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쌓기

"영어로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by 반하의 수필

피아노가 있는 교실에 책상 대신 여러 개의 의자들이 반원으로 놓여 있다. 저녁 6시가 되자 학생들이 반으로 접힌 악보집을 가지고 교실로 들어온다. 창밖은 이미 어둡다. 겹겹이 쌓인 대화 소리로 교실이 꽉 찬다. 독일어 사이에 영어가 작게 비집고 나온다. 나와 세다의 목소리다. 음악 학부의 세다는 내게 합창 수업을 추천했고, 이날은 2학기를 맞아 시작한 합창 수업의 첫날이다. 나도 세다도 이전에 세 번의 첫 수업을 거쳤던 지라 많이 지쳤다. 의자가 세 줄로 놓여있어 남아 있는 뒷자리에 아무 데나 앉으려는 내게 세다가 말한다. “거기 오른쪽은 소프라노고 왼쪽은 알토야. 나는 알토로 갈 건데.” 여름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세다가 검은 코트를 입고 있다. 얼굴은 더 희고 입술은 더 빨갛게 보인다. 나는 그와 함께 알토로 이동했다. 북적북적한 교실, 내 외투의 밑단이 많은 학생들의 바지를 스친다.


60명 정도의 학생들 앞에 경쾌한 걸음걸이의 마른 남성이 지휘자의 자리에 나타난다. 그는 노래할 준비를 하기 위해 선 채로 팔을 멀리 뻗고 옆구리와 고개를 늘리며 다양한 방법으로 경쾌하게 움직인다. 물로 가글을 하는 소리나 시곗바늘이 똑딱이는 소리를 내며 목을 푼다. 나는 주위를 힐끔거리며 학생들의 동작을 따라 한다. 노래를 시작하고 나서는 옆에 앉은 세다와 함께 악보를 봤다. 선생님이 “54번, 8번, 13쪽” 이런 말로 어디인지 설명할 때마다 세다의 손가락이 악보 위의 번호로 향한다. “나도 숫자는 알아”라고 말하는 대신 그에게 작게 고맙다고 속삭인다. 진짜로 어려웠던 건 악보의 가사를 읽는 거였다. 그건 라틴어였는데 나로서는 살면서 라틴어를 읽어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독일 애들이 술술 악보를 읽으며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 나는 들리는 소리로 라틴어를 읽는 법을 파악하느라 바빴다. 노래는 성당에서 웅장한 오르간 연주와 함께 부르는 성가처럼 무척이나 느리고 지루했다.


“누드스케치에 가는 게 나을까, 합창이 나을까?” 합창에 합류하려고 노력하며 머리를 굴렸다. 합창과 누드스케치는 하필 월요일 저녁 6시로 같았다. 누드스케치는 지난 학기에 마쳤기 때문에 합창을 선택했지만, 막상 와보니 누드스케치를 또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내가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이곳은 달랐다. 박자도, 악보 읽기도, 소리를 내는 것도 어려웠다. 합창의 매력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시즌에 합창단으로 성당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


합창 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교수님이 무언가 설명을 하고 있는데 맨 뒷자리에서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스페인에서 온 교환학생으로 나도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친구였다.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고 그 애가 입을 뗐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르케스입니다. 스페인에서 온 교환학생이고 스페인에서 음악 교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독일어를 하지 못하니 저를 위해 통역을 해주세요."


그 애의 영어는 갑작스러웠고, 독일 학생들은 호의적인 태도로 웃었다. 교수님은 독일어를 못 해도 참여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음을 확인시켜 주며 환영한다고 말했다. 놀라웠다. 교수님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묻지도 않았고, 질문하는 시간도 아니었는데. 누가 시켜도 그런 말은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마땅한 타이밍도 없이 스스로 손을 들고, 자기소개를 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렸다. 교수님의 강이가 독일어에서 영어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누구든 주변에 있는 학생들은 이제 그를 신경 쓸 것이다. 마치 독일어를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가만히 앉아서 답답해하는 나와 달리. 내게도 저런 모습이 필요했다. 그 애의 행동은 “와,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나도 저런 모습을 가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가 한 말을 대사처럼 외웠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드러내는 용기가 어떤 똑 부러진 설명보다 멋졌다.


이틀 후, 수요일 저녁에는 BTZ에서 열리는 연극 동아리 설명회에 갔다. 1학기가 시작할 때도 은주와 함께 갔었는데, 움직임과 노래를 이용한 다양한 게임들을 해서 굉장히 과격하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다양한 연극 놀이를 했다. 교환학생은 나와 대만 친구로 두 명이었다. 둘 다 아시아인이라 눈에 띄었는지, 지난번에도 교환학생으로 와서 그런지 연극부 학생들은 독일어로 설명하고 영어로도 설명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고조되고 마지막 게임쯤 되자 그들은 영어를 잊은 듯 독일어로만 게임을 진행했다. 동작과 분위기로 게임의 규칙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 말을.

숨 참고 용기 내,

하나, 둘, 셋,

손을 들고 말했다.


“Can you repeat that in English?”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본 독일 학생이 곧바로 영어로 바꾸며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나의 방해를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그저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있는 외부에 나의 자리를 조금 마련한 것이다. 엄청나게 뿌듯했다. 나는 벌써 엊그제와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부러워하던 자리에 얼른 도달했구나. 다음에 정말로 필요한 상황일 때 이 말을 잘 써먹을 수 있겠다.


어릴 적 나는 학교에 가는 길에 넘어져 무릎이 크게 까졌다. 피가 흐르는데 선생님께 말을 하지도 보건실에 찾아가지도 않고, 누군가 볼까 봐 치맛단을 내리며 열심히 가렸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 아무도 내가 무릎에 커다란 상처가 있는지 몰랐다. 중고등학교 때에도 질의응답 시간이 있는 강의를 들을 때면 늘 뒷자리에 앉았다. 편안하게 손을 들지 않으면 될 텐데 혹시나 내게 말을 하라고 시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늘 얼른 이 시간이 끝나길 바랐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거치며 그런 면에서 많은 성장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떨리는 감정이 너무 선명하고 생생하다. 외국에 살며 나를 드러내는 상황이 더 적극적으로 필요해졌고, 연습의 기회도 자주 있었다. 모두의 눈이 나에게로 쏟아지고, 나는 조용해진 공간에 들어찬 내 음성을 책임지며 문장을 끝마쳐야 한다. 두려울 때면 주문처럼 외운다. “내 인생이다, 내 인생이다, 내 인생이다.” 이 교실의 분위기,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내가 시간을 할애해도 괜찮을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를 멈춘다. 그러기로 노력한다. 내 인생이니까. 주변의 사람들과 다른 상태이고, 다른 질문을 해도 된다. 감수해야 할 것은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 밖에 없다. 내가 있는 만큼 이 현실이 바뀌어도 괜찮다. 나 한 명이 30명의 시간을 1분 정도 써도 된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에 다가가기 위해서 오늘도 안 하던 짓을 하나씩 해본다.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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