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에서의 열흘

과거의 조각들을 연결해 주는 여행

by Jerome 예롬

3월 초 짧지만 차게 모국여행을 다녀왔다.

쌀한 날씨 탓에 기운을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열흘간의 나그네로 살면서 행의 느낌을 브런치 올리겠다고 생각은 지만 쉽지 않았다.

보고 들은 것들을 틈틈이 내서랍 메모하는 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침 인천 국제공항에서 출국절차를 마치고세점옆 북카페 우연히 들서야 여행에 있었던 일을 정리 짬이 생겼다.


1,2년에 한 번 찾는 모국은 어머님의 품같이 편안한 마음을 기대하지만 불편하고 번거로운 점이 아직도 많다. 유심칩 구매 및 교체. 버스 및 지하철의 탑승 및 환승. 구매 시 원화로 결제하기, 약속장소 찾아가기, 은행업무, 연락처 찾기등이 그렇다.

캐나다에서는 일도 아닌 것이 국에 가면 헤매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이럴 때면 한국이 과연 고향인지가 혼돈스럽타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번 흘간의 여행은 가족이나 친구와의 재회를 통해 그들과 따뜻한 끈을 연결, 나 자신을 뒤돌아 보며 뿌리를 찾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오랫동안 단절 회로가 연결되고 회복 이루어 느낌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랜만에 누님들을 뵙게 되어 더욱 좋았다.

누님들은 서울에서 떨어져 살고 계시기에 동안 한국을 방문찾아뵙기가 여의치 않았다.

이번에 누님들을 뵙고 우리 집안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막내로 태어난 나는 내 어릴 적의 조부모님,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에 더욱 흥미왔다.

누님들로부터 들은 얘기들은 단순히 우리 가족의 역사이지만, 1900년 전후 일제강점기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부모님부터 시작하여 부모님, 삼촌, 형님과 누님들의 삶의 애환은 마치 대하소설을 읽는 듯했다.

젖도 돌지 않는 노산으로 태어난 나는 그나마 어머니가 장사를 나가면 젖대신 구수한 곡기(穀氣)의 밥물로 누님들이 나를 키웠고 들었다. 누님들이 고맙기도 하고 내 유년시절에 스스로 애틋함이 느껴졌다.

동해의 어느 마을에 사는 누님과는 맛있는 토속음식과 싱싱한 회, 오징어, 과메기 등 해산물을 먹으면서 모처럼 모국의 맛을 느꼈다.

참으로 오랜만에 엄한 동해의 출도 보았. 아직은 겨울바다 거친 파도를 옆에 두고 레일 바이크를 힘차게 으며 노년의 남매는 잠시 은 시절 돌아 수 있었다.

'커피에 반하다'란 이름 끌려 그 카페에 들러 누님과 함께 커피 한잔의 여유로 음악을 들었다. 산비탈에 하얗게 꽃 핀 매화나무들의 정경도 한국의 이른 봄을 느끼기에 좋았다.

주일날 그곳 공소에 가서는 교우수가 적은 탓에 누님과 나는 신자들의 기도까지 바치며 미사를 올렸다.

또한 아직도 건강하게 마을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활기차게 사는 누님의 모습에 내 마음도 든든해졌다


귀여운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둘째 누님과는 로를 따라 확 트인 들판을 산책했. 예전는 봄이면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을 캘 만큼 평화스웠지만, 지금 비닐하우스 화훼 농장에서 바삐 일하는 모습 예전의 벼농사할 때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누님이 결혼 전에 엄격한 유교사회였던 골에서 어떻게 연애했을까 궁금했는데 둘째 누님 러브 스토리 우연히 들으니 참로 기발하고 재미있다.

특히 만석꾼 집안로 시집가서 많이 힘드셨을 데 누님의 시집살이, 가정생활, 자녀교육, 신앙생활 보면 슬기로움과 지혜로움이 가득해 존경심이 절로 오게 되었다.


이번 방문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울이 아닌 내 고향 Y시를 베이스캠프로 하여 숙소를 정했다. 처갓집이 있기도 해 처형의 이런저런 도움 받을 수 있어 금상첨화였다.

중학교까지는 Y시에서 학교를 다녔고 서는 그곳 성당에서 결혼식 올리기도 했다.

도착 다음날은 중앙공원을 산책하고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부모님을 비해 우리 집 두가 그 성당에서 세례 받았니 개인적으로는 성지순례 름없다.

