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Oct 04. 2024

티끌같은 찰나가 사상의 태산을 만들 수 있을까

싫어서 좋은 곳으로 옮겼고

과해서 적은 곳으로 옮겼고

약해서 강한 곳으로 옮겼고

막혀서 뚫린 곳으로 옮겼고

허해서 채울 곳으로 옮겼다.


그런데 신기하다.

다 버려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버리고 싶었던 그 것'이 새로운 옷을 입고 내 기억의 언저리에서 춤을 춘다. 

어떤 기억은 의복을 제대로 갖춰입고 예를 차리며 '추억'으로의 진입을 허락받으려 한다.

 

버려지면 안되는 것들이었나.... 

애써 밀어놓았던, 감추려했던, 떠오를 때마다 애써 눌렀던 기억들이 하나씩 들춰지는데...


의외로 괜찮다. 

내가 강해진건지, 무뎌진건지, 

기억이 흐려진건지, 약해진건지

여하튼 괜찮다.


하나의 조각으로 전체를 가늠할 수 있다.

들춰지는 나의 기억속 파편들이 나의 전체에서, 남은 미래의 전체에서 어떤 형태로, 어떤 자리에, 어떤 모양새로 배치될 것인가.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스스로 기억을 소환해보려 한다. 

과거처럼 현재에 암막커튼치고 감정을 버무릴 생각은 1도 없다.     


이 작업은 나같은 인간에게는 생소하다. 

기억력도 형편없거니와 그 기억이라는 것도 도통 믿을 수 없다는 나의 관념때문이다. 

기억은 감정의 강도로 저장된 것이며 

감정으로 정리된 사실은 그리 믿을만한 녀석이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억해내기를 시도한다. 

이 정성을 나의 고귀한 사고와 연합시킬 필요가,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든 안들든 어떤 지나간 것들에서 의미를 찾고 

그 것을 현재와 미래로 연결, 연합시키는 것은

'글'을 위해서도 필수, 필연이지 않을까 싶어서다.    

  


2018년경부터 매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의 카페(지담북살롱)에 읽은 책의 기록을 남겨왔다. 여전히 지금도 하고 있는, 띄엄띄엄 작성하고 있는 나의 기록도 휘발되어버릴 지 모르는 현재의 나, 나의 고귀한 사고와 그 사고의 현상을 저장하기 위해서다. 


아주 작은 알갱이지만 

매일 새벽의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조차도 쌓이고 쌓이면 곳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티끌모아 결코 태산을 만들수 없다고 무시하면 티끌이 화낼 것 같다.

우공이산(주)같은 이도 있으니 말이다. 

티끌만큼 작고 기억조차 정확하지 않은 나의 과거의 알갱이가 

지금의 일상과, 미래의 꿈을 위해 하나씩 모여진다면 나의 개성담은 사상의 태산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제 아무리 똑똑한 이들이 많다 해도 나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제일 잘 기억해야 하고 내가 가야할 길도 제일 잘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엔 무엇이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지 내가 나를 제일 잘 알고 싶어졌다.      


남들이 나에게 뭐라 하든, 

나를 어떻게 호칭하든, 

나를 그들의 사고 속에 어떤 식으로 포장, 저장했든 개의치 않은지는 오래 됐다. 


나를 궁금해하고 나를 잘 빚어서 나의 삶이 가치있도록 이끄는 유일한 1인은 바로 나여야 한다. 

나만이 나의 주체이며 

나만이 나의 세계이니 

나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 나는 많이 냉랭했었다. 성당에 다니긴 했으나 그저 전례부로 기타치고 노래하고 어울리는 것이 좋아 놀이삼아 다녔지, 성경엔 관심도 없었다. 창조주의 메세지가 뭐든 나는 놀기 바빴을 뿐 아무런 영감도 불필요했다.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나는 그 시간들을 다시 소환할 수 없겠지만 어느 순간(이 또한 과거이지.) 나에게 보내는 영적인 신호들, 창조주이신 누군가가 나에게 명하여 갈게 한 그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시간의 행진을 멈춰 나의 보폭에 맞추진 못하지만

멈추지 않는 행진에 내가 조금씩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마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글에 매달린다. 

아니, 하루에, 순간에, 찰나에 매달린다. 

쥐어짜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그저 나오는대로 쓸 뿐이다.


내 안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

어느 순간 강렬하게 치고 오르는 울림

어디선가 나에게 침투하는 영감

내 눈에 포착된 글귀

저 높은 다리 위에서 나를 뚝 떨어뜨리는 듯 아찔한 느낌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싶고 그러려 한다. 


