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일이 목표가 되지 못하는 거야
5월 1일은 노동절이었어. 공휴일이라 수업이 없었지. 나는 친구들과 수영장에 갔어. 햇살은 수영하기에 알맞게 너무나 따뜻하고 물에 젖은 몸으로 햇빛에 눕는 일은 따사롭기 그지없었어. 춥다고 덜덜 떨긴 했지만. 감자튀김도 맛있었고 친구들도 예뻤지. 같이 그림을 그렸고 책도 몇 장 읽었고 사진도 많이 찍었어. 피크닉 매트에 누워 나뭇잎들을 올려다보며 생각했어.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답고 평화롭다. 따사롭다는 말이 정확해. 햇빛이 윙윙거리고 나무들은 사락사락 춤을 추고 주위의 아름다운 아이들은 잠을 자거나 공놀이하고 연인들은 살을 맞댄 채 책을 읽고 있었어. 풀밭 아래로는 파란 물이 출렁이고 아이들은 미끄럼틀이나 다이빙 대에서 물로 풍덩풍덩 몸을 던졌지.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물속에서는 부드럽게 헤엄쳤어. 느낌 알겠지? 웃을 일밖에 없는 그런 장면 속에서 나도 별다른 걱정 없이 그곳에 누워 책을 읽거나 그들을 보며 그림을 그렸던 거야. 이어폰으로 음악도 들으면서.
그런데 어쩐지 나는 아직 더 모험을 떠나야 하고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 이렇게 아무 생각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만 나를 두었다가 내가 뭐가 되겠어? 평화로울 때 배울 수 있는 감각이 내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니었어.
같은 날 나는 방울토마토가 담겨있던 갈색 종이봉투에 ‘적극적으로 헤매기’라고 적었어. 5월의 다짐은 적극적으로 내 세계를 확장하기, 그리고 언어 공부하기야!
적극적으로 헤매기가 무슨 뜻이야?
평화롭고 아름답게 지내 다가가는 내 세계가 확장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게 될 것 같아서.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더 점프해 봐야겠다는 마음이야. 좋은 길을 즐기기보다 헤매는 일을 더 열심히 하자는 말이야. 4월의 시작에는 이런 마음이 없었는데.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지. 아마 한 달을 평화롭게 지내고 나니 다시 모험을 추구할 마음이 샘솟나 봐. 봐, 3월에는 내 방에서 10일 정도밖에 자지 않았는데 4월에는 내내 같은 곳에서 잤어. 3월에 베를린에서 ‘적응 잘해! 적응했어?’라는 말에서 적응이란 무슨 뜻일까 생각하다가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나? ‘일상을 예상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좋은 곳에 데려다 놓을 수 있는 상태’라고 했어. 이제 그 능력이 갖춰졌어. 내가 무엇을 할 때 좋은 지, 어디로 가는 게 좋은 지. 뭘 할 수 있고 일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제 좀 알게 됐거든. 그러니까 더 이상 일상을 보내는 일이 목표가 되지 못하는 거야.
그리하여 나는 뭐가 될까.
내가 되겠지.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되겠지.
내가 좋아하는 내가 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있을까.
내 그림이 어설퍼도
나 밖에 그리지 못하는
나조차 다시 그리지 못하는
그 유일한 내 그림을
어떤 대단한 화가의 것보다 애정하듯.
그렇게 내가 나를 가장 좋아할 수 있다면.
2024년 5월 8일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