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에 대하여
안으로 들어간 것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요,
그 가슴으로부터 나간 것이 그러하더라(주1).
나는 천주교신자라 매주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지만 내게서 신앙심이랄까 종교의식이랄까... 뭐 그런 것은 상당히 미약하다.
미약하게나마 조금이라도 있어 다행이긴 한데 이실직고하자면 사실 '종교'를 잘 모른다고, 알려하지도 않는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삶의 진리가 담긴 성경말씀에는 항상 귀를 기울인다.
제대로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성경,
2번을 읽었으나 여전히 이해가 부족해 3번째 읽고 있는 인도경전인 바가바드기타
이슬람교의 종파가운데 하나인 수피즘은 루미로부터
유교사상을 위해 접한 도덕경, 중용 등의 동양철학
종교와 버금가는 사상가들의 저서들
이들을 통해 절대자, 흔히 신이라 불리는 존재를 나는 믿는다.
분명 나의 삶에 그들은 여러차례, 아니 매시간 등장하는 것을 느낀다.
내 의지는 이러려 했으나 이상하게 저렇게 되어 있는 경우,
내 머리 속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우연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모르는 어떤 거대한 존재에 의해 이뤄지는 것 같다.
또한, 에피쿠로스로부터 몽테뉴, 세네카, 데카르트, 에머슨, 소로우 등등 내가 경외하는 철학가들 가운데 신을 거론하지 않은 이들이 없기에 나는 거대한 어떤 절대적인 힘에 대해 믿고 있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나는
절대자를 만나기 위해 매주 성당을 찾고
절대자에게 의지하며
절대자에게 나를 의탁하고
절대자의 대법과 원리에 따라 현실의 나를 사는 것이
참으로 자연에 부합한 삶인 듯하다.
수십개의 다리로 기어다니는 벌레나 두 발로 걸어다니는 나나 자기 생에 자신의 본능대로 사는 삶이야말로 절대자의 뜻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삶... 을 나는 추구한다. 근원을 내 삶의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그 위에 현실적인 삶이 대입된다면 나는 쓰러지더라도 다 이유가 있어 쓰러긴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며 내 정신이 갑자기 어딘가로 뛰쳐나갔더라도 결코 내 삶을, 나아가 내 삶으로 영향을 받을 어떤 삶에도 해가 되는 인생을 만들지는 않을 것 같아서다.
바닥에 이러한 정신을 무장시키려는 긴 시간...
결국, 나는 나로서, 나답게, 나여야, 나니까 나의 삶을 위해 나의 길을 만들고 나의 뜻이 길을 내주리란 걸 믿게 되었고, 그래서 진정한 이기야말로 궁극의 이타라는 명제를 내 안으로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나의 외부)이 자연(나)으로 투입시킨 것은 지극히 자연(조화)스러운 자연(온우주)의 뜻이나
인간으로 혼탁해진 내 안에 머물다 다시 산출되면서 자연에서 멀어지는 현실을 만들게 된 것이라 여긴다.
개인적으로는 본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조직, 사회로 이어지는 집단에서는 균열이, 비리가, 파괴가 성행되며
심지어 기계가 세상을 지배하는 형국에까지 이르렀다.
안으로 들어간 것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슴으로부터 나간 것이 그러하리라..... 는 글귀에서
나는 멈추고
이 새벽 이 글을 쓴다.
내 안의 혼탁을 맑게 씻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리라.
제 아무리 좋은 음식이 들어가도 내 안에서 변과 농을 만들어내지만
변과 농이 밖으로 나왔을 때 내 안으로 다시 넣지 않듯
나의 정신안에도 진리와 오류가 함께 공존할터이니 오류가 나간다면 다시 투입시키지 않아야겠다.
그러기 위해 물질적인 신체는 정화를 위해 변과 농을 만들지라도
나머지 육체인 정신과 영혼은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맑고 단단하고 정갈하고 질서있게.....
그렇게 나는 더 순수해져야할 것이다.
몸은 우리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가 몸을 통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벌과 같고 몸은 벌집과 같습니다.
벌이 벌집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몸을 만드는 것입니다(주2).
주1> 마가복음 7:15
주2> 루미시집, 루미,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