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못하는 것중 최고는 '느리게'이다.
난 뭐든 빠르다.
밥, 청소, 빨래도.
정리정돈도
배우는 것도
해치우는 것도
뭣보다 판단도 결단도 행동으로의 실천도 아주 빠르다.
지금 이것을 하고 있으면 다음엔 이거이거이거 이렇게 해야 하지? 자동으로 내 머리는 내 행동에 명령하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여기를 없애려면 저기저기저기서부터 이렇게 와야겠지? 저기를 만들려면 여기서부터 이렇게저렇게 하면 되지? 그래서 남들과 조화롭게 일하지 못한다. 혼자 하는 게 편하고 혼자 해치우는 게 더 빠르다. 성질이 이상한 것도 맞고 상당한 효율이 몸에 체화되어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요즘엔 조금 느리게... 를 연습중이다.
우선, 침묵이다.
내 눈에 거슬리더라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렇게 하더라도 그냥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나서지도 않고 기다려본다. 내겐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냥 그렇게 내버려둔다. 이전의 나는 미리 해버리거나 '내가 할께'하고 나서거나였는데 그냥 침묵한다. 침묵은 단순한 '말없음'이 아니다. 지금의 현상이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기에 내면에 의미를 만드는 표현이다. 견고하게 나를 만들기 위해 의미가 쌓이는 중이라는 신호다.
둘째, 멈춘다.
일단 하던 것은 끝을 내는 성격이다. 자투리도 허용하지 않고 몸이 어찌 되더라도, 심지어 누구 말마따나 옆에서 폭탄이 터지더라도 하던 것은 미루지 않고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나는 이런 나의 성격을 존중.까지 한다. 어찌 이리 해낼까. 참 장하다. 집중하면 못해낼 게 없네 하면서 이런 나로 나를 만든 것에 가끔 감탄도 하며 자뻑에도 빠진다.
그런데 매사가 다 그러니 난 나를 못살게 구는 것 같기도 하여 이제 어떤 부분에선 '멈춰라!' 내게 명령한다. 그 자리에서 '얼음!'해버린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본다. 일을 하다가 멈추고는 정리하느라 또 그 일에 매달리는 터라 그냥 그대로 '얼음'하며 그 자리를 떠난다.
내가 나에게 'stop'을 명령하는 것은 미룸과 나태로의 나아감이 아니라
나의 욕망이 욕심이 되어 나를 해하려는 경계를 알아챈 정신이 몸을 보호하려는 신호인 것이다.
셋째, 그것을 할 땐 그것만 한다.
이것을 하면서 그것을 해야지. 하지 않고 이것을 하면 이것으로 온몸과 온시간을 채우는 것. 마치 위빠사의 수행자들처럼 밥먹을 때는 밥만 먹고, 밥숟가락을 뜰 때는 밥숟가락만 뜨는. 그런 느림을 내게 훈련중이다. 나의 경우, 밥먹을 때는 머리가 벌써 먹고 난 다음에 해야 할 일로 가 있다. 먹을 땐 먹는 것으로 날 채워야 하는데 말이다. 마당에 잡초를 뽑을 때도 여기서 뽑으면서 저기 잡초를 언제 다 뽑나 싶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여기 잡초를 뽑으면서 잡초랑 대화하고 그 속에서 기어나오는 수십, 십수개 다리달린 녀석들과 노는 것.
이것을 할 때 이것만 하는 것은 단순한 집중이나 몰입을 의미한다기보다
집중이나 몰입에 빠져 다른 것도 보지 못하는 우메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나는...
느리게....
천천히....
그렇게
침묵하고 멈추고 그것만 하는 훈련중이다.
삶을, 삶속의 나를, 내 속의 정신과 감정을 미친듯이 흔들어대는 속도의 매커니즘에 내가 빠져버린 채 살았다는 것을 여기 시골로 와 느낀다. 물론, 아직 여기 온지 1달도 채 되지 않았으니 여기서도 난 빠르게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정신이 서서히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단순하고 조촐하고 소박하게 살려고 왔잖아. 그렇게 빨리 갈 필요없고 종종거려봤자 소용없어. 잘날 필요도 없고 잘할 필요도 없어. 그러면 정말 잘 살게 될거야. 삶은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세밀하게 인생을 만들고 있으니 순응하며 잘 따라가 봐."
그렇게 고독과 고립이 더 나와 진한 우정을 쌓고 있다.
고독은 공허가 아니라 내 안의 나와 진심을 나누는 소통이며
고립은 단절이 아니라 진정한 나와 능동적으로 만나는 의지이다.
고독하게 고립한다는 것은 외부에의 의지를 끊고 진정한 나를 믿겠다는 홀로됨이다.
이 순간, 순간을 느끼지 못한다면 나의 현실이 마음대로 어디를 가든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순간, 순간이 살아있지 못하다면 나의 인생이 무엇으로 채워지는 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순간, 순간을 발아하고 부화해내지 못하면 나의 지금은 지우고 싶으나 지워지지 않는 과거로 남는 것이다.
이 순간, 순간이 영원으로 채색되는 질료들인 것을 나는 이제서야 깨달아가는 중이다.
[건율원 ]
[지담연재]
월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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