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애인 여행 캠프에 워커로 가다(11)
내가 주방을 정리하고 있을 때 소피, 베라, 티나는 방 이곳저곳에서 참가자들의 잘 준비 돕기, 약 챙기기, 집에 계신 엄마와 전화하고 싶은 사람과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워 마음이 아픈 사람을 달래고 있다. 그들이 마침내 침대에 누워 잠에 들 기색을 보이면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워커들은 모여 앉았다. 어느 날은 저녁 식사를 하던 야외 테이블, 어느 날은 안쪽에 있는 테이블, 어느 날은 후베아트 방 앞에 있는 4인 야외 테이블 등 소피는 매일 다른 곳에서 회의를 열었다. 때로는 그 시간이 자정을 훌쩍 넘기기도 했고, 모두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찌르찌르 우는 밤 벌레들의 소리를 들으며 소피는 담배를 피우거나 와인을 따라 마셨다.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기도 했다. 티나와 베라도 각자 원하는 음료를 앞에 두고 앉았다. 나는 주로 독일 마트에서 파는 탄산이 있는 마테차를 마셨다. 그것은 꼭 맥주처럼 생겨서, 병째 들이켜면 속이 시원했다. 그날 하루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그들 앞에서, 아는 단어를 골라내 내용을 추리하기에도 지친 나는 한국어로 일기를 쓰거나 소피를 그리며 시간을 떼웠다.
하루 동안 휴대폰을 하거나 친구들과 짧게 카톡을 한 시간을 포함하면 한국어 사용 시간이 20분 정도, 워커들과 간단히 필요한 말을 한 영어도 20분 정도, 잠자는 시간 6시간을 제외하면 지겨운 독일어 속에 갇혀 있었다. 덕분에 언어가 빨리 늘었고 일을 처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지만, 마음을 나누고 수다를 떨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 눈치를 보다가 방에 먼저 자러 간다며, 외로움을 피했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 마지막 날이 왔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마음 편히 자고 싶으면서도 캠프가 끝나는 것이 슬펐다. 한동안 내 마음에 들어차 있던 이곳이 사라지면 그리움에 더해 소진된 것처럼 마음이 텅 빌 것 같았다.
마지막 저녁 식사는 외식을 즐기는 것이 쿤터분트 캠프의 전통이다. 평소보다 단정하게 옷을 입고 머리를 빗은 우리가 도착한 곳은 커다란 마당이 있는 식당이었다. 작은 물레방아와 분수도 있고, 닭과 거위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송아지 여러 마리가 있는 울타리 안에는 아이들이 함께 있었는데, 울타리에 걸쳐진 작은 사다리는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듯했다. 하늘은 빗방울을 머금은 듯 흐렸다.
식당의 저녁 타임이 시작함과 동시에 우리 일행은 식당의 야외 자리를 채웠다. 긴 테이블 두 개에 나뉘어 앉았고 아쉽게도 내가 앉은 곳 근처에는 소피 대신 티나와 베라가 있었다. 나무 테이블 위에 흰색 식탁보가 놓여있는, 전형적인 독일 전통 레스토랑이었다. 비닐로 코팅된 빨간색 메뉴판에는 에피타이저부터 본식, 디저트가 빼곡히 쓰여 있었다.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았다. 대표적인 독일 음식인 고기를 튀긴 슈니첼이 여러 종류 보였고, 여타 감자요리, 파스타 따위가 있었다. 음식을 고르기 전에 먼저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이들의 순서였다. 내 것을 주문하는 것도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에, 티나는 내게 주변 사람들의 음료를 주문하라고 했다. 맥주나 에이드, 커피 등 음료의 종류가 많았고, 그들이 웅얼거리듯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어 불안했다. 결국 티나의 도움을 받아 주문을 마쳤다. 나는 후베아트와 같은 레몬 맛 맥주를 받았다. 이 식당에서 내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거라는 불안한 예감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만찬이기에 참가자들이 한명씩 일어나서 소감과 감사의 말을 전했다. 워커들에게 감사한다, 는 첫마디 다음에 이어지는 말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꽤 길게 이어지는 말에 사람들이 다 함께 웃음을 터뜨리고 박수를 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독일어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처음도 아닌데, 난데없이 서러움이 몰려왔다. 워커들을 포함해 아무도 영어를 하지 않으니 나에게는 아무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그 말들이 필요 했다. 서툰 독일어나 나만 하는 영어로 말을 하는 것도, 모르는 말에 박수를 치는 것도 싫었다. 결국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자리를 피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참았던 것도 아닌데 눈물이 소나기처럼 내렸다.
