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마구마구 자유를 허락하는
그런 날이 하루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그런 날.
어떤 구속도 없이 온전히 해방된 그런 날.
의무라곤 하나도 없고 권리로만 채워진 그런 날.
눈치보지 않고 누려도 되는 그런 날.
참 우매한 바램이다.
누가 구속했고 누가 침범했고 누가 제재를 가하는데?
나 스스로가 아닌가?
바보같이 구는 여전한 버릇이 또 도졌다.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하면 안된다고 날 구속시킨 것은 나다.
의무를 잔뜩 쥐어주고 대가를 치르라고 명한 것도 나다.
진정한 해방을 맛보려면 아직 조금 더 가야 한다고 달랜 것도 나다.
여기까지가 아니라 저기까지 참아야 한다고
여기서부터가 아니라 저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자격을 주고 선을 그은 것도 나다.
한번 더 참아야 하고
한번 더 이해해야 하고
한번 더 넘겨야 하고
한번 더 줘야 하고
한번 더 물러나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도 나다.
이런 걸로 화내면 안된다고
이런 걸로 멈추면 안된다고
이런 걸로 나가면 안된다고
이런 걸로 아프면 안된다고
그렇게 끝도 없는 바닥에 기준선을 그어놓은 것도 나다.
이런 내가
지금 내게
마구마구 자유를 허락하는 그런 날이 하루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발전인 것인지 퇴보인 것인지
넘치는 것인지 모자란 것인지
순진한 것인지 바보인 것인지
거의 온 것인지 아직 한참 먼 것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느닷없이 묻고 있다.
순진이 넘쳐 호구가 되는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사실 어제 질문을 받았다.
'왜 하던 일을 다 멈춘 겁니까?'라고.
그럴 듯한 이유야 천가지 만가지지만
깊이 있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유'롭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자유'를 온당히 누려도 되는 가뿐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 구속부터 강행한 것이다.
그렇게 구속하여 어떤 지점까지 나를 데려다 놓아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지독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난 지금 느닷없는 질문에 시름거린다.
때가 된 것 같지 않은데 희망고문같이 느껴지는 지금을 떠나고 싶어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배운대로, 습관대로 난 나의 지난 시간들을 연역해봤다.
그러다가
2022년 스스로를 구속하는 내가 너무 가여웠던 어느 날,
내가 쓴 글 속에서 이유를 알아냈다.(브런치에 매일 적은 모든 글들은 나의 이성과 사고의 이력이자 역사니까)
나는 나를 휘감고 있는 이 깊은 공허함의 댓가로 대기를 마셨다 뱉었다 할 수 있는 천재로 '선정된 개인'이라 믿으련다. 이 길은 '너무나 무력해 보이지만 결코 내가 가여운 것이 아니라는', '나는 더 조용하면서 끈질기게 호흡하는 것을 배우며 잠시 뒤로 물러서 있을 뿐'이라는 것을 무뚝뚝하고 느리지만 결코 동요하지 않으면서 나는 오늘도 지금 내 손 꼭 잡은 시간옆, 바로 이 자리에 제대로 서 있으련다(주1).
당시 그렇게 나는 에머슨에게서 배운대로
'선정된 한 개인은 (중략) 성장의 고통이 있을 때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일하는 곳에서 확대하고 맥박이 있을 때마다 인간의 각 계급, 각 집단을 넘어서 나아가는 것이다.
신적인 거룩한 충동이 있을 때마다 마음은 이 가시적 유한의 엷은 껍질을 찢고서 영원의 세계로 나가 그 곳의 대기를 마셨다 뱉었다 하는 것(주2)'이라는 글을 가슴에 품고
나는 '선정된 개인'이라서,
나의 가시적 유한의 껍질 밖 공기 속에서 호흡해야 하기에 이리도 더디고 힘겨운 진통을 겪고 있다고,
그렇게 난 '심령이 인간의 지력으로 숨쉬게 되는 이(주2)' 라서 힘든 것이라고,
그러니 더 조용하고 더 길고 더 참을성 있고 더 끈질긴 호흡을 익히기 위해 지금은 잠시 뒤로 물러서서 나를 키워야 한다고,
분명 이 호흡의 진통 속에서 마르지 않는 샘의 물줄기가 터질 것이라고,
그러니 딴 생각말고 적당한 시기에 그 영역에서 제대로 떨어져 나오기나 하라고,
지금은 도약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얻기 위해 물러나 있는 것이니 참으라고 토로하고 있었다.
요즘 난...
잠시 떠나야 할 때인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렇게 착착착착 내 판단이나 계획, 의지와는 무관하게 일이 진행되는 신기함과
강렬하게 느껴지는 느낌을 억지로 막으며
'잠시 물러서 있는' 이 시간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나에게
며칠 전 아들이 내게 해준 일침,
'엄마, 착한거랑 호구랑은 달라'.
순간, 나는 내가 호구가 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지금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 앞에서 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너무나 착하게도 지켜야 할 것들을 여전히 지키느라 새로운 세상의 손짓에 눈감고 있는 것 같고
이 다리를 건너야 지금껏 '물러나 호흡을 배웠던' 그 시간이 유용하게 쓰일 것인데 미련떨며 호구처럼 '물러나 있는 익숙함'을 붙잡으며 착한 척 구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딴 생각말고 제.대.로.떨.어.져.나.와.야.할.적.당.한.시.기. 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단단한 구속의 시간들을 보낸 이유를 증명해낼 새로운 세상으로 (어쩌면 더 커다란 구속이 있을지도 모를) 나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최근 지속적으로 내가 나에게 거듭 해오던 질문
'내게 마구마구 자유를 허락하는 그런 날이 하루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의
정당한 이유를 찾은 새벽이다.
주1> 2022. 10. 20. 지담브런치글
주2> 에머슨수상록, 랄프왈도에머슨, 서문당
[지담연재]
월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화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수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