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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ug 27. 2024

사막에게 왜 꽃을 피우지 못하냐고 묻지 않듯이

새벽 1시에 눈을 뜨고는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다.


머리가 멍해서 책을 읽을수도, 글을 쓸 수도 없어 잠을 청해 누웠지만 이 생각 저 생각이 내게서 범람하여 생각쳐내기에 에너지를 쏟아내고 말았다. 


잠이 생각에게 전투력을 잃어가는 것을 느끼고서 나는 잠을 포기하고 생각을 바꾸는 쪽으로 에너지를 몰아갔다. 


'덕의 주인'인 잠은 진짜 부름받기를 원치 않나보다. 잠을 잔다는 것은 잠자기 위해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지내야만 하는 결코 하찮은 기술이 아니라는 니체(주1)의 말을 이 새벽 체감하며 잠기술부족을 인정하고 지성쪽으로 에너지를 돌려 정신의 내용물인 생각에서 빠져나와 그 생각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잠은 생각에게 항복했지만 정신까지 생각에게 항복해서는 안되니까.


내용물들을 요리조리 살펴보니 


지금 내가 풀어야 할 숙제,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 

그리고 머리로 이해되고 마음으로 용인되는데도 용을 써도 안되는 사막같은 내 마음도 보였다. 


풀어야 할 숙제는, 

'원하는 결과'를 머리 속에 상상하고 믿음의 기도를 바쳤다. 믿는대로 풀릴 것이다.


변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은,

기대와 불안은 쌍둥이처럼 쌍으로 오는 것이니 기대하는 바를 더 크게 키우기 위해 더 크게크게 그림을 그렸다. 될까? 싶은 불안이 쫒아오거나 말거나 '상상만으로 기뻐' 새벽에 혼자 피식피식 웃기도 했으니 기대가 앞장서고 불안이 뒤따르는 순위는 매겨진 듯하다. 


순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나? 거만한가? 자만스럽나?'싶기도 했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난 소로우가 월든호수에서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2년보다 더 긴 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세상에 알려지는 것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명함에 근사한 줄 하나 더 채울 수 있는 많은 제안도 거부해왔다. 

그러니, 내가 거만하거나 자만하거나 욕심을 부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여긴다.


문제는, 내 안에 용을 써도 안되는 사막이 보였다는 것이다.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전화한통조차 용인되지 않는 이 뻑뻑함, 푸석함, 삭막함, 아득함, 황폐함.

결코 나몰라라해질 수 없는 지경에도 행동은 꿈쩍않고 마음속 사막만 더 황폐해지는 그 막막한 사막이 오늘 내 잠기술을 무용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사막에게 왜 꽃을 피우지 못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나는 내게 왜 전화 한통 하지 못하냐고 묻지 않기로 했다.



사막은 안다. 

자신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가시를 견뎌내야만 꽃이 핀다는 사실도.

그리고 또 안다.

주변에선 

꽃이 피기까지 기다리지 않은 채 가시만 나무랄 것이 뻔하다는 사실도.


그래서 사막은 침묵한다. 

꽃이 피기까지 오랜 시간 어쩔 수 없이 뿜어내야 할 가시들과 스스로 싸운다.


그리고 바란다.

자신안에 듬성듬성 솟는 오아시스가 있으니

오아시스에 생명을 대줄 원천을 만나게 해달라고

그러면 조금 더 빨리 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냐고.


나도 침묵한다.

원천을 만나기 위해 가는 중이니까

홀로 가시를 견디며 뿜는 중이니까

사막에게 왜 꽃을 피우지 못하냐는 어리석은 말을 듣지 않으려는 중이니까.


여기까지 생각을 이끄니

생각에게 지지 않은 내 정신이 감복했는지

나의 동반자 소로우의 오래된 글귀를 떠올려준다.


한밤중에 깨어서도 자신이 한 일을 만족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그렇게 모든 성의를 다하여 못을 깊이 고정시키고 박은 못의 끝을 정확하게 구부려두어라. 


그러면 뮤즈에게 간청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신은 당신의 바로 그 때를 도울 것이다. 


못 하나를 박을 때마다 우주라는 기계에 또 하나의 대갈못을 박으며 그렇게 자신을 움직여가는 것이다(주2). 


뮤즈에게 부끄럽지 않은 간청일 수 있도록,

기다렸다는듯이 신이 날 선뜻 돕기 위해 손을 쓸 수 있도록

내 정신의 길이 내뿜는 하나하나의 말, 행동, 글...

이 모두가

우주에 하나씩 단단히 박아두는 대갈못이길.....


주1>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주2> 헨리데이빗소로우,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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