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하는 수업에 가는데, 너도 갈래?"
딜란과 헤어지자 혼자가 되었다. 혼자 놀이공원을 서성였다. 애석하게 큐와 친구들은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할까 말까, 큐의 번호를 휴대폰에 띄워놓고 망설이기만 했다. 그렇게 혼자 이것저것 구경하며 앞으로 걷는데, 칙칙폭폭 연기를 내는 화려한 놀이기구 앞에서 의자를 두고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학생 두 명이 눈에 띄었다. 같은 수업을 들었지만 인사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둘 다 어깨쯤 오는 머리길이로 한 명은 검은 머리였고 한 명은 금발이었다. 그들에게 가까이 갔고 인사를 했다. “Hello” 자신의 그림을 힐끗 보며, 뜬금없이 인사를 한 낯선 아이에게 금발 머리 친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주고 내 이름을 물었다. "교환학생이야? 어느 나라에서 왔어?" 이어지는 질문에 나와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내심 수업에 등장한 낯선 동양인 학생이 궁금했었나 보다. 그 친구 옆 땅바닥에 앉아 대답도 하고 질문도 했다.
-What’s your name? 이름이 뭐야?
* Sophie. And yours? 소피. 너는?
- I’m Hari. 난 하리야.
*What’s your major? Do you study art? 전공이 뭐야? 미술 전공 해?
-I study Sociology in my home university, but I’m really interested in painting so I’m taking art class here. I’ve never learned art before. 나는 사회학을 전공하는데 여기에서는 미술 수업을 듣고 있어. 한 번도 미술을 배운 적은 없어.
소피는 미술 과목과 특수교육을 전공한다고 했다. 이 학교는 교육 대학교이기 때문에 보통 만나면 “너는 과목이 뭐야?(What’s your subject?)”라는 질문으로 전공을 물어본다. 각자 과목을 두 개씩 가지고 있는데 미술과 독일어, 영어와 체육, 생명과학과 기술, 철학과 수학 등 학교에 있을법한 과목들은 다 있다. 특히 내가 갔던 이 학교는 특수교육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소피는 다음 학기에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 더 동양에서 온 교환학생인 나에게 관심을 보였나 보다. 그녀의 가방에는 요새 항상 가지고 다니는 작은 일본어 학습책이 있었다. 일본에 가보는 게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으며 그곳에서 어떤 풍경들을 새로 그리게 될지 기대된다고 했다. 멀고 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러 떠나는 것 같았고 그 앞에서 소피가 얼마나 긴장하고 설레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 애는 영화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역을 연기한 그레타 거윅을 닮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소피와 길거리에서 춤을 추는 프란시스가 겹쳐 보였다. 소피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재밌었다. 잠시 그녀에게 매료된 듯 뚫어져라 구경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 장면이 좋아서 ‘나 너네 저기 가서 사진 찍어도 돼?!”라고 물었다. 후다닥 멀리 가서 그들을 남겼다. 나는 스케치북을 꺼내놓지도 않은 채 소피 옆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소피와 그녀의 친구가 자리를 뜨고 나서는 그들을 졸졸 따라갔다. 소피는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산다고 했다. 비건이었던 소피가 먹게 된 것은 감자튀김이었고 다른 친구는 피자 한 조각을 샀다. 그 둘도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다. 같은 플랫에 사는데 전공이 같고, 우연히 금요일에 수업이 두 개나 겹친다는 걸 발견한 사이. 나는 관심이 소피한테 밖에 없었고 그 친구도 그랬다. 내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소피는 내게 다음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없다고 답했다. 소피는 이제 미술관에서 하는 교육지도 수업에 간다며 (Museum Pädagogy) 너도 가고 싶으면 함께 와도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다음 행선지가 없었으므로 그곳이 어디든 좋았다. 어떤 분위기일지, 어디인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냅다 좋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어떤 미술관에 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