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하도 감정이 내 정신을 이기려 들어서 '정신'이란 놈의 응징처원에서 '정신의 정체를 고발합니다.'를 써가며 복수심에 불타 내 정신을 고발했던 것이다.
물론, 여전히 아직도 정신이 자리를 비워둔 틈으로 감정이 훅 올라와 날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신의 실체를 나름 파악한 저력을 갖췄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정신을 살살 달래 제자리로 데려다놓곤 한다.
그래선지, 얼마전 나는 '자기 자리를 지키게 해준' 내게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정신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
눈이 땅을 덮어 땅을 재우듯 나도 내 눈을 덮어 나를 재울 수 있었다.
낙엽이 땅을 덮어 계절과 이별하듯 나도 내 눈을 덮어 현실과 이별시킬 수 있었다.
구름이 달을 덮어 밝음을 차단하듯 나도 내 눈을 덮어 보이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난 낮잠을 잘 줄도 모르고 낮잠을 허락하지도 않고 낮잠을 자면 그 시간을 도둑맞는 심정이 들어 노곤하고 피곤하고 잠이 부족해도 그렇게 날 채근하며 살았는데 여기 시골에 오면서부터 새로운 자극 덕인지 대자연의 배려 덕인지 낮시간의 고된 중노동(정말 헌집을 새집으로 바꾸는 건 중노동이다)때문인지 낮에 쏟아지는 잠을 피하기가 오히려 더 버거워서 졸다깨다를 늘 반복하곤 했는데
그러다 어느 날,
난 자진해서 '좀 자 볼까?'하며 해먹에 누웠고
내 눈을 덮어 나를 재워본 것이다.
그렇게 30여분 꿀잠을 자고 일어난 것이 내겐 너무나 커다란 선물이다.
그렇게 쏟아지듯 잠이 오지도 않았는데 내가 나를 재울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애썼다고...
여기까지, 이렇게까지 해오다니 참... 애 많이 썼다고...
그렇게 모든 걸 뒤에 남겨두고 롯의 아내(주)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다니...
참으로 잘 했다고 날 재웠던 시간이 내게 이유를 말해주는 듯해 콧망울이 찡했지만 웃었다.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놓지 못했던 손을 놔버린 후련.
발목잡던 미련을 외면한 용기.
열심히.의 둔갑을 벗겨낸 여유.
내면의 내전에서 승리한 쾌거.
나를 재웠다는 것은 내게 이런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떻게 쓰일 것인가.
질문이 모호하면 답을 내리기도 애처러운데
이 답없는 질문을 부여잡고는
매일 쓰는 글에서 도망치지도 외면하지도 대충 버무리지도 못하면서
잘 쓰려는 노력의 한계와 도통 써지지 않는 실력의 고통과 '쓰기'의 무게가 지닌 압력과 흐트러진 정신의 각도를 바로잡으려는 곡예를 펼치며 아슬아슬하게 매일 동동거리고 있는 내게 30여분의 꿀잠은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수 있게 했던 선물이었다.
나라를 구할 인재도 아니고
지역발전에 공헌할 감량도 못되고
그렇다고, 무슨 훈장을 앞에 두고 전투를 벌이는 것도 아니며
그저, 나 하나 바로 살고 싶은 이 길이 어쩌면 이리도 날 구속하고 있는지 투덜거릴 틈도 없이 난 곧바로 알아챘다.
내가 내 눈을 덮어 날 재울 수 있었던 그 '무능의 유능화'는
이제 '기꺼이' 하려는 길에서 '마땅히' 순응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구나.
이제 '열심히' 하려는 길에서 '반드시' 해내야 하는 길로 들어선 것이구나.
이제 '의식적'으로 애썼던 길에서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길로 들어선 것이구나...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내 길을 가는 것이구나...
주> 롯이 가족을 데리고 불타는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 나왔을 때, 롯의 아내는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돌아보았다가 그 자리에서 소금기둥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