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와 중국계 케네디언
얼마 전 서울 한강공원에 군복 차림의 중국인들 100여 명이 군대식 행진을 했다는 모국의 뉴스를 보았다.
중국인의 특별한 행동은 한국인의 정서로 보았을 때 당황스럽고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와는 좀 다른 차원이지만 캐나다 밴쿠버의 공공장소에서도 중국인의 특별한 풍경을 자주 볼 수 있다.
집 근처의 호수 공원에서 오전 중에 산책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열댓 명의 중국인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춤의 모습과 형태도 그룹별로 약간씩 다르다.
이것은 광장춤(廣場舞)이라 하여 중국의 도시와 농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대중적인 집단 댄스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광장이나 공원에서 여럿이 모여 함께 추는 춤이 처음엔 이상해 보였다.
이제 간혹 한국인이나 서양인의 일부도 함께 어울려서 춤을 추는 경우도 있다.
점점 서양인들도 대수롭지 않게 쳐다보는 듯하다.
밴쿠버 도시 자체가 모자이크식으로 형성된 이민 사회이다 보니까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문화를 쉽게 수용하는 편이다.
특히 중국인은 밴쿠버에서 일찍부터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에 그들의 행동이 더 자유스럽고 당당해 보인다.
밴쿠버 시 전체 인구 중 중국계 인구는 약 25% 이상이며, 메트로 밴쿠버(광역 밴쿠버)에 속하는 리치먼드나 버나비등은 이 비율보다 훨씬 더 높을 것으로 본다.
밴쿠버의 중국계 이민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브리티시 컬럼비아(BC) 주를 휩쓴 골드러시와 캐나다 태평양 철도(CPR) 건설에서 시작된다.
그 당시부터 수천 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희망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오면서 인구가 늘었다.
중국이민자는 백인보다 저렴한 임금으로 차별대우를 받으며 캐나다 동서부 횡단 철도 건설에 동원되었다. 결국 오늘날 밴쿠버 항구가 물류 창구의 기반이 되는데 중국인이 크기 기여한 셈이다.
생존을 위해 모여든 중국인들은 당시 밴쿠버 다운타운의 동쪽에 독자적인 생활공간인 차이나타운을 형성해 서로를 의지하고 문화를 보존했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캐나다 정부의 중국인 배척 정책에 맞서는 중심지였다.
차이나타운에는 빨간색 가로등, 중국 전통 건축 양식, 그리고 순얏센 정원(Dr. Sun Yat-Sen Classical Chinese Garden)과 같은 중국 문화적 풍경이 남아있어 여행객에는 관광코스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곳은 예전보다 활기를 잃었지만 밴쿠버 시와 함께 역사적 가치 보존을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밴쿠버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바꾼 두 번째 계기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다.
안정적인 미래를 찾아 대규모의 홍콩 중상류층이 그 이전부터 거대한 자본을 들고 밴쿠버로 이주하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메트로 밴쿠버에 속하는 웨스트 밴쿠버, 리치먼드, 버나비 그리고 주변도시까지 주택 가격을 상승시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 중 하나로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 이후 부동산 시장은 등락을 거듭했지만 시장에서의 중국인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워낙 부동산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고가 주택은 물론 허름하고 땅이 큰 주택들도 재건축목적으로 투자했다. 중국인이 가격 폭등을 주도했다 하여 정부와 시민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 캐나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가 아닌 외국인의 부동산 투자 시 투기세 및 공실세(Speculation and Vacancy Tax)를 부과하는 법률이 생기게 되었다.
한편 밴쿠버의 거리를 걷다 보면 중국계 이민자들의 상점에서 독특한 풍경도 볼 수 있다.
밴쿠버 이스트나 리치먼드(Richmond)등에는 중국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중국어• 영어 이중 언어 표지판 또는 중국어만의 간판이 있는 곳이 많다.
최근에도 중국 본토로부터의 유학생 및 이민자 유입이 지속되면서 중국인의 경제적 영향력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중국계 자녀들도 고급자동차와 명품에 진심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과거 중국인이 부자답지 않게 수수한 복장이었다면 요즘은 외형만 보면 거의 한국인과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세련 돼 가는 느낌이다.
어떤 경우는 중국어로 다짜고짜 말을 걸어오는 경우가 있다. 영어구사 없이 밴쿠버에 사는 중국인 노인도 꽤 있는 것 같다.
중국계 캐네디언들은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이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교육 등 사회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밴쿠버의 중국인은 앞선 현지인들의 비난과 시기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 •경제적 기여도가 워낙 크다 보니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문화를 확실히 인정받고 있는 듯하다.
그 덕택에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들도 덜 차별대우를 받아 편리한 점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에 그늘져서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위험성도 상존한다.
K FOOD, K POP 등의 K 컬처가 세계적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한인 1.5세나 2세 이민자들이 정치, 경제분야에도 더욱더 영향력을 키워 그 독창성이 널리 알려질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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