주차장 가장자리의 바위에 주저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검은 화면에 눈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이 보였지만 은주와 현서에게 페이스타임을 꾹 눌렀다. 익숙한 기숙사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들의 얼굴이 보였다. 난데없이 오열을 하며 나타난 나를 보고 그들이 외쳤다. “왜! 무슨 일이야! 누가 때렸어?!”
아홉 살 적 혼자 버스를 타고 엄마에게 가던 길이었다. 실수로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했다.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는 법은 몰랐던 나는, 창밖을 열심히 눈으로 외워 작은 몸으로 꼬박 걸어왔다. 마침내 엄마를 만났을 때 나는 엉엉 울음을 터트렸고 깜짝 놀란 엄마는 소리쳤다. “왜! 무슨 일이야!” 친구들의 반응이 꼭 그때 엄마 같았다.
잘 지내는 줄만 알았던 내 비보에 친구들은 놀라고 걱정하는 눈이 됐다. 내게 주문을 하라고 한 티나가 얼마나 미웠는지, 이곳의 일이 얼마나 외롭고 고된지 뭉개진 발음으로 쏟아냈다. 일주일 동안 뭉쳐둔 힘듦이 세면대의 엉킨 머리카락처럼 줄줄 딸려 나왔다. 그러나 벌건 내 얼굴이나 아이같이 울며 전화하는 상황이 웃기지 않을 리 없었다. 실없이 터지는 웃음과 눈물이 보기 좋게 겹쳤다. 다시 잘 지내기 위해 연료처럼 얻은 걱정과 응원을 안는다. 단단한 설움도 모국어의 위로 안에서 조금은 괜찮아지는 듯했다.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일하는 가면을 쓰고 돌아갈 시간이다. 이미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를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음식도 대신 주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부은 얼굴을 어떻게 설명할 지 모르는 채 터덜터덜 자리에 돌아갔다.
내 옆에는 후베아트가 있다. 티나와 베라의 얼굴에는 설핏 걱정이 스쳤지만 금세 그들의 수다로 복귀했다. 베라는 모두 주문을 했으니 너의 것을 하라고 말한다. 아, 주문을 해주지 않았구나. 역시 독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곳은 친구들끼리 만날 때에도, 아무리 늦어도 음식을 물어봐서 대신 시켜주는 일이 잘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 음식을 시켜주지 않은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고 한국이라도 그랬을 수 있지만, 그때의 나는 역시 독일이라며 차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메뉴판을 다시 읽다가 베라가 주문한 것과 같은 기본적인 슈니첼을 골랐다. 부은 것을 티 내기 싫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른 이들의 음식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음식도 나왔다. 우적우적 그것을 먹었다. 맛은 괜찮았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후베아트에게 줄 티슈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무릅쓰고 웨이터에게 냅킨을 부탁했다. 그 순간 베라가 나이프와 포크가 있던 종이봉투에서 단정하게 접혀 있는 냅킨을 꺼내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왜 저기에 들어 있지. 쉬운 것을 난 찾지 못했다는 게, 누가 때리지도 않았는데 한 방 맞은 것처럼 허무했다. 손을 씻는 물을 모르고 마시는 이방인의 행세 같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 무리의 스위스 축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의 식당으로 몰려 들어왔다. 팀의 승리를 축하하러 왔는 지 기쁨에 취해 응원가를 열창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웃으며 그들의 승리를 축하했다. 모두가 아는 노래인듯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기 시작하자 얼굴 흰 사람들의 얼큰한 문화적 동질감이 열병처럼 퍼졌다. 그들이 하나가 되었을 때 나는 혼자가 되었다. 모든 웃음도 슬픔도 눈물도 음식도 건배도 술도 모르겠다. 나를 뺀 세상이 웃고 우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낯선 옥수수 밭 속에 완두콩 한 알이 된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나의 고향에서 아득히 먼 곳에 있다고 느꼈다. 나 이외에는 내가 눈꼽만큼도 없는 곳까지 온 것이다. 왜 남의 나라에 와서 이러고 있을까. 그게 여행일 텐데, 흥미롭게 지켜볼 수도 있을텐데, 그날 따라 그들의 즐거움에 푹푹 찔리는 나였다.
