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의 수채화 수업
금요일 오전에는 수채화 수업이 있다. 일주일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이다. 수업은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다른 장소에 모여서 인사를 한 후, 가까운 곳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 수채화를 그리고, 한 시간 후에 모여 피드백을 받는 형식이다. 호수, 루드비 히스부르크 성, 축구 응원이 펼쳐진 슈투트가르트의 광장, 공원의 놀이터, 루드비 히스부르크 광장 등이 그 장소가 됐다. 교실에 한 시간 반 앉아 있다가 수업이 끝나고 곧장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는 보통의 영어 수업들과 다르게 그 미술 수업은 다른 학생들과 옆에 앉아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그러다가 이것저것 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항상 멋져 보였고 미술 학생들은 왠지 알록달록 멋들어진 빈티지 스타일의 옷을 걸친 경우가 많았기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많았다. 몇 마디 나눠 본 친구들도 있었다. 독일 학생들은 정직하게 무거운 배낭을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한국 학생들은 항상 배낭을 멘 다기보다는 그냥 핸드백 같은 것을 들고 학교에 오는 경우가 많다. 독일인들의 그 배낭에서는 오이도 나오고 당근도 나오고, 당근과 함께 먹는 후무스나 까지 않은 큰 오렌지, 큰 텀블러 등이 들어 있었다. 특히 미술 학생들은 불룩하게 담은 가방에 물병, 물감, 큰 스케치북 종이, 삐죽 튀어나온 간이용 의자까지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도 가방에 작은 종이, 한국에서 가져온 물감과 팔레트, 한 자루밖에 안 되는 작은 붓, 연필과 지우개, 물을 닦을 두루마리 휴지 등을 챙겼다. 밖에서 펼 수 있는 간이용 의자도 주문해 놓은 상태였다.
세 번째 수채화 시간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사람들을 만나자는 목표를 새운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던 날이었다. 모이는 장소는 봄 축제가 진행되는 Wasen이었다. 물론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고 지난 시간에 아나벨과 S반역에서 만나 함께 가기로 이야기했었다. 늦지 않고 S반역에 갔지만 아나벨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대신 아나벨의 절친 율리아를 비롯해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는 딜란도 있었다. 딜란은 수채화 첫 수업 때 내가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던 친구고 함께 듣는 영어 수업도 있었다. 딜란은 아나벨과 율리아, 큐 등과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 앉아 있었다. 도착한 아나벨이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딜란 옆에 앉아 있었다. S반이 도착하고 딜란이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 혼자 앉았는데 나는 따라가지 않고 아나벨, 큐와 함께 앉았다. 내 앞자리에 앉은 큐는 내 옆자리에 있는 안나라는 친구와 독일어로 이야기를 할 뿐이라 혼자 앉은 딜란에게 갈 걸 그랬나 싶었다. 그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어색하게 내 귀로 통과시키며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불편한 나의 마음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무심한 표정을, 그러면서도 언제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입 끝에는 살짝 미소를 두려 애썼다. 여전히 독일어, 독일어, 독일어. 그러다 문득 영어. 큐의 질문이었다. “주말에 뭐 했어?” 여전히 팔은 유리창에 붙인 채로 어버버 하며 입을 열었다. 학생들을 태운 S반은 달팽이 기어가듯 느릿느릿 움직였고 우리는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S반에서 내린 후 공사 중인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한참 걸었다. 다시 딜란 옆이다. 딜란은 내게 성격이 내향적이냐고 물었다. 자기가 정말 내향적(super introvert)인데 너도 그래 보인다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긴 한데 내가 영어로 말하는 게 편하지 않아서 더 조용하게 보일 수도 있다고 했다. 딜란은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워야겠네”(영어), “사실 나 한국말 잘 못해”(한국어)라고 답했다. 갑작스레 내 귀로 들어온 또렷한 나의 모국어에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뭐야 엄청 잘하잖아?!!” 딜란은 쿠르드족인데(Kurds) 그 언어가 한국어랑 발음이 비슷하다고, 언어 배우는 걸 좋아하고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두 달 정도 혼자 공부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국 사람 앞에서 말해 본 적은 처음이라며 자신 없는 태도를 보였고 나는 연신 감탄했다. 딜란이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 올해 1월에 약혼을 했다는 사실, 나이는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 등을 알았다. 한국어를 뱉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는 나와도 다른 사람, 독일에서 영어를 쓰는 나와도 다른 사람.