마치 나의 내면에서 단일한 하나의 소리를 찾는 게임이라도 펼친 듯

모든 것이 납득되고 평정되어 명료해지는 그 지점이 도달하기 위한 경주라도 펼친 듯 

그렇게 나는 나의 일상에 날카로운 시선을 들이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머무르지 않고 증발되어 버리는 찰나들에 서운하지만 

그것들조차 너무 소중해졌다. 


이런 내가 신기할만큼 지금의 나는 나의 육신보다 나의 울림을 더 소중히 여긴다

나날의 흐름이 귀하게 다가온다. 

마치, 흔적없이 사라진 자기 그림자를 찾아나선 피터팬처럼 

나는 내 정신과 영혼 곳곳에서 지워졌거나 가려진 것들에 관심이 많아졌다.     


신이 나에게 허락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나의 생은 유한하다. 

나는 지난 생의 들춰진 기억들과 함께

남은 생에 더 정성을 들여 볼 작정이다. 


나의 생(살아있음)은 나의 사고와 나의 시간이 손잡고 만든 결과다.

생의 길에 놓인 사고와 시간이들의 연합과 협력과 의지는

나의 사유의 역사가 되고

역사의 흐름이 사상의 제복을 갖춰 입으면

(존재함)이라는 완전체로 결집된다.


지금껏 길고 긴 시간 속에서 나는 왜 어떤 깊이에 빠져보려 하지 않았던가? 

후회라는 단어를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 지점에서는 지독하게 못난 나를 들여다봐야만 한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빠져 보겠는가? 

이미 빠져버렸다면?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껏 경험으로 얻은 감각은 하루는 길지만 10년은 짧다. 

10년을 5번 보낸 나에게 10년간 하나라도 창조해냈냐고 물으니 나는 자라는 데 바빴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내가 나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었음에도 그저 자라고만 있었다. 

영양이 부족한지 모른채 그저 주어진 삶이니 위로만 계속 자라 결국 제거되고야마는 풀처럼 그렇게 자라고만 있었다. 


이제는 나의 정체를 드러내야 할 때다.  



가을이다.

가을이 신에게 죄를 범했는지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된 채 내 곁으로 왔다.

이 가을이 내 곁에 머무를 때 나는 내 뿌리 저 끝까지 가을향을 담아내어야 한다.

그래야 긴 겨울을 버틸 정신과 심정의 양분을 얻을 수 있으리라.

그래야 내 정체도 올곳게 이 곳에서 다시 세워지리라.

그렇게 겨울이 지나 가을만큼 짧은 봄이 오면 나는 온힘을 다해 물을 품어야 한다.

긴 여름, 뜨거운 태양이 나를 말리기 전에 물을 품어야 한다. 

그래야, 물줄기를 찾아 물길을 만들겠지.


그렇게 한바퀴 365를 지나면 

지금 이 순간 내 손끝에서 나오는 다짐들과 약속한 길이 길을 내겠지.

지금부터 25년 10월까지... 

그렇게 둥근 고리를 만들어야지. 

나의 기억의 파편들이 이를 도울 것이다.  

    

나의 내면과 나의 일상이, 

나의 이성과 나의 감성이, 

나의 과거와 나의 미래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전체에서 동화되어 함께 한 방향으로 걷게 된다면 이는 나의 승리다. 


파편으로 박혀있던 조각들이 제자리로 정렬된 것이다.

감각으로 인지된 지성이 이성을 분해하여 눈을 밝힌 것이다.

감정으로 기울어 절뚝거리던 내가 똑바로 걷게 된 것이다.

뿌옇던 미래로의 시선에 통일된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길을 걷는 어느 순간, 나는 깨달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나 자신과 휴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내가 나란 것을,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나를 만들고 나를 데려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내 삶을 손아귀에 쥐고 걷는다는 것을.

신은 이런 나를 어여삐 여기신다는 것을. 


그리하여, 

톨스토이가 알려준대로 나의 영혼이 이끄는 길(주2)을 내가 따르고 있다는 것을,      


기억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써놓은 글이 떠오른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날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주1> 우공이산愚公移山 ] : 우공이라는 90세 노인이 삽으로 산을 옮겼다는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라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려 주는 고사

주2>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2007, 위즈덤하우스


[건율원 ]

https://guhnyulwon.liveklass.com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https://cafe.naver.com/joowonw


[지담연재]

월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이전 15화 10월이 쳐들어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