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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혼일기 07화

두 번째로 떠오르는 장면

이혼일기, 두 번째 상담 episode 2.

by 검정멍멍이




─두 번째로 떠오르는 장면은...

─어릴 때 엄마가 운전을 잘 못하셨어요.


─네.



어릴 적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바다가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 새로운 집에서 옛날집까지 거리는 그리 멀진 않았지만 길이 험해 자주 가기는 어려웠다. 이제는 고속도로가 뚫려 두 시간이면 갈 길도 그때는 도로가 나빠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야 했고, 편도로 세 시간 반에서 네 시간 가까이 걸렸다. 우리 가족 모두의 고향이었던 그곳에 오랜만에 간 건, 봄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여름의 문턱쯤이었을 거다.


아빠는 엄마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언제까지 장롱 면허로 살 거냐며 도로가 한적하니 운전 연습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도로가 한적한 건 그리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건 아빠에게나 좋은 이유였다. 누군가 옆에서 말로 잘 설명한다고 해서, 누구나 운전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아 서툴렀고 이미 운전이 본능처럼 몸에 밴 아빠에게는 성에 찰 일이 단 하나도 없을 게 불 보듯 뻔했다.


우리는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언덕길의 시작지점을 오르다 말고 갓길에 차를 세우고 엄마가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여기서부터가 좋겠다고 몇 번을 반복해 말했다. 시작은 좋았다. 그런데 운전을 못하는 엄마에게 아빠는 점점 짜증을 냈고, 거듭 설명해도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엔 화를 내며 욕설까지 퍼부었다. 그러다 차를 멈추라고 했다.



운전석에서 보조석으로.
터벅터벅.

보조석에서 운전석으로.
씩씩대며.



두 사람이 자리를 바꾸기 위해 서로 교차했다. 씩씩대는 발걸음은 냉정하고 빨랐고, 터벅거리는 발걸음은 착잡하고 무거웠다. 엄마가 채 자리를 옮겨 앉기도 전에, 아빠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출발했다. 언덕길에서 얼마나 액셀을 쌔게 밟았을까. 엔진소리는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창문 너머로 점점 멀어지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감정을 느꼈다. 나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선생님께 설명하며 다시 불쾌하게 올라오는 그날의 감정 대신 어금니를 깨물었다. 다 잊었다,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내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화를 삭이지 못하는 어른을 내가 얼마나 증오하는지 꼭 기억하리라 다짐했다.



한참을 마른 눈물을 쏟아냈다. 서러운 기억에 목이 메어 왔다.

─글쎄... 모르겠어요. 어릴 땐, 좋은 기억들이 별로 없으니까 제가 어느 시기에 뭘 했는지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엄마가 막 멀어지고 한참 길을 달렸어요. 그리고 한참을 더 달리다가 다시 돌아왔어요. 결국 엄마를 태워서 다시 갔거든요.

─자기를 두고 출발하는 차를 따라서 엄마가 한걸음 한걸음 걸어오는데... 그걸 바라보니 정말 미칠 것 같았어요.

─어우... 너무 걱정이 됐겠다 애는...

─......


─너무 어릴 때라 아빠한테 뭐라고 할 용기가 없었나 봐요. 제가...

─그날, '차 세우라고, 엄마를 왜 버리고 가냐고' 아빠한테 뭐라 했어야 했는데. 참... 그걸 못했네요.

─아유... 그럼, 막 화가 나 있으니까...

─왜냐하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맞고 자랐거든요.


선생님이 메모를 하며 물었다.

─아, 그래요?! 뭐 맞았던 장면 기억나는 게 있어요?


─맞았던 장면은 뭐 수 없이 많으니까...

─하... 맞았던 장면이라고 하시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거는 제가 중학생 때가 떠오르네요.


─컥컥.