Wasen에 도착한 후 다른 친구를 만난 딜란과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오전 10시의 Wasen은 텅 빈 놀이공원 같았다. 모든 놀이기구나 축제는 12시에 시작이었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아무 데나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다. 조용한 롤러코스터 앞에 서 있던 큐와 새미 쪽으로 갔다. 큐는 산책길에서 만나 맥주를 마신 이후로 내게 친근한 존재였고 새미는 미술실에 갔을 때 큐와 함께 종이를 자르던 아이였다. 그때 우리는 인사를 했었다. 큐와 새미를 따라 놀이기구 존에서 먹거리 존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로 만든 작은 집 형태의 가게들이 핫도그, 소시지, 커제 슈페츨레, 슈니첼, 맥주 등 독일 음식을 파는 듯했다. 물론 아직 직원들도 다 오지 않은 아침이었기에 아무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두꺼운 나무 테이블이었다. 큐와 새미도 조금 있다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혼자 있기 싫었던 나는 안심했다.
책상 위에 그림 도구들을 늘어놓는데 큐는 내가 꺼내는 수채화 종이를 바라봤다. 엽서 크기인 그것을 노려보더니 “no more post card(더 이상의 엽서는 안돼)” 라면서 자기 스케치북의 고리를 열어 큰 종이 한 장을 줬다. 작은 종이에 연습도 하지 말라는 단호한 큐의 말에 새로 산 종이를 아쉽게 도로 넣고 큰 종이에 손을 댔다. 나의 포스트카드 크기 보다 열 배는 커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렇게 큰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막상 연필을 대보자 선을 쓱쓱 그리는 맛이 부들부들 소심하게 그렸던 작은 종이와는 달랐다. 아무리 그려도 반도 채워지지 않아 지치는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큰 종이가 훨씬 좋은 것 같았다. 큐가 왜 큰 종이로 바꿔줬는지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집중해서 맥주를 파는 곳을 그렸다. 다 그리지 못했는데 주어진 시간이 지났다. 나보다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지나가다 마주친 아저씨와 한참 떠들던 큐와 새미도 얼른 대충 마무리를 했다. 아, 정말이지 내 그림은 형편없었다. 여전히 수채화가 어려웠다. 큰 관람차 앞에 교수님과 이이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이 바닥에 펼쳐 놓은 그림들이 보였고 그것들은 너무나 훌륭해 보였다.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과 같은 미술 수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이 벅찼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모든 것을 그림의 피사체로 두는 학생들의 담대함도 멋졌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바닥에 놓아둔 자신의 스케치북이나 낱장으로 된 종이를 집는다. 그것들을 가방에 넣고 친구들과 인사를 하거나 각자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겨 흩어진다. 12시가 조금 넘은 Wasen은 활기가 생겼다. 기차가 돌아가고 증기를 뿜는 소리를 내듯 놀이기구가 움직였다. 칙칙폭폭. 연기나 비눗방울을 뿜어내는 집도 있었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솜사탕을 들고 방방 뛰었다. 롤러코스터도 있고 후룹라이드 같은 것도 있고 디스코 팡팡 같은 것도 있었다. 바이킹은 없었다. 놀이공원인 줄 모르고 그저 수업에 온 나는 갑자기 펼쳐진 ‘진짜’ 놀이공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곳은 롯데월드나 에버랜드처럼 상시 운영되는 놀이공원이 아닌 3주 남짓한 봄 축제 기간, 가을의 맥주축제 기간 동안만 지어졌다가 다시 해체된다고 했다. 이 거대한 아이들이 해체되면 그 크기가 얼마만 할지, 어느 창고에 들어가게 될지 무척 궁금했다. 놀이기구는 밤 12시까지 한다고 하니 모든 것을 타보기에도 시간은 충분했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하나하나의 이용료가 7-10유로 정도로 만원에서 만 오천 원이었다.
수업 이후 다른 일정이 없었던 나는 큐, 아나벨과 같은 친구들이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거나 놀자고 하길 기대하며 수업이 끝난 자리에 어정어정 서 있었다. 그때 뒤에서 “하리야!”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선명하고 갑작스러운 한국어에 또 한 번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친구와 함께 있는 딜란이었다. 기숙사에 갈 거면 지금 같이 가자고 하는 말에 나는 “그래~!”라고 답했다. 큐와 아나벨, 율리아, 베라 등에게 손을 흔들면서도 그 손을 떨구고 싶었다. 너네랑 놀고 싶다는 말은 못 하고 말을 안 걸어주니 내게 말을 걸어준 친구에게 무조건적인 긍정의 대답을 하고 함께 가는 거였다. 이후에 큐는 그때 함께 점심을 먹을 줄 알았는데 내가 갑자기 “빠이!” 하고 가서 Huuh what?? 그랬다고 했지만 무슨 소용인가. 소심했던 나는 그때 기숙사로 돌아가는 S반 역으로 걷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집에 가기 싫었던 나는 슈투트가르트에 혼자라도 더 있다 가기로 마음먹었고 지하철 역 앞에서 딜란과 헤어졌다. “나 슈투트가르트 자주 안 나오고 살 것도 있어서 좀 더 있다 가려고! 담주에 보자! 안녕!” 이 간단한 말로 무사히 경로를 이탈했다. 나의 오후는 새롭게 설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