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가속도가 붙어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회오리바람이나 쓰나미에 휩쓸린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불과 1달도 안되었는데 나는 휩쓸려가듯 엄청난 속도로 저기서 여기로 와 이렇게 글을 쓴다.
오늘 새벽, 오랜만에 글에 튕겨 잠이 깼다.
분명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고 있었는데 자주 그렇듯이 양치질하고 오니 글은 달아나 버렸고 안타까운 나는 이렇게 글이 없어졌다는 토로나 하고 있다.
분명 내 인생의 두번째 혁명기를 나는 거치고 있는 것이 맞다.
하루종일 글만 쓰는 삶으로 겨우겨우 만들어
분명 내 시간은 글만 쓸 수 있는 시간으로 군집되었었는데
여기서는 하루종일 자연과 노니느라 글조차 쓸 시간이 없어지고 있다.
네잎클로버처럼,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이름모를 풀잎들처럼
야릇하지만 명료하게
'내가 쓰는 시간'도 자기들끼리 '비슷한 행위'를 모아모아가는 것 같다.
9/20일 양평에 터를 잡은 때부터 잠자던 일중독DNA가 자기 힘을 맘껏 드러내고 있다.
해뜨기 전 일어나 책읽고 글쓴 후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자발적 노동'에 나를 강제한다.
마치 오래전 레고상자를 처음 열고 하루종일 레고만 잡고 있던 아들처럼.
하루종일 자연놀이에 흠뻑 빠져 10여일이 넘게 살고 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마다 묻는다.
아니, 언제 이렇게 나무를 다 베었대요?
아니, 언제 이렇게 풀을 다 뽑았대요?
아니, 언제 이렇게 여기를 다 치웠대요?
넓은 마당은 내 손이 닿는 족족 계속 계속 정리되어간다.
그렇게 느리게, 단순하게 누리며 지낸다.
여유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닌가보다.
그냥 해치우고 해나가고 하다 보면 군집현상에 의해 시간이 비슷한 행위를 모으고 그렇게 압축이 일어나고 그 곁으로 여유라는 녀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나보다.....
시간의 군집현상은
일중독의 나에게 '여유'를 창출시켰다.
그런데... 여유의 가치를 내가 폄하시킨 느낌이다.
자발적 노동에 내 몸은 한계를 넘어선 듯하다.
근육 군데군데가 다 터진 것 같고
에너지는 매일 총량을 넘기고
난생 처음 시도하는 노동은 산도 옮길 기세로 날 몰아간다.
열로, 통(痛)으로 몸이 과부하신호를 자주 보낸다.
자발적 노동은 극한의 재미로 내게 와
도시에서 방전된 자연의 결핍을 한번에 충전시키겠다는 듯이
오로지 별, 나무, 하늘, 풀, 바람으로 내 정신을 가득 채웠다.
글을 쓸 시간조차 없이 오로지 그렇게 자연 속에서만 지낸다.
그리고 어제부터 지금 이 새벽까지
내 시간들이 자연으로 몽땅 모아진 것을 깨닫고는,
그렇게 여유라는 것이 또 사라지고 날 너무 바쁘게 움직이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차...... 다시 정렬시켜야 한다고 내게 명한다.
내 시간이 내 일상을, 내 행위를 이리로 모아갔구나.
밀도가 높아지고 압력이 거세지기 전에 조금 흩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오전까지는 글과 책으로, 오후부터는 자발적 노동으로.
시간과 정신은 휴전을 멈추고 내전을 펼쳐야겠다.
그렇게 강제한 시간으로 나를 책상에 앉혀야겠다.
일중독DNA가 더 몸집을 불리기 전에 정돈시켜내야겠다.
그러면서도 알겠다.
태어나 지금껏 길들여진 도시속 '자연의 결핍'이 배양한 그리움과 절실함과 소원함은
광속으로 날 자연에 풍덩 빠뜨렸고
겁없는 식욕으로 내 정신을 뒤바꿔버렸고
심지어 잘 짜여졌던 내 시간 속 행위성분까지도 온통 뒤섞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잘했다.
그래야 한쪽으로 쏠리지 않으니 키를 다시 바로 잡자.
그렇게
그 무엇도 날 방해하지 않는 이 곳에서
숲속의 전령이 내 심령을 보듬을 수 있도록,
기세와 기운과 기적이 놓인 이 길위 기회들이 고루 내게 올 수 있도록,
내 삶과 내 창조가 서로 어우러져 길 위에 자연스레 놓일 수 있도록,
모이면 흩어내고 흩어지면 모아보자.
나는....
이 곳에 온 이유를 증명해야 하니까.
이유가 가는 길에 내가 쓰여야 하니까.
결과가 기다리는 곳에 일이 당도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