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달만에 도시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이주한 저의 리얼일상을 이사준비부터 듬성듬성 적어내려 가는 연재브런치북입니다. 헌집과 헌나를 변신시키는 과정을 담아냅니다.
9월 20일 이사전, 그러니까, 8월 31일. 5년전 분당의 큰 집에서 이사오면서 버리기 아까워 창고에 쌓아둔 상자를 하나씩 풀어헤쳤다... 다 버리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역시 시작은 가열차나 금방 힘들어서 괜히 일을 벌였다고 후회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비워야 채워진다며 5년간 이 집에서 살면서 꺼내지 않은 짐들은 싹~ 버리자. 새로 이사가더라도 창고 안에서 보낼 운명들은 그냥 누굴 주든, 버리든, 각자 갈 길로 보내자! 라고 맘먹었으나 그렇게 시작한 '비우기'가 몇날며칠 '해야할 일'로 둔갑해서 내 시간을 참참히 뜯어갔다.
이건 버릴까, 가져갈까. 처음의 고민은 금새 사라졌다. 빨리 일을 끝내고 홀가분하고 싶어져서 생각없이 버리는 쪽으로 기울어 계속 사들이는 건 쓰레기종량제봉투요, 계속 오가는 곳은 분리수거장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역시. 후회 가득이다.
왜 그 귀한 LP와 CD, 음악테잎, 비디오테잎...을 죄다 버렸지?
내가 미쳤어 미쳤어... 하며 지금 여기서 그 귀한 음악들 틀어놓으면 좀 좋아? 한다.
한곡한곡 녹음해두었던 그 테잎들은 또 왜 버린거지?
내가 듣고 싶은 음악들만 죄다 모아놓은 그 테잎을 도대체 왜?????????
스탠리큐브릭, 레오까라,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을 비롯해서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들을 왜 죄다 버렸냐고!!!!!!!!!!!!!!!!!
아까워서 손을 덜덜 떨며 버릴 때는 언제고
손까지 떨게 하며 애원하는 그것들을 그냥 귀찮아서 죄다 버리는 쪽으로 나몰라라 하더니 샘통이다!
그 녀석들의 복수가 시작된 듯
오늘은 괜시리 무심했던 내 행동이 미워지고
미워지는 내가 싫어서 그 행동이 기억에서 사라졌으면 좋겠고
이도저도 싫으니까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내 맘도 싫어지고.
이상한 방향으로 내가 흐른다.
이제 와 후회막심이다.
네이버에 클릭만 하면 좋아하는 영화를 언제든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유투브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마당 전체에 음악이 울려퍼지긴 하지만,
그 구수했던 곡들을 하나하나 선곡하지도 못하고 또 딱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이 듣고 싶을 땐 그냥 콧노래로 대신하고 있으니....
뿐만 아니다.
빵이라도 사려면 버스타고 20분이나 가야 하는 동네에 사니 오븐도, 빵만드는 도구들도 죄다 버린 게 또 후회막심이고 거실한켠에 놔두고 그냥 가끔이라도 칠걸. 버리고 온 피아노도 그립고 이쁘게 물고기를 키웠던 크고 작은 항아리들도 가져와서 여기 마당에 두었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미니멀라이프'를 괜시리 따라했나보다.
아니면, 뭘 버려야 하는지 가늠하지 못하는 모지랭이거나.
이미 지난 일.
아무튼 나는 그렇게 이사를 앞두고 매일매일 물건정리에 몰두해 있었고
그렇게 밖을 비우듯 내 안도 다 비우려 몰두했고
'그 곳에서의 하루는 책과 글, 산책과 창조로 채워가야지'하며 시골에서 읽어야 할 책정리에도 몰두했고
시골로 이사가면 하고 싶은 것들을 조목조목 적는 쏠쏠한 재미에도 몰두했다.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난 목수가 되고 싶다. 내가 앉을 의자, 마당에 놓을 테이블, 내가 만들고 싶다. 오래전에 손에서 놨던 기타도 계속 치려 한다. 악보를 보지 않고 내 맘대로 두드릴 수 있으면 내가 멋질 것 같다. 꽃과 나무를 배워 가드너가 되고 싶다. 내가 머무는 곳에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로 꽃과 유실수들이 가득하길 바래서다. 그리고 그 유실수 한 그루 아래에 난 묻히고 싶다.' - 8/31일 내 기록
그리고 지금 여기 시골.
벌써 이사온지 1달하고 5일이 지났다.
진짜 난 목수가 될 자질이 충분한 듯 자뻑에 빠져본다.
본 브런치북에서 글과 사진으로 공개했다시피 난 나무도 잘 베고 톱질도 잘하고 심지어 삽, 호미, 낫도 잘 다룬다. 타고났나보다. 지금껏 50년 도시에서 살면서 한번도 잡아보지 않은 도구들인데 내 손에 착착 감기듯 내 잠재된 실력이 마구마구 드러난다. 목수가 되도 되겠다.
모든 것을 직접 한다.