더구나 조부는 그 옛날 이 성당에서 금 떨어진 곳, 김대건 신부님이 사목 하셨던 은이 공소 다니 셨고 한다.

조부는 매주일마다 신덕고개(은이고개)를 넘어 다니며 미사를 참례하고, 우리 안 모두에게 신앙의 씨앗을 뿌셨다고 해진다.

조부는 피땀 흘리며 신덕고개를 넘어 니셨 하고, 어머니를 따라 나도 소년시절 가을이면 망덕고개와 애덕고개를 넘어 두세 차례 미리내 성지를 다녀온 기억이 렴풋이 아있다.

당신들을 생각하며 젠가는 리 집안과 인연이 깊은 삼덕(三德) 고개의 도보 순례길을 완주해 보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요즘은 '금수저'를 부러워하는 세대라지만 조부는 후손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위대한 유산'을 남겨. 왠지 음속에 또 다른 풍요로움이 자리하 행복이 흐른다.


이번 모국 방문에 작심한 것은 초등학교 동창을 나 안부를 묻는 일이었다. 친구 P는 원래부터 동창회에 아주 적극적이고 의리가 있는 친구라 동창들의 근황을 소상히 잘 알고 있었다.

우리 학급은 한 학년이 한 학급 밖에 없어 학년이 바뀌어도 똑같은 친구들이다. 6년간 가족처럼 지낸 사이니 흉허물이 없을 정도로 언제 보아도 서로 반가울 따름이다.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생사여부, 건강여부, 은퇴여부, 소식이 닿지 않는 친구 등이 얘기로 많이 오갔다. 로만 듣던 어떤 동창의 슬픈 황혼 이혼의 얘기도 있었다.

어쨌든 재래시장 안 족발집에, 11시 대낮부터 소주를 시켜놓는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 유쾌한 술안주로 삼 회포를 풀었다.


이번에도 고향 동네 친구 모임인 '삼총사'의 만남은 빠질 수 없었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개구쟁이로 보내고, 모두 서울서 대학생활을 한 촌놈들이며, 직장 생활하면서도 만났던 사이다.

내가 이민을 떠난 후 한동안 소원해지긴 했는데 몇 년 전부터 다시 연락이 되었다.

로 마포 근처에서 만나 다양한 술과 안주로 소싯적 얘기, 대학시절, 가정사, 세상 사는 얘기 화제다. 그러다가 경의선 숲길을 걷거나 라이브카페에 가기도 한다. 작년에는 북악산 성곽길을 걷고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도 했다.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말에 군말 없이 나오는 친구들이 하염없이 고고 과분할 뿐이다.

이들 죽마고우는 이민자인 나에게는 모국을 찾았을 때 오아시스와 같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다.

모두 애처가들이라 런지 이번 모임에서 2년 후에 부부동반으로 유럽 지중해의 크루즈 여행을 자는 제안이 왔다. '삼총사' 부부모임이 성사되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다. 아내들끼리는 거의 30년 이 다되어 만나는 것이 무슨 얘기들이 오갈지 궁금하다.


서울에서 깐 볼 일이 있 홍대 앞 리도 걸었다.

S선배 일식집에서 식사하기로 는데 약속시간 전에 도착해 그 거리의 정경을 느껴보았다.

그 선배와는 옛날 가족을 동반해 스키, 볼링, 낚시뿐 아니라 자주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자녀가 캐나다 유학생으로 공부하러 오면서 더욱 가까워진 사이다.

이번 여행 중에는 메가커피를 주로 마셨는데, 선배가 스타벅스에서 사준 커피와 디저트 케이크 또한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홍대 거리는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패션이 넘치는 은이의 거리였지만 명동처럼 외국인이 제법 많았다. 래서 그런지 세대차는 느꼈지만 오히려 그들의 모습과 언어이질감은 라졌다. 언제나 어디서나 피부 색깔 언어가 달라도 자연스러운 것은 오랜 이민생활 탓 것이리라.


이번 여행의 피날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관람해 당시 관객수 1000만 명 돌파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나그네였지만 운 좋게도 시니어 요금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슬프고 인간미 넘치는 영화에 울먹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도 이방인이 아닌 한국인의 피와 정서가 흐르는 1000만분지 1 임에 더욱 감동스러웠다.


이번 흘간의 모국 방문은 가족, 친구, 신앙등 흩어져 있는 나의 과거의 조각 현재와 다시 단단게 연결해 주는 회로의 완성이었다.

또한 나의 과거의 뿌리를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행이자 순례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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