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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깨비독서모임 후기

나 홀로 읽는 도덕경

by 행복한금작가


올해 처음 독깨비독서모임을 2월 23일 가지게 되었습디다. 독서로 깨우치고 비상하다는 뜻으로 함께 성장하다는 의미도 같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주미령 작가님이 추천해 주신 책으로 읽고 세 번에 거쳐 리뷰를 하였습니다. 이 책으로 주작가님은 필사 모임에서 필사와 코멘트를 리더로서 이끌어 주신 책이라 남다는 애착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녀가 뽑은 논제를 허락을 받고 올립니다.

1. 작가 소개 – 최진석

최진석 교수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문을 시작하여, 철학적 사고와 교육학을 접목시킨 독특한 연구 영역을 개척해 왔습니다. 그는 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철학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중요시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서양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철학적 이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와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해석합니다.



최진석 교수는 철학과 교육을 결합하여 사람들에게 더 깊은 이해를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철학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 심리학적 접근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릅니다. 특히, ‘인간 존재론’과 ‘윤리학’에 대한 연구는 그의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로 꼽히며, 이를 바탕으로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습니다.


그의 저서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철학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 책들입니다. 그가 쓴 《철학의 의미》와 《인생을 여는 철학》은 많은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책들은 철학이 단순히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 외 다수의 저서가 있습니다.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EBS), 『탁월한 사유의 시선』(21세기 북스),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북로 덴스) 등.


2. 책 소개(서문 참조)


- 이 책은 『도덕경』을 공부한다는 한 독자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혼자서 『도덕경』을 읽어보고 있다는 그녀를 직접 만나 『도덕경』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에 대답한 시간을 담아낸 것입니다. 여기에 저자 나름대로 『도덕경』 이해에 중요하다 싶은 질문과 대답도 덧붙여보았습니다.


- 1부 : 『도덕경』의 내용 중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을 묻고 답하는 대화 형식으로 푼 것


2부 : 어떤 주와 해설도 없는 『도덕경』 원문과 번역문으로 구성


- 아무리 높은 평가를 받는 고전이라도 숭배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숭배하지 않기 힘들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키우는 연료로만 사용해야 합니다. 고전은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소비하는 것이 낫습니다. 소장자보다는 소비자가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읽는 ‘홀로 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3. 논제

논제 1) ‘사상’과 ‘철학’을 구별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무엇일까요?


- 저자는 사상과 철학이 어떻게 다르다고 하였나요? (p. 28)


☞ 사상 Thought은 인간이 살면서 판단과 추리를 거쳐 갖게 된 의식 내용 이자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춘 인식 체계이고, 사회 및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사상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원리라기보다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주장인 경우가 많습니다.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등을 따지면서,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앎은 어떤 경료를 겪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위 해야 하는지 등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체계를 이룬 고도의 추상적인 사유입니다. 예를 든다면, 신채호 선생님 같은 분은 사상가이지 철학자는 아니시죠. 사상보다는 철학이 훨씬 철저한 인식이자 추상적인 인식입니다. 사상은 철학보다 덜 보편적이고, 철학은 사상보다 더 보편적이죠.


철학과 사상은 층위가 다릅니다. 추상 정도에 따른 층위죠. 더 추상적일수록 더 원리적이지 않나요? 현실적인 효용성으로 보면 사상이 더 직접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고, 철학은 더 간접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죠. 그런데 지적인 수준과 추상적인 정도로 보면 철학이 사상보다 훨씬 높고 정밀하고 체계적이에요. 철학은 추상 사유를 할 수 있어야 해요. 핵심은 추상이에요.


논제 2) 저자가 노자의 ‘무’를 이해하는 방식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 (p. 69)


- 노자의 ‘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p. 68-69)


☞ 노자가 말하는 ‘무’는 무엇일까요?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으면서 기능성과 활동력은 있는 거예요. 즉 경계에 있지만 그것 자체의 실재적 존재성은 없어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일이 일어나고 만물이 제대로 생기고 작동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달리기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출발’ 같은 거예요. 출발! 이 순간은 없거든요. 달리기나 준비라는 동작은 구체적으로 있지만 ‘출발’이라는 동작은 사실 없어요. 어디서 어디까지나 출발인지 확정할 수가 없죠. ‘현재’도 마찬가지예요. ‘미래’나 ‘과거’는 어떤 범위를 정해서 설명할 수 있지만, ‘현재’라는 순간은 전혀 포착할 수 없습니다. (중략) 저 문도 마찬가지예요. 구체적인 문짝은 있지만, 저 문은 없는 것이에요. 문은 안과 밖의 ‘사이’로만 있거든요. 경계인 거예요.(중략)


노자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지는 세계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세계가 있는데,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세계를 ‘무’라 하고,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를 ‘유’라고 한 거예요. ‘무’는 마치 시작이나 출발이나 현재처럼 자신의 실재적 존재성은 감추고 있지만, 이 세계를 드러나게 해주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요. 노자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이 세계가 ‘무’와 ‘유’의 상호의존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무상생有無相生’이에요.


논제 3) 배움의 궁극적 목적이 뭘까요?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세요. (p. 107


- 노자가 주장하는 진정한 앎은 어떤 형태이고, 또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p. 107-108)


☞ 모방한다는 것은 자기가 자기 삶을 정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모범으로 정해놓고 그것을 추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학學의 방식을 취하게 되면 자기 삶에 자기가 없고, 다른 삶이 자기 삶으로 들어와서 내 삶이라고 자꾸 착각하게 만들죠.


