 설명하는 일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활동에 독일에서 학교 다니가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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