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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영 Apr 09. 2024

K 선생님에게

출처: pinterest

2023년 3월, 진료실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죠. 그 당시의 저는 오래 다니던 1차 병원에서 쫓겨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절망감에 가득 찬 상태였어요. 제가 대학병원에 다닐 만큼 중증인가에 대한 의심도 있었어요. 어쨌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곳에 선생님이 계셨어요. 초진 때 제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해요. “제가 다시 의사를 믿을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무슨 대답을 하셨는지는 잊었지만, 꽤나 진심으로 답변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 후 선생님과 주 1-2회씩 진료를 보기 시작했죠. 제가 약물 치료보다는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시고선 환자 5명 분의 시간을 묶어 면담을 해주셨어요. 그 사실이 참 죄송하고 감사했어요. 약물 과다복용이나 자살 시도를 하고 진료실에 찾아가면, 예전 의사가 그랬 듯, 선생님이 저를 버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조심스레 입원 권유를 하셨을 뿐, 저를 병원에서 내보내지 않았어요. 몇 번이나 그런 시도가 있었고, 선생님은 모든 순간 제 치료자로 옆에 존재해주셨어요.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선생님을 만난 시간이 쌓이면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치료 효과’가 생긴 것 같아요. 더이상 진료실에 들어갈 때 불안하지 않고, 선생님이 저를 포기할까 두렵지 않아요. 최근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제안하셨잖아요, 외래에서 보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정신분석적 치료를 하는 게 어떠냐고. 그 말을 듣고 궁금해졌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제 치료 방향이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2년 반을 해오던 심리상담을 잠시 중지하고, 선생님과 심층 치료를 해보기로 결정했어요. 생각해보라고 하셨잖아요, 궁극적으로 무엇이 낫고 싶은 건지.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지금의 제 상태를 보면 무언가 나아야만 할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선생님과의 치료를 통해 그걸 찾아갈 거예요. 앞으로의 제 삶이 참 막막하고 여전히 저는 존재하기 싫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을 믿고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볼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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