소나무 가지치기도 직접 했고 밀림으로 덮힌 마당의 풀들을 더 거둬내고 돌들로 경계를 만들어놓은 과거의 마당형세도 다 바꾸고 있다. 연못도 가운데는 흙으로, 바깥은 돌로 채우려 지금 나홀로 공사중이다. 말마따나 내가 앉을 의자, 마당에 놓을 테이블이나 무심한 듯 한켠에 놓을 야외의자 정도는 어떻게든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구체화됐다... 마당을 어둡게 만들고 제 맘대로 자란 소나무는 1M높이로 잘라냈다. 이 위에 나무를 얹어 티테이블로 만들 계획이다(아래 그림 참고). 연못을 덮고 있던 흙은 모두 마당입구로 옮겼다. 계단만들려고.ㅋㅋㅋ
가드너? 물론 아무 것도 모르니까 이런 걸 꿈꾸겠지 싶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마당 한쪽에 핑크뮬리 씨앗을 쫙! 뿌리고는 또 고민중이다. 마당 비탈은 어떤 식물로 장식하고 소나무 둘레는 수국을 심을까 어쩔까. 또 연못 주변엔 무엇을 심을까.... 나홀로 가드닝에 빠져 있기도 하다. (사실 비밀인데 연못에는 매화 2그루를 심고 싶다. 어떤 조건에서 매화가 잘 자라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러고 싶다. 유실수를 대신해 매화를 심으면 우리 마당이 운치를 더하고 또 내 뜻과도 결이 잘 맞을 것 같아서다.)
이렇게 하루하루 나도, 우리집도 천천히, 하지만 아주 세밀하게... 변해간다.
어제와 오늘은 큰 차이는 없지만 1주전과 지금이 다르고 또 지금과 1주후가 다를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그냥 한다.
모르니까 그냥 한다.
못하지만 그냥 한다.
몰라서 그냥 할 수밖에 없고
아무도 없으니 그냥 내가 한다.
이래저래 이것저것 이렇게저렇게 그냥 한다.
아무 것도 모르니 잘 할 수 없다.
잘하려는 의도도 없고 잘 해내려는 욕심도 없다.
그저 내 감량만큼 '하는' 그것에 만족이 크다.
결과는? 완전 엉망이지만 그냥 내 맘에 들면 그만이다!
나중에 또 바꾸면 되니까.
계절이 계속 바뀌며 오듯 나도 그렇게 계속 계속 마당에서 놀거니까.
남들은 사람써서 하라고, 힘들다고, 건강챙기라고 왜 다들 이런 말만 하는지.
그럴 때 난 속으로 말한다.
'난 너무 재밌는데!!!'라고.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재미와 내 손이 닿는대로 척척 모습을 드러내주는 돌, 흙, 나무들과의 놀이도 재밌고 지쳐서 해먹에 잠시 누웠다가 깜빡 자다 깨는 나도 재밌고. 매일 매순간 너무 재밌는데.
새벽부터 오전 내내 책상앞에서 꼼짝 않다가 '야호!! 이제 마당놀이다!!'하며 뛰쳐나가는데!
책을 손에 잡다가도 마당으로 뛰쳐나가 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이는데!
살아낸다는 사람도 있고
살아간다는 사람도 있고
살아보려는 사람도 있고
살고있다는 사람도 있고
살려달라는 사람도 있고
살고싶다는 사람도 있다.
다 가져본 감정이다.
지금의 나는....
내 삶을 내가 살아간다.
내가 만들어가고
내가 일구고 있다.
모든 것에 이롭도록 내 삶이 제대로 영글기를...
내 하루의 즙까지 남김없이 짜내어 삶이 알차게 영글기를...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에서 '살아있음'에 감사하지 않는다면 그건 대자연에게 미안한 짓이다.
이토록 자유로운 공간에서 자연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날 보듬은 대자연에게 비난받을 짓이다.
이토록 편안한 일상에서 내 삶의 몫을 해내지 못한다면 내게 삶을 허락한 대자연에게 혼날 짓이다.
이토록 재미난 마당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마냥 하늘만 보고 있는 짓은 마당에게 원망들을 짓이다.
이 곳에서는 매순간 내가 나를 만난다.
그것도 '나도 몰랐던 나'를 매순간 만난다.
매일 살아있는 내가 느껴져서 '살.아.있.는.' 느낌이란 게 이런건가.... 생소한 느낌에도 사로잡힌다.
멋드러지게 글로 표현할 재주는 없지만, 어떤 표현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살아있는 느낌'이 매순간 날 찾아온다.
살아있는 나.
사람냄새나는 나.
사람다운 나.
사람으로서의 나....
이런 나를 잘 만들고 싶다....
어린아이들이란 스스로 무엇인가 원하면서도 무엇때문에 원하는지를 모른다고 한다.
(중략)
그러나 어른들도 어린애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상을 정처없이 비틀거리고 돌아다니며, 자기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이렇다 할 목적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고 과자나 흰자작나무 회초리에게 지배당하는 실정이다.
(중략)
어린애처럼 아무런 분별도 없이 그저 빈둥거리면서 하루를 보낸 것,
인형이나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부질없이 옷을 벗겼다 입혔다 하는가 하면,
엄마가 과자를 넣고 잠가둔 서랍 근처를 자못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것,
그러다가 갈망하던 물건을 손아귀에 넣으면
볼이 뿌득하게 그것을 입에 쑤셔 넣고 먹으면서 '더 먹을래!'하고 졸라대는 것.
이런 생활이야말로 누구보다도 행복한 생활이라는 것이지.
(중략)
그 모든 일이 어떻게 끝날 것이며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인식한 사람,
여유있게 사는 시민 하나하나가 그들의 조그마한 정원을 손질하여 낙원으로 꾸밀 줄 알고,
불행한 사람마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거리면서도 끈기있게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이 햇빛을 다만 1분간아리도 더 오래 쳐다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
그렇지.
그런 사람은 말없이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중략)
그리하여 그는 아무런 제약을 받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 속에서도 자유라는 즐거운 감정을 간직하고 있다.
자기가 원하면 언제라도 감옥같은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그런 자유의 감각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할일이 태산이다.
집전체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하는데 겨울 전에 해야 할지, 봄에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하는지...
여기저기 귀동냥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