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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13. 2024

인간균질의 시대,
자녀를 '필리스텔'로 키우는건아닌지

'부모정신'이 '시대정신'

요즘 엄마들 표현대로 '마통(마이너스통장)'까지 짜내어 아이들 교육시키고 영혼까지 탈탈 털어가며 엄마들 모임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자기를 희생(?)하여 아이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지만 이러한 '열심'이 내 아이를 오히려 '속물'로 키우고 있는 것이라면 이를 어쩌나....?


아, 이를 어쩌나?에서 잠시 멈칫했다면 그 감을 믿어보길 바란다. 뭔가 밑빠진 독에 물붓는 느낌? 이렇게 열심히 돈, 시간, 정성, 지식 모두를 '너를 위해' 열심인데 이 제목이 눈에 보인 순간 '아차!' 싶은 느낌이 있다면 그 느낌이 이끄는 방향으로 잠시 이성을 움직여보면 어떨까? 


혹 '뭔 쓰레기같은 소리야?'하며 욕하고 치부해도 괜찮다. 그저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자녀를 속물로 키우지 말자'는 주장, '그러다가 속물로 큽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싶을 뿐이니. 주장이 터무니없는 글로 독자들에게, 특히 부모들에게 다가가지 않길 바랄 뿐, 1분만이라도 진심어린 눈으로 자녀를 들여다보는 독자가 존재한다면 나의 글이 역할을 한 것이니...


필리스텔.

독일어에만 존재하는 이 단어의 의미는 '속물'.

이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현실 아닌 현실에 언제까지고 열심히 집적거리는 사람'

'정신적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주1)

그런데 여기 전제가 붙는다. 

'지성적 능력이 정상수준'.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그래서 나름 완벽한 지성을 소유했다는 현대사회의 지식인, 지성인. 

하지만 이들에게 결여 내지 결핍된 것은

'정신적인 욕망'.


누누히 거론했지만 '인간본성'은 '자신의 가치실현, 가치추구'에 있으며 추구하는 능력은 정신의 능력이며 추구의 목적은 자신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치를 망각, 외면, 제거해버린 똑똑한 지성인'은 속물인 것이다. 사실, 쇼펜하우어가 그렇게 말했든말든 내가 아니라 여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시대에 이 의미를 똑바로 서서 나의 모든 시력과 지력을 동원하여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인간군상이 아닌 인간균질의 시대,

동일성의 거부가 배제된 시대.

지금 우리 부모의 정신에 각인된 보편적인 시대정신은

내 아이가 남과 다르면 불안한 정신이다.

남들 가는 길로 가야 그나마 먹고 산다는 가난한 정신이다.

남들과 다른 길은 힘들고 어렵고 불편하니 그저 평범하게 남들처럼 자라주기만을 바라는 적당한 정신이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로 들어서는 모험은 위험하며 위험은 살기 힘들다는 편협된 정신이다.


에머슨은 인간을 4부류로 나눴는데 

'허영심'이 강한 자는 

이렇게 행동했다면서 자기 생활을 장식하려 하고 '야심있는 속물'은 

자신이 가진 브로찌나 반지, 명함과 찬사를 간직하고 

'교양'있는 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흥미로웠거나 시적인 것'들, 그러니까 여행지나 자기가 아는 천재, 명성높은 사람, 어제 즐겼던 풍경 등을 언급하여 자신의 생활에 로맨틱한 색채를 더하려 한다고. 

그러나 

'정신이 높은' 사람은 

좋은 친구도 없고 무사정신도 없고 모험적인 사건도 없고 남의 찬탄을 바라지도 않고 단지 지금 이 순간 진실한 일상의 경험 속에 안주하여 현재의 순간과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이 사상으로 스며들어 광명의 바다를 흡수하는 삶을 산다고(주2).

 

물론 철학자들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아, 그러면 참 좋을텐데 가슴이 벌렁거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라고 자신을 가로막는 관념앞에 굴복하는 자신이 싫지만 어쩔 수 없는... 뒤죽박죽 마음...

상당히 공감한다. 

그러니, 

그러나,

그렇기때문에!

부모인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첫째, 평균수명이 120세를 훌쩍 넘길 아이들이 '일없이(또는 일만 있고 가치는 실종된)' 50년 이상(70~120세)의 긴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위에 에머슨이 이야기한 허영심, 야심, 교양 다 좋은데 '상대적인' 기준을 지닌 그것들이 무용해졌을 때 '정신이 높은' 자가 아닐 경우 내 아이의 노후는 어떠할까? 행복할까? 자기삶을 살고는 있을까? 


설마 나의 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될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둘째, AI를 너머 사람을 뛰어넘는 지능을 구현하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가 서막을 올린 지금, 내 아이는 기계에 종속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인류멸종'을 예고하며 무섭게 등장한 이 괴물 앞에서 자본가들은 첨단의 위력을 자랑하며 가속의 페달을 밟을텐데 내 아이는 과연 이들의 종속자가 될까, 이들을 잘다루고 이용하고 조종하는 지배자가 될까? 


