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무 멀리 왔을까

강석경의 소설과 브런치

by Jerome 예롬

도서관에 가서 연체된 책을 반납하마자 한국어책이 있는 서가로 갔다.

좀처럼 연체를 하지 않는데 연장도 못한 거 보면 요즘 조금 바쁘게 지냈나 보다.

서가에 있는 책을 둘러보니 책의 제목이나 작가이름이 많이 익숙해졌다. 그것은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그동안 많이 읽었다는 것이고 점점 선택의 폭이 많지 않다는 말도 된다.

책을 고르던 중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라는 책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그 제목에는 순간적으로 해외에 살면서 느끼는 물리적 거리감뿐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나> 또는 <내면의 나>와도 너무 떨어어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있었다.

마치 내 삶의 궤적을 관통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강석경 작가의 소설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내용과 집필 의도와는 리 내게 또 다른 미로 다가왔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30대 후반 별로 성공하지 못한 영화감독(정관)은 대학 후배(오)와 우연히 관계를 맺어 실수로 임신까지 이른다. 이로 인해 오는 결혼을 원하지만 정관은 그렇지 않다. 그즈음 미국에 사는 게이 닥터(박)의 구애 전화도 받는다. 수년 전 조카의 죽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가 절망감에 만난 기묘한 관계이다. 이런 허무하고 타락한 후회하던 정관은 1년 전에 헤어진 이혼녀 재연 재회면서 사랑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재연은 인생의 공허을 느다며 오히려 정관과의 얽힌 매듭을 끊 자유로워진다.

관은 이제 남성으로서의 무기력함을 끼며 소설은 끝난다.

정관은 자기 존재를 채워준 여자를 찾았지만 연의 거절로 자신의 행동과 현실에서 간극을 느끼며 정체성에 혼동하고 있다.

등장인물 모두는 사랑의 엇박자랄까 사랑의 비대칭성으로 해 결국 인생 공허을 맛본다.



'나'도 너무 멀리 온 것일까.

나는 사랑대신 나의 꿈, 직업, 나온 세월을 대입해 내 생 또한 얼마나 공허한 지를 각해 았다.


멀리 떠나 해외에 살면서 언어적 장벽, 경험의 단절로 국에서의 프로페셔널 꿈을 더 키우다는 야망은 이제 한때의 짝사랑무너져버린 지 오래되었다.

이민후 생존하기 위해 전공을 믿어든 호텔 비즈니스는 오래전에 사의 노래 제목처럼 Good Goodbye를 해야 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일주 거리가 멀다. 과 현실의 극이 커간다.

인생 제2막 화려한 것이 아니고 회적 가면을 벗어도 된다며 미화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실은 여기에 계속 남아있으라고 유혹한다.

현실 나를 사랑해 주니까 그냥 감사하며 하라고 한다.

지금의 낯선 직업이나 행로는 이탈이 아니라, 나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위로한다.

​내가 원하는 일만 했다면 절대 몰랐을 세상의 이면과 겸손을 배우는 중이라고도 한다.


젊고 잘 나갈 때는 나의 성과를 숫자로 평가받았지만, 지금의 일은 고객 서비스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 왠지 색하다.

나이가 있는 현재의 나는 "놀면 뭐 하니?"식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씁쓸해진다.

인생의 먼 길을 참으로 열심히 걸어왔지만 현재의 모습은 초라 보인다. 쏟아부은 열정과 시간은 녹아서 <내면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겠지만 그 공허함을 부정하는 것은 위선일 것이다.


원래 가려던 길과 전혀 다른 풍경 속에 서 있을 때, 종종 너무 멀리 와버린 게 아닐까 하는 정체성의 확실성 된다.

그렇지만 멀리 떠나와야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니라, 더 넓어진 에 머물 <내면의 나>와 대화하고 성장하는 기회 된다.

이런 감이 교차하는 소용돌이 속에브런치 매일매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 구원이다.

<내면의 나>임없이 하고 그 소리를 들으며 '나'를 위로하고 '나'를 위로받는다.

브런치는 숲 속 길을 산책하면서 느끼는 느림과 단순함의 여유를 선사해 준다.

브런치는 매리 올리버(Mary Oliver)의 시멀리 떠나온 나 위로해 준다.


<내가 나무들과 함께 있을 때>
나무들 사이에 있을 때면,
특별히 버드나무와 참나무,
가래나무, 소나무들 사이에서,
나무들은 기쁨의 기운을 내뿜는다.
그것들이 나를 구원한다고, 매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나 자신의 희망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던 내가,
그 안에서 선함과 통찰력을 얻고,
세상에 절대 서두르지 않으며,
천천히 걷고, 자주 고개 숙여 인사한다.
내 주변의 나무들이 잎을 흔들며
"잠시 머물다 가."라고 부른다.
나무 가지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나무들은 다시 부른다.

"단순해, "라고 말한다.
"너도 역시 왔구나,
이런 일을 하러, 마음을 편히 갖고, 빛으로 채워, 환히 빛나기 위해서."


<When I Am Among the Trees >
​When I am among the trees,
especially the willows and the oaks,
there is the hickory and the stately pine,
they give off such hints of gladness.
I would almost say that they save me, and daily.
I am so distant from the hope of myself,
in which I have goodness, and discernment,
and never hurry through the world
but walk slowly, and bow often.
​Around me the trees stir in their leaves
and call out, “Stay awhile.”
The light flows from their branches.
​And they call again, “It’s simple,” they say,
“and you too have come
into the world to do this, to go easy, to be filled
with light, and to shine.”



이 시는 멀리 떠나온 나에게 숲 속 나무들에서 느끼는 평온함으로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무처럼 빛을 내라는 메시지 준다.

멀리 떨어져 있음에 공허하지 말고 자연을 통하여 구원받으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

이런 메시지와 희망은 요즘 브런치의 글을 쓰고 읽게 함으로써 <내면의 나>를 위로해 주는 힘이다.



#브런치 #작가 강석경 #매리 올리버#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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