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길 가운데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길로 들어선 것을 느낀다.
어찌하다 여기까지 온 것이라 말하고 실제 그렇기도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흐름 속 이유없는 변화는 없었고 지금 느끼건데 그 어떤 시간도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내 지성으로는 판단하기에 서로 연관없어 보이는 모든 시간들이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부족하고 미숙한 나를 이끌고 여기 이 자리에 이렇게 앉혀놨다. '동시성'현상으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내가 가지 않고 놔버렸던, 그리고 지금 발길을 돌린 수많은 길들은 그렇다면 의미가 없어서였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 지금 하나의 의미있는 길이 닦인 것을 아니까.
20대 방송활동을 시작으로 30대 교육사업과 상담, 방송출연, 저술활동, 학교강의... '경영인의 지혜'를 국내 최초로 연구, 코칭모델을 만들고 지혜의 학습이론을 개발하며 그렇게 자뻑인지 자신인지 나름 승승장구를 달렸지만,
어느 순간, 나는 사회적 직함을 모두 내려놓고
여기서 책과 글, 그리고 사유를 일상으로, 업(業)으로 삼기로 작정한 듯 시골로 내려와있다, 아니, 내려와졌다. 글로 먹고 산 적도 없으면서 글로 먹고 살겠다고 여기 이렇게 산골에 쳐박혀 글을 쓰고 있다. 아니, 글을 쓰게 되어졌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내 이성을, 정신을, 영혼을 지금 이 하나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한,
말도 안되는 이 길을 걷게 하기 위한 조.짐.이었던 것일까...
방송이 주는 영향력, 그 속의 사람들, 그 수많은 거짓. 과장, 협작.
사업이 주는 황홀함, 그 잔인하게 드러났던 인간의 가면, 가두, 가식.
내게서 과하게 돌출되며 날 위험의 경지로 몰고갔던 자신, 자위, 그리고 자만...
그 속에서 연구를 하고 진정한 '사람'과 '사람의 업'을 다루는 활자 속에서 '진짜 활자'를 찾으려 애썼던 연구실에서의 긴밤들, 빼곡하게 천정까지 쌓인 원서들을 읽고 밑줄치고 인덱스붙여가며 기록했던 수년간의 탐구속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이어야 하고,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어떠해야 하며, 사람이 사람을 키우고 가르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교육'의 명제 앞에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내가 가는 길이 '교육'이라는 두 글자의 참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내 자식부터 잘 키워내야 하고
자식보다 키우기 어려운 나부터 좀 키워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깊은 절망과 희망이 혼재된 그 시간의 어떤 터널 속에서...
2019년 2월, 새벽 독서를 시작,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새벽에 책과 마주한 지난 5년은 글에서 언급했듯이 내 인생의 '혁명'이며
지금 이렇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진짜 '책'과 '글'속에 날 빠뜨리려 시골로 터를 옮긴 것은 내 인생의 2번째 '혁명'이다.
20대부터 지나왔던 또는 지나쳤던 그 수많은 조짐들은
혁명을 위한 전조였고
혁명이 가는 길위의 징조였고
혁명을 보편과 보행으로 이끌기 위한 변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간 내게 무의식적인 의도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의식적인 계획이나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0여년보다 훨씬 전 노트에 끄적거린 '건율원'-나를 만드는, 나를 세우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애송이였던 내가 잉태했던 나의 꿈이 태동하려는 느낌속에 지금 나는 서 있다. 그 때 왜 나는 건.율.원.이라는 세 글자를 끄적거렸을까.. '이치를 바로 세우는 학교... 나를 나로 만들어 살게 할 건율원. 아마도 '이런 학교가 있으면 내 아이들부터 보낼텐데'하며 그저 끄적였던... 그렇게 작은 소망의 씨앗 하나 심었던.. 그 때...
그러다가 나는 어느 순간 책을 미친듯이 읽었고
글을 더 미친듯이 쓰고 있었고
코칭에 빠져 또 미친듯이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고 있고
이 모든 과정은 서로 연합되면서 내 사고안에 하나씩 체계를 잡고 있다.
그렇게 10여년 잊고 있던 건.율.원이 내 머리 속에 그림으로 훅! 들어온 어느 순간,
그 날, 나는 이렇게 글을 적었고 이런 그림을 그려봤었다.
내 상상속 건율원은 숲, 샘, 창. 이 대변한다.
그런데 계획에도 없었던, 계획조차 할 수 없었던 현실에 지금 내가 있다.
숲속 방치되어 있는 산골의 집,
통유리와 중정과 연못이 있는 집,
깊은 산속의 샘물이 계속 마르지 않고 흐르는 집.
상상은 진짜 현실이 되는걸까..
나는 이렇게 '자기자신을 하나의 씨앗으로 확인하고 꽃을 피우고자 하는 누구나가 드나들 수 있는,
늘 책과 글, 사유의 깊이가 더해지는... 그렇게 자유로운 사유의 에너지'가 흐르는,
통창으로 된 그런 터를 원했다.
넓은 정원에는 누구나 드나들며 사유할 수 있고
그렇게 서로의 결이 맞는 동반자들이 함께 영원한 생명수를 지켜나가는... 그런 곳.
어쩌다가 여기에 이렇게 터를 만들고
무엇엔가 홀린듯이 여기에 내가 자리할 줄 불과 두어달 전의 나는 몰랐었다.
건율원을 만들고는 싶었으나 만들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지도 못했었다.
숲, 샘, 창이 있는 이 곳이 어떤 시도도 없이 현실로 주어질지 나는 정말 몰랐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숲, 샘, 창이 있는 이 곳은 작지만 건율원의 개시로서 적합하지 않을까 싶은 강렬한 유혹에 나는 모든 걸 걸어본다. 개시는 진화하여 확장되고 지속될 것이다. 그 모든 확장과 지속의 영속에 이 작은 터전은 마르지 않는 정신과 영혼의 샘물을 공급할 수 있는 원천수가 되어야 마땅하다.
자, 그렇다면.
시골로 터를 옮기고 연일 이어지는 중노동에 체력은 고갈 직전이다.
하지만 내 정신은 늘 깨어 있다. 안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혹여 이 시간들이
삶을 소모시키면 안된다는 초조함과
내 삶을 이렇게 온전히 드러내도 괜찮을지에 대한 자격검증의 까다로움과
주어진 모든 것의 진화가 비단 나만을 위한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는 확장에 대한 간절함과
위대한 꿈이 지닌 베짱에 지금의 단순함과 느림이 나태로 전락하면 안된다는 검열의 날카로움과
개시를 진화로 이어가기 위해 대자연에게 갈구하는 따끔하고 매서운 외침이
지금 나의 내면에서 마구마구 솟구친다.
이런 복잡하고도 어지러운 내 안의 소리들이
침묵으로 대변되는 외면이 아니길
확언으로 포장되는 거짓이 아니길
상상으로 만족하는 허상이 아니길
나는 오늘도 이 새벽 빌어본다.
수년간 하루에도 십수번, 수십번 내뱉았던
정신의 물질화,
관념의 형상화,
이상의 현시화의 개시가 지금 시작된다.
꿈은 꿈이 가는 길이 있고
나는 그 꿈에 어울리는 자가 되어야겠기에
오늘...우선
내 안의 어지러운 소리들에 질서를 부여해야겠다...
[건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