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결혼식과 아빠
딸이 결혼을 했다.
멕시코에 있는 H리조트에서 양가 가족이 모여 서로 축하하며 행복한 예식을 거행했다.
캐나다에서는 예비 신랑 신부들 스스로 웨딩플랜을 세우고 초청손님까지도 자기들이 결정한다더니 내게도 현실이 되었다.
항공권 예약부터 호텔예약, 결혼 이벤트 모두 신랑신부들이 준비하였다. 딸의 결혼식에 부모도 마치 초청받아 간 기분이다.
그야말로 스몰웨딩(small wedding)중의 스몰웨딩이었다.
카리브 해안의 강렬한 햇빛, 늘어진 야자수, 에머럴드 빛의 파도, 금빛 모래알, 시원한 바닷바람, 비상하는 펠리칸, 갈매기 그리고 재롱둥이 돌고래 모두가 축하손님이 되어주었다.
여우비처럼 간간히 뿌린 빗방울은 딸바보의 눈물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의 날씨였다.
캐나다에서 멕시코로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시집가는 딸에게 전해 줄 편지를 쓰려다 보니, 딸과 어릴 때 같이 지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결혼 후 처음으로 딸을 얻었을 때, 하느님에게 받은 귀중한 선물이라며 우리 부부는 경이롭고 감사한 마음을 간직했다.
딸의 출생과 더불어 '아빠''엄마'라는 칭호를 처음 받았기에, 딸은 그때부터 우리 인생에서 큰 의미가 되어 주었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작게 태어났고 잔병치레도 많은 편이라 더 애지중지했다.
딸 키우기가 힘들고 벅차서 신앙생활로 무장해 가며 절대자에게 의지했을 정도였다.
나중에 늦둥이 아들을 낳자 딸은 터울이 진 동생을 잘 봐줄 정도로 책임감이 컸다.
부모의 사랑을 뺏겼다는 상실감도 있었을 텐데 참으로 대견했다.
딸은 발레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며 친구도 좋아해 학교 생활을 참 잘한 편이다.
그리고 주말마다 에버랜드 연간회원권을 이용해 밤늦게까지 놀다가 왔다. 솜사탕을 좋아하고 캐릭터 풍선만 보면 사달라고 졸라댔다. 야간퍼레이드까지 보고 오면 집에 돌아올 때 딸은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될 성 무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청개구리 동화를 비디오로 보고는 슬프다며 딸이 엉엉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당시 디즈니 시리즈 비디오를 섭렵했고, 세일러문 애니메이션과 인형에 빠져서 딸바보는 장난감 사주기에 바빴다. 딸은 아파트 단지 문방구의 VIP손님이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5학년때 갑자기 이민으로 캐나다에 왔다. 한국의 친구들이 단절되고 영어 배우기로 고생시킨 것이 지금도 딸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이민후 1년 만에 선생님과 면담할 때 딸의 일취월장한 영어 발표실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이후 아빠 엄마 역시 이민생활로 바빴지만 딸은 사춘기를 잘 보냈고 그럭저럭 공부를 잘했다. 모두 고마운 일이다.
그러다가 캐나다 동부로 대학을 가면서 딸과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딸바보는 딸과 떨어지기 연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덕택에 캐나다 대륙횡단, 몬트리올과 퀘벡시, 천섬, 나이아가라 폭포 등 캐나다 동부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바빴을 텐데 엄마 아빠가 힘들어할 때는 많은 일을 도와주었다.
이제는 엄마 아빠가 나이 든 것이 은근히 걱정되는지 무슨 일만 있으면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만들어 챙겨준다.
그러다가 2년 전 딸은 남자친구를 소개해주고 결혼도 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난 처음부터 딸의 결정은 틀림없을 거라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딸바보는 딸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끈끈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딸은 꼼꼼히 준비하느라, 엄마 아빠는 마음의 준비를 하느라 결혼식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저 멀리 수평선이 보이는 푸른 바닷가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고 곱게 화장한 눈부신 딸의 손을 잡는다.
같이 울면 화장이 지워지고 사진을 망치니까 아빠는 울지 말라며 딸이 마지막 명령을 내리고 있다.
이제 딸의 손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걷는 내 심장은 갓 태어난 딸을 처음 안았을 때와 똑같은 속도로 쿵쾅거린다.
딸은 언제나 세상의 중심이었다. 까르르 웃으면 아빠도 따라 웃었고, 딸이 눈물 한 방울 흘리면 아빠 가슴에도 비가 내렸다.
딸과 천천히 걸어가서 사위와 악수하고 마침내 딸의 손을 건넨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파도소리 때문일까, 바람소리 때문일까, 아직도 서툰 영어 듣기 때문일까...
그저 딸의 얼굴만 바라본다.
사위와 나란히 서서 웃는 미소가 한없이 아름답다.
딸 옆에 선 사위가 이제 엄마 아빠보다 더 사랑하고 아껴줄 것이다.
저기 멀리 보이는 수평선처럼, 막힘 없이 아득하고 아름답게 잘 살기를 바란다.
이제 엄마 아빠는 저 등대처럼 멀리 그들의 인생항로를 지켜볼 뿐이다.
딸을 시집보낸 딸바보도 이제 서운한 감정을 카리브해의 파도로 실려 보낸다.
결혼식으로 왔지만 멕시코의 여행을 즐겨야 할 때다.
여행다운 여행을 제대로 못 해본 아빠가 측은해서 이곳을 예식장소로 택했는 지도 모른다.
야자나무아래 백사장에는 beach hut가 줄지어 있다.
그늘이 적당히 있는 비치 벤치에 타월을 깔고 자리를 잡는다.
모히토 칵테일을 시켜 한 모금 마시고 책을 꺼내 든다.
푸른 하늘과 구름 아래에서 펠리칸은 에어쇼를 하고 있다.
난 파도를 한없이 바라보며 물멍을 때리고 느림과 게으름의 여유를 즐긴다.
그러다가 이내 심심하면 바다에 들어가 온 몸을 흠뻑 젹셔본다.
이튿날 새벽 수평선위로 오르는 웅장한 해돋이를 보았다.
일출 광경은 참 오랜만이다.
매일 저 해는 이렇게 뜨고 또 졌을 것이다.
무심하게도 나의 세월은 유수처럼 빨리 흘렀고, 이제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졌다.
붉고 찬란한 일출, 시원한 바람 소리, 출렁이는 파도소리, 물새 소리, 그리고 적당히 흘러가는 흰 구름 모두가 딸의 미래를 응원하며 카리브해에서 교향곡을 연주하는 위대한 아침이었다.
<에필로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예언자(The Prophet)에서 아이들에 대하여(On Children)라는 글을 읽은 후 자녀 키울 때 항상 명심해 왔다.
딸이 부모 곁을 떠나 결혼을 하면서 새삼 그 글이 생각난다.
.......
너희의 아이는 너희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너희와 함께 있을지라도
너희의 소유가 아니다.
너희는 그들에게 사랑은 주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지는 말라.
.......
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You may give them your love but not your though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