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읽은 책에는 이유가 있다!

- ‘중세의 가을’을 읽고

by 준 원 규 수

호이징가 저/ 최홍숙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3년 – 내가 가진 책이며 읽기 시작한 책.

하이징아 저/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12년 –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며 마무리한 책.


일요일 연재가 늦어진 이유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로 유명한 호이징가. 그가 중세 말기의 프랑스 브로고뉴 지역을 중심으로 쓴 <중세의 가을>은 내 책장 장식용 책 1호이다. 대학 시절, 교수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재미있다고 했던 책을 졸업 후 우연히 서점에서 만나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읽어야지, 펼쳤다가 ‘어이구야’ 다시 책장에 꽂았던 기억이 난다. 문지 책답게 하얀 표지에 아래쪽의 빨간띠는 책꽂이에 꽂아두었을 때 깔끔한 맛이 나는 인테리어 효과가 있었으므로 보면 볼수록 예쁜 책이었다.

하지만 브런치의 연재 힘을 빌어 이제는 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했었다.

마침 9월이었고, 힘들어도 가을동안 책을 다 읽고 감상문을 쓰면 되니까 참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인문교양서인 이 책의 저자는 비유적 표현을 사랑한다. 프랑스판 번역책인 내 소유의 책은 직역을 택한 듯 어색한 문장이 많았고, 심지어 목적어 같은 주요 성분이 생략된 문장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결국 읽다읽다 다른 번역판을 읽어보기로 했다.

호이징가가 수정해서 재출간한 영역본을 번역한 연암서가의 책은 읽기 훨씬 수월했다. 의역을 택했다고 역자가 밝힌 것처럼 반어적 의미로 쓰인 문장인데 독자가 그 흐름을 놓치기 쉬운 문장 뒤에는 그것이 반어임을 설명하는 번역가의 주석이 달렸다.



읽는 재미가 있는 책, 하지만

문장 내용이 잘 들어오면서 읽는 재미도 붙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불러오는 생소한 설명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아래에 존재하는,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깨달음들 깨알같은 감동들이 있었다. 하지만 번역이 편해졌다고 해서 조금은 산만한 듯한 글의 흐름이 간결해진 것은 아니어서 내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흐름을 놓치거나 머리 속에 정리되었던 핵심 내용들은 쉽게 흩어졌다.

그러다보니 한 번 흐름이 끊어지면 다시 독서의 속도가 붙는 데에는 정말 예열시간이 오래 걸렸다. 물론 여기에는 내 약한 집중력과 산만함이 한몫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중에는 메모를 해가며 책을 읽었는데 메모만 20장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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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의 빈틈을 확인하는 재미

미시사에 바탕을 둔 이 책은 중세 말의 프랑스 브로고뉴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왕족부터 평민들의 삶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세기말의 암흑기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많은 형식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 그 때 만들어진 겉으로만 아름답고 신사다운 기사도 정신이 지금의 국제연합 정신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강처럼 계속 흐르는 역사들을 세기별로, 사건별로 익히다보니 내 머릿속에서 역사들은 무척 단편적으로 인지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듯 중세 다음 르네상스라고 시대 구분을 한다해도 중세라는 오랜 시기의 사회적 관념들이나 문화적 습성들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1894년 갑오개혁에서 법적으로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스스로를 백성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있고, ‘근본’ 운운하는 대사들이 막장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수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의 말로 흔하게 나오지 않는가.

바다의 썰물과 밀물을 파도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것처럼 사람들의 삶에서 시대적 변화를 알아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또, 아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형식에 의미를 두고 생활의 곳곳에 종교적, 상징적 의미들을 부여했던 중세의 프랑스인들과 사람다움을 위해 ‘예’라는 것을 중시했던 조선인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상징과 의인화가 지나치게 일반화되어서 오히려 그 의미가 퇴락했다는데 우리가 요즘에도 종종 쓰는 탄생석이나 꽃말 같은 경우도 여기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중세인들의 흔적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15세기에 소수의 프랑스 사람들이 인문주의의 형식을 받아들였지만, 아직 르네상스를 대대적으로 환영할 만큼 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의 정서와 방향 감각은 여전히 중세적이었다. 지배적인 ‘삶의 가락’이 바뀔 때, 혹은 치명적인 현세 부정의 썰물이 새로운 밀물에 길을 내주면서 상쾌한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비로소 르네상스는 찾아온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역사와 바다의 비유가 책의 막바지에 나타나서 놀랍기도 하고, 뭔가 뿌듯하기도 했다.

많은 문학작품들과 회화, 사건들을 자료로 제시하며 당시 사람들의 역동적인 생활과 삶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며, 암울했던 중세말이라 해서 사람들이 삶을 포기했던 것은 아니라고 역설하는 600쪽이 넘는 책을 읽어가면서 느꼈던 것은 결국 이 작가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중세 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시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나가고 삶을 장식해나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호모 루덴스’로 뻗어나갔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을 검색해보면 내 추측이 맞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겠지만 책의 뒷장을 보는 순간 모든 열정은 사라져버렸다. 넘나 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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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걸렸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책장에서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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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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