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에도 때가 있다
“우울증? 그거 의지로 극복할 수 있어. 너가 노력을 해봐.“ 치료를 받기 시작한 후 종종 들었던 말이다. 가까운 사람들도,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의지의 문제를 언급하곤 했다. 나는 나를 노출하는 유튜버이자 블로거이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악플도 많이 받았다. 우리는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그건 의지의 문제이니 너가 노력해서 달리기를 하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왜 우울증 환자의 고통은 의지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나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우울증 치료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아주 강한 의지로 삶을 살아왔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외부에 힘든 티 한번 낸 적 없고, 초등학교 때 잠시 따돌림을 당했을 때도 의지로 이겨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내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들어갔다. 그 후에도 의지를 가지고 취업을 했고, 삶을 살아냈다. 의지가 없었더라면 이 모든 걸 이루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겪은 우울은 이런 의지로는 이겨낼 수 없는 문제이자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살아 숨쉬는 것조차 버거워서 매일 밤 가슴을 치며 울면서 잠드는 것, 당장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은 충동에 휩싸여 약을 한 움큼 집어들고 밀어넣는 것, 핸드폰 메모장에 써둔 유서를 고치고 또 고치며 마포대교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 것. 이것이 내가 겪은,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우울이었다.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나는 우울증이 뇌 호르몬 문제와 내면의 문제가 합쳐져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울증 치료에 필요한 건 의지 따위가 아니라 적절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이다. 거기에 더해 내 마음에 공감해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으면 더 좋다.
나는 2년동안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지금까지 3명의 정신과 의사와 1명의 심리 상담사를 만났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치료 세팅 하에 치료를 받고 있다. 매주 병원에 가서 20분씩 면담을 하고 약을 타오며, 매주 상담에 가서 60분동안 대화를 한다. 이 80분의 시간동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한다. 이것이 내가 표출하는 치료 과정에서의 ‘의지’이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것.
물론 내가 나중에 더 많이 나아 진다면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의지를 표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요리를 하는 등 나를 위해 의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지에도 때가 있다. 대부분의 중증 우울증 환자들은 현재에 살아 있는 것,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가 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러니까, 그것만으로도 힘들 사람들에게 의지를 가지라는 말을 하지는 말자.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큰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