저는 젊은이들이 남의 삶을 모방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마다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다”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을 한 번쯤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덩달아서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왜 배우는 거예요? 잘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죠. 그럼 잘 사는 주체는 누구죠? 바로 자기 자신이죠. 자기가 잘 사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 삶의 방법을 찾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잘 산 다른 사람의 삶을 따라 하기 위해서 배우는 경우가 너무도 많아요. 그럼 잘 살려면 자기의 삶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까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것이 분명해야 해요.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는 거죠.


논제 4) 노자가 말한 국가의 통치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단어로 말하면 무엇일까요? (p. 129)

- 노자가 국가를 신비로운 그릇을 뜻하는 ‘신기神器’로 보았는데, 이를 조율해야 하는 통치자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p. 129-135


☞ 전쟁을 각오해야만 평화를 얻을 수 있어요. 전쟁과 평화는 다른 두 면을 가진 하나의 사건이에요. 이것이 유무상생의 원리죠. 평화는 평화로운 태도와 언어 그리고 평화로운 표정이나 안색만으로는 이룰 수 없어요. 전쟁과 평화를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확신하는 사람이 전쟁을 반대한다면, 전쟁에 사용되는 것들을 전부 없애야 한다고 말하겠죠. 바로 헛똑똑이예요. 순진하거나 착한 것이 아니라 바보입니다. 국가가 신기인 것을 아는 정도로 지적인 두께가 쌓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전쟁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자세를 가지고,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준비한 자들만 전쟁을 막을 수 있죠.


전쟁은 일으키는 일과 막는 일 사이에 있습니다. 헛똑똑이들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고, 무조건 막는 것만 생각합니다. 일으킴과 막음이 공존하는 일이 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통치자들은 이런 인식에 철저해야 하지만, 지적인 두께가 얇아 한쪽을 선택하여 확신한 일만 해온 사람이라면 이것을 인식할 능력이 안 되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비굴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중략) 유무상생의 표현되는 대립 면의 공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을 선택합니다. 물론 누구나 결국에는 선택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깊은 사유에서 나왔느냐 아니면 아무런 사유 없이 나왔느냐에 따라 그 성숙도나 설득력이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진영에 갇혀 별생각 없이 한쪽을 선택하여 고착시킨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지 의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양심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죠. 대립 면의 상호의존이라는 인식을 가지면, 진영 논리에 빠져서 그 진영의 논리를 상대방에게도 쉽게 강요하는 일이 적어집니다.


(중략) 진영에 갇힌 자들은 협치를 할 수 없습니다. 포용력을 갖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협치나 포용은 협치나 포용을 하는 주체에 틈이 나 있고 여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틈이나 여백이 없다면, 다른 대립 면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죠. 틈이 없는데 어떻게 대립 면이 뚫고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틈은 존재의 균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 면을 받아들일 가능성으로서의 여백 정도입니다. 진영에 갇혀 상대방에게 쉽게 프레임을 씌울 경우엔 어떤 여백도 존재하지 못합니다. 틈이 없어지죠.


(중략) 대립 면들의 상호의존 관계를 모른 채 덜컥 권력만 잡은 통치자는 대증요법이나 임기응변식의 땜질 정책을 남발하면서 국가를 파탄으로 끌고 가거나 권력을 잃게 됩니다. 통치자는 득도得道해야 합니다. 통치자에게 득도란 자연의 운행 원칙인 ‘유무상생’을 국가 운영에 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념적인 통치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이념이란 것이 어쩔 수 없이 한 편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인 통치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도 도덕이란 것이 결국은 한 편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념이나 도덕은 유무상생의 원칙에 배치됩니다. 이념이나 도덕에 깊게 물든 통치자는 국가를 이념이나 도덕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헛똑똑이가 되는 것이죠.




논제 5) 저자는 젊은이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표현한 한 문장이 있습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p. 179)


- 이 시대의 젊은이는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요? (p. 178-179)


☞ 젊은이들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시스템이나 환경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도 해요. 이것도 물론 동의합니다. 모든 의미 있는 일들은 시스템과 환경을 돌파하는 일이에요. 시 한 줄도 다 정해진 시스템과 환경이 지배하는 생각들을 돌파하면서 생긴 이단적인 흔적입니다.


저는 시스템과 환경의 역할이나 효율성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의 개선을 말할 때 교육 제도의 문제를 먼저 언급하곤 하는데, 부정적으로 보이는 제도를 탓하기보다 우선 그 제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진실한 도전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중략) 자녀들의 진정한 행복과 발전을 원한다면 자녀를 우리 중의 한 명으로 기르기보다 고유한 주체로 길러내는 것이 좋습니다.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습관적으로 ‘학’을 반복한다면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나 익명성 뒤에 감춰진 존재로 사는 것을 벗어나기 힘들어요. 자치自治와 자율自律 능력을 회복해야 일반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나 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와, 시스템과 환경을 탓하기부터 하는 태도는 전혀 다르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탓하는 태도를 그것들을 개선하려는 의지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진행자 주미령작가님께서 퀴즈로 맞추는 게임으로 하고 다시 내용을 진행해 주셔서 신선한 독서모임 시간이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와 자기 계발하면서 공부에 대한 생각,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힘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풀어갔습니다.

독서토론하기 전에 독서토론을 1차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주문한 식사가 나와서 우린 우선 먹고 나서 2차 독서토론을 하기로 하고 맛난 음식을 핸드폰에 담았습니다.




독깨비에 후기는 올라오고 독서모임을 하면 에너지를 받아서 난 기분이 더 좋아집니다. 채팅으로 좀 가라앉던 방도 활기가 넘칩니다.

나의 삶을 가치 있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을 다시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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