설마 아무리 AI나 AGI를 모른다 해도 이들의 속도가 멎거나 느려질 것이라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셋째, 아무리 생각해도 AGI를 능가할 지성과 지력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본가들처럼 조만장자가 되기도 어렵다. 그럼. 과거의 산물같은 지금의 교육으로 내 아이가 잘 살 수 있을까? 잘 산다는 것은 '자아'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내면의 부(충만)가 없으면 연명은 하되 '잘' 살기는 어려울텐데 내면의 부, 정신의 부, 속물이 아닌 삶을 살도록 어찌 알려줘야 할까? 


설마 지금의 교육제도가 내 아이 인생을 '안정'과 '안전'으로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 


자, 과학과 생명연장은 나와 나의 자녀에게 재앙일까? 또 다른 행복을 가져올 신세계일까......? 물론 선택이다. 위 3개의 질문에 대해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정답은 모르지만 오답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오답만 제거하거나 이렇게 답을 찾아가는 자체가 해답에 근접해가는 것이 아닐까. 


첫째 질문, 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자아를 튼실하게 가꿀 수 있도록 최대한 부모와 세상의 인식이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내 아이가 자아(自我)에 대한 스스로의 고찰과 욕구가 없다면 AI든 이후 등장할 AI의 모든 버젼에서 그저 종속적인 '프로레타리아'계급으로 살아가면 된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이제 공장의 인력이 AI로 대체되면 공장지키는 개1마리와 그 개를 챙겨주는 인간 1명만 필요하다고.  

셋째, 지금 교육말고 뭐? 하면 정답은 없지만 지금처럼 대학보내기, 자신의 창조적사고를 막는 획일화된 학원, 취업위주의 교육에서는 한발 물러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지성, 지력, 능력 모든 면에서 우리 인간의 우위에 있다는 AI의 시대에도 종속되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왜? 

인간은 인간만이 지닌 '초월적 사고'가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전제된 '상상'이 미래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식과 시각, 관점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미래다. 

쇼펜하우어가, 에머슨이 저리 강조한 것도 바로 '자아'에 근거한 초월적 사고,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정신에 양식을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사고. 이러한 사고가 아니라면 그저 속물이라는 것이다.

바쁘게, 뭔가 엄청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듯 타인 속에 자신을 숨기며...그가 맥주홀 주인이든 혹은 장관이든 그저 세상살이는 어떤가, 무엇이 가능한가,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등등의 여러가지 경험의 통속적인 총체안에서 살고 있는 자는 속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상상을 통해서 개연적인 분위기보다는 더 높은 곳에 이를 수 있고, 이런 분위기에서 빠져나와 모든 경험의 전체를 초월(주3)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통상적인 평범한 지성인들이 왜 철학자들에게 '속물'이라 폄하될까? 이들에겐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상상'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이어야 '가능성'과 '희망'이 존재하며 '희망'에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고! 


그런데 많이 아는 자들은 상상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예측에서 벗어난 '속물아닌' 인간들을 오히려 

불완전하다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로 설명이 안되지 않냐고, 

그건 너무 개연성이 없지 않냐고, 

합리가 아니지 않냐고, 

무시한다.


그런데... 

합리를 능가하는 비합리, 비합리를 초월하는 공리, 공리를 아우르는 신비의 기적이 인간사회에눈 존재한다. '가능성'이 존재하는 곳은 '미래'이며 

'미래'는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말로 설명이 안되며'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다. 그러니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이 불완전하다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로 설명이 안되지 않냐고, 개연성이 너무 멀다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아... 내가 진짜 삶의 승자구나!'라고 느끼면 된다.


'속물아닌'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내면으로 정신으로 자아자체로 더 깊이 고찰한다면 분명 위의 3가지 질문에 대한 현답을 찾은 것이라 여긴다. 인간균질의 시대에 독창성을, 모두가 동일성을 거부하지 못하는 시대에 다른 방향으로 한걸음 내디딜 의지를 가진, 그런 진정한 '인간'으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어찌 변해갈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이런 시대에 내 아이가 자신의 생명 다할 때까지 스스로의 삶을 아름답게 가꿔갈 것이다.  


그러니

사람답게 키우는 것은 기본이고 '다른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한다.

동일성을 거부하는 의지로서 '똑같은 질을 가진 다른 사람'이 아닌, '질이 다른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부모로서 자신의 인식을 의심하여야 한다.

부모자신의 인식이 제 아무리 강력한 자석으로 자녀에게 닿으려 하더라도 눈 질끈 감고 멈춰서야 한다.


말도 안되는 말이 보편이 될 시대이며 

꿈도 꿀 수 없었던 상상이 현실로 다가온 시대이고 

개연성없다고 무시받던 논리가 

어마무시한 개연성의 탄력으로 

무한한 가능성에서 전혀 알 수 없는 개연을 만들어

남들이 종속인간이 되어 살아갈 때 

질적으로 살아있는 정신을 지닌 내 아이에게 '삶의 가치'와 '믿음에 대한 보상'을 '필연'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줄 지 그 누가 알겠는가!


주1> 쇼펜하우어인생론, 쇼펜하우어, 나래북

주2> 에머슨수상록, 랄프왈도에머슨, 서문당

주3> 키에르케고르선집, 키에르케고르, 집문당


* 부모라면 누구나 함께 공부하고 자신의 굳은 인식을 깨고 새로운 지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https://guhnyulwon.liveklass.com/classes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삶과 사유, 사람의 찐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https://cafe.naver.com/joowo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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