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Jul 15. 2024

더운 음식에서
더운 김이 빠져나가듯

지담단상 35

내 덜떨어진 귀는 아무 소리나 받아내고

내 촐싹맞은 혀는 소리에 감각적으로 반응하고

내 흐리멍텅한 눈은 모든 것을 뿌옇게 보고 있으니

내가 나를 고쳐써야 할 터인데...


내게 버릇된 것들이 너무 고집을 피워대니

내가 나를 비워버리는 쪽이 한결 수월할 듯하여

나는 거죽만 남기고 거꾸로 살기로 했다.


내 소리는 삼키고 세상이 내게 하는 소리들로,

내 것을 버리고 세상이 내게 담아내야 할 것들로 나를 채워보는거다.


더운 음식에서 더운 김이 빠져나가 듯

나로 푹 절여진 지난 시간들은 모두 내보내자.


내 정신의 즙을 몽땅 짜버리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정신으로 감당하기 벅찬 세상에 대한 책임 때문이고

내 마음의 요동을 몽땅 빼버리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마음으로 인간군상들을 담기에 버겁고 역겹기 때문이고

내 지성의 파편들을 몽땅 뽑아내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지성으로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며

내 신념의 줄기들을 몽땅 세상에 바치고 싶은 것은 지금의 내 신념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꼴불견들을 어찌할 바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에 위탁된 존재다. 

그러니 오늘부로 두손 두발 들고 

나를 위탁한 그 존재로부터 맑은 영혼을 다시 투석받아야겠다.


이쯤 정리가 되니 더 이상

내 주장, 내 의견 관철시킬 것이 없다.

내 이야기 좀 들어주소 붙잡고 할 말도 없다.

남을 설득할, 거래할, 협상할 그 무엇도 없다.

넘어야 할 산도 없고 발에 채일까 두려운 걸림돌도 없다.

잊고 싶은 기억도, 떠올리고 싶은 그리움도, 만들고 싶은 추억도 

불과 어느 시점까지 존재했던 그 모든 것을 내보낸 지금, 

다시 찾고 싶지도, 미련두고 싶지도 않은 것에 대해 나는 그 어떤 설명도 할 수가 없다.

설명되어지지 않는 것을 애써 설명할 정도로 능숙하지 않을 뿐더러

설명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성의 기능조차 내보낸지라 

거죽만을 남긴 나는 이제 제대로 투석받을 준비를 끝냈다는 말외엔 할말이 없다.

     

내 소리를 거둬내니 

세상의 소리도 제 맘대로 날 거쳐 통과할 뿐 내 안에 남지 않고

더 이상 소통이 소리의 진통으로 느껴지지 않으니

소통은 소리가 가야할 곳으로 가기 위해 그저 통로로만 날 거쳐간다.     


거죽속의 비워진 곳을

무엇으로 채워넣을지에 대해서도 애쓸 필요는 없겠다.

이대로 비워둘 리 없는 날 위탁한 주체가 알아서 채울테니 말이다.




[건율원 ]

삶의 가치실현을 위한 어른의 학교, 앎을 삶으로 연결짓는 학교, 나로써, 나답게, 내가 되는 학교

(*'가입'하신 분께는 2만원쿠폰 & 무료 강의에 우선적으로 초대해 드립니다.)

https://guhnyulwon.liveklass.com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https://cafe.naver.com/joowonw


[지담 연재]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수/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부모정신'이 곧 '시대정신']

금 5:00a.m. [나는 나부터 키웁니다!]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전 04화 비약을 보행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