입을 꽉 다물었지만, '컥' 하는 기침 소리가 새어 나왔다. 벌써 이 주째 멈추지 않는 기침이었다.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중학생 때 눈썹 문신을 했어요. 제가 미간이 좀 넓어가지고 나름의 콤플렉스가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또렷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아빠 말처럼 똑부러지고...
엄마가 허락을 해줘서 눈썹 문신을 하고 왔는데, 집에서 아빠랑 동선이 겹쳤죠. 아빠가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눈썹에 그거 뭐냐고 하면서 저를 때렸어요. 외모를 가꿀 시간에 머리나 채우라고 말하면서...

─머리에 든 것도 없이 얼굴이나 꾸밀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어요. 정말 쌔게 머리를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막 그렇게 진짜 폭행하듯이 맞았던 거 같아요.

아버지가 몸집이 크세요?

─네. 조금 큰 편이긴 해요. 그 연배 또래분들에 비하면...

─후... 그런데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근데 그냥 참았어요. 그리고 가서 화장실 가서 지우라고 그래서 바로 지웠어요. 그때 정말 제가 열받아서...

─와...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네요. 그게 그 정도까지 사람을 때릴 일인가? 아... 모르겠어요.


도대체 내가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건지, 이 얘기를 왜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가 더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제가 요즘 퇴사하고 뭘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중에 엄마, 아빠, 저 이렇게 딱 셋이서 여행이나 갈까? 싶었어요. 가서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근데 과거를 얘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해소가 될 건데, 그... 엄마와 아빠의 과거 상처는? 그들도 애써 묻고 살았던 상처를 내가 다시 끄집어내는 걸까?

─결국에는 나도 해결이 안 되고 부모님 또한 젊은 시절 괴로움을 다시 상기하게 만드는 것밖에 안 될 것 같다 싶기도 해요. 동시에, 내가 이걸 왜 하려고 하지 자꾸. 이걸 안 하면 내가 뭔가 해소가 안 되는 이런 어떤 괴로운 감정이 계속 남아 있는 건가. 뭐 그런 생각도 좀 들고 그래서 요즘 갈등이 생겨요."


─지난번 엄마한테 가서 내년 계획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여쭤봤더니 설에는 동남아, 여름에는 북유럽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봄에는 딱히 계획이 없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럼 정말 셋이서 여행을 떠날까 싶었어요.

─그런데 저번에 선생님이 "모든 게 의미 있을 필요는 없다"이런 말씀을 해 주시긴 했지만, 계속 생각해 보니까 여행을 함께 가서 이야기를 꺼내는 게 의미가 없고 그렇게 하는 행위 자체가 나한테 어떤 '해소됐다'라는 그런 통쾌한 기분 감정이라도 느끼게 해 줄까?라고 고민해 봤을 때 그렇게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


─그러니까 제가 자꾸 이렇게 남편과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남편이 엄마랑 똑같다고 말하면서 자꾸 원가족, 원가족 하며 언급을 하는 이유는요... 남편을 만난 건 제 인생의 여러 선택들 중에 잘못된 선택이자 실수고 실패지만 이거는 그냥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고 앞으로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


─결혼으로 딸이라는 삶의 원동력이자 이유가 생겼으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건데, 결국에는 지금 제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 것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고 또 이런 힘든 일들이 왜 더 비참하게 느껴졌을까를 끝까지 파고 들어가 보면 그 끝에는 원가족이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원가족한테 가서 나는 이랬고, 그때 나는 피해자였고, 지금도 괴롭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내일모레면 마흔인데 이제 와서 그거를 한들 어떤 해방감 혹은 해소감은 분명히 있겠지만 이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내뱉을 그 말들이, 아직 최소 20~30년은 더 살아가야 할 부모님한테 그들 또한 너무 괴로웠을 그 시기를 다시 상기시키는 일을 만들지 않을까요?



오히려 모두가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이런 마음을 부모한테도 얘기도 못하고 얘기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 그러니까 그냥 혼자 삭히고 사는 거다. 누구나 다 한 두 가지쯤, 가슴속에 묻어두고 사는 삶의 사연들이 있으니까. 뭐, 그런 정도...


─......


─네... 떠오르는 건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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