얼마 후 가게가 다시 잠잠해졌다. 연약함 밖에 남지 않은 내게 소피가 다가왔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괜찮은 지 물었다. (Are you okay? What’s wrong? Are you fine? Didn’t you order? Did anybody translate to you?) 마땅한 반응을 하지 못하자 그는 내게 허그가 필요한 지 물었다. (Do you need a hug?) 나는 푹 숙인 고개를 옅게 저었다. 품에 안기면 또 다시 눈물을 터트려 금방 그치지 못할 것이 뻔했다.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소피를 보내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눈물을 참았다. 즐거운 저녁이 되어야 하니까.
화장실에 가서 문을 잠그고 울다가 다시 돌아왔고, 후베아트가 요청한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줬다. 축축한 내 얼굴 같은 건 모르고, 혼자만 빛깔 좋은 3단 아이스크림 먹는 그가 조금은 야속했다. 내가 먹는 비용은 운영비로 지원이 되는데 그동안 별로 얻어 먹은 것이 없었다. 오늘은 속상한 기념으로 산딸기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주문했다. 상큼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 작은 티스푼으로 떠 먹었다. 톡톡 씹히는 작은 산딸기씨, 예쁘게 붉은 빛깔, 달콤상큼한 맛이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기분을 조금은 낫게 한다.
땅거미 진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모두가 디저트까지 식사를 마친 후 나는 후베아트와 야스민의 손을 잡고 차를 타러 갔다. 주차장에서 베라가 차를 가져 오는 동안 우리는 큰 길에서 베라의 차를 기다린다. 옅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 머리를 적신다. 차를 조심하라는 말, 그런 꼭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땅으로 내려온 우울한 비가 타닥 타닥 소리를 낸다. 어서 무거운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픈 마음 뿐이었다.
숙소에 도착했다. 마지막 아침만을 남겨둔 밤이다. 소피는 내일 차를 타고 가다가 점심으로 먹을 시금치 페이스트리를 구워보겠냐고 묻고,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를 보낸다. 구글 번역기와 소피의 설명을 참고해 밀대로 밀고 칼로 자르고 깨끗한 반죽을 만진다. 짧은 밀가루 덩이들이 손을 군데군데 희게 만든다. 데친 시금치를 반죽 위에 얇게 펴고 돌돌 말아 오븐에 넣고 그것이 다 구워지길 가만히 기다린다. 오븐 안에서는 익은 시금치 냄새가 나고 오렌지빛 열이 내 얼굴에 비친다. 자정이 넘은 시간, 오렌지색 잠이 쏟아진다.
완전히 어두운 밤 작은 조명 아래에서 소피는 내게, 아까 저녁 식사 때 괜찮았는지 물었다. 같은 질문을 두 번 했다는 것만으로 덧대어진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 독일어로 주문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고 답했다. 소감 말하기 때 느낀 소외감에 대해서는 말을 했는 지 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피는 내가 주문을 도와줄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써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가 그랬을지 차마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그들의 사정을 알았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챙기며 애쓰는 소피였기에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이 버거운 하루가 너무 길었을 뿐이다.
이날 이후에도 비슷하게 독일어에 갇히는 순간은 많았다. 그러나 나는 매번 조금 더 태연해질 수 있었다. 쿤터분트를 경험하고 나서부터 웬만한 설거지거리 쯤은 껌이지, 하는 여유를 갖게 된 것처럼. 따끔하고 저릿한 이런 날쯤은 커다란 예방 주사 하나 맞았다고 위안 삼길. 적어도 한 번도, ‘오지 말 걸’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