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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1. 2024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어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 있다면

'쓰기'의 한계 앞에서

10월의 마지막날이다.

내 나이또래가 다 그런지 몰라도 10월의 마지막날은 노랫말때문인지 괜한 감성에 젖곤 한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시골에서의 첫 겨울이 코앞이라 눈오는 마당을 그려보며 환각같은 환상에 자주 취해보지만

꿈을 위해 이 곳으로의 정착을 결단한 나의 가슴은 요즘들어 자주 운다.


막연한 현실앞에서, 부족한 실력앞에서, 척박한 길위에서, 꿈의 무거움아래에서, 어김없는 시간의 촉박에 끌리며, 그리고 표현못할 어떤 압력에 의해 내 가슴은 운다.


치열했다.

그런데 치열도 습관이 되어 버린 어느 때

여유와 단순이 필요했고

그렇게 생긴 공백에서 내가 추구하는 글이 내게서 창조되길 바랬지만


요근래 내 글은 나를 불러세워

나태와 여유... 이 경계 어디쯤에 내가 서 있다고,

욕구와 욕심...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을 탄다고,

실력과 무지... 그 경계에 계속 머무르면 바보가 될지 모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꿈없이 지내온 50여년...

꿈을 키워나가는 지금...


'꿈없이 살아왔던' 지난 시간이 왜 자신을 방치했냐고, 이제와서 뭘 어쩌려냐고 날 원망하며 복수라도 하는 것일까. '꿈'이라는 단어만 만나면 명치 언저리, 찌릿거리는 신호에 단어를 잃을까 놓칠까 새어나갈까 놀란 가슴으로 순식간에 나는 나를 샅샅이 점검, 채근, 닥달한다. 그러면서도 압박, 긴장, 초조의 압력에 짓눌린 다시 꺼내어 어떻게든 불순물을 제거해 순도를 높이려 끙끙대다가 '미래의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게 오는 이 시간은 이런 모습으로 지나가는 게 맞겠지?"

'미래의 나'도 아니라고 대답하기 곤란할만큼 '지금의 나'에게 안도될 답변을 유도한다.


지금 내 정신의 무엇이 날 이토록 오도가도 못하게 만드는걸까.

분명 난 내 글을 위해 이렇게도 급변의, 심지어 혁명과 같은 시기를 선물했는데

내 글은 나의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토록 나올지 말지 날 염탐하고 주시하 뜸을 들이는걸까.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냥... 가만... 히... 찬찬... 히

내게 온 심정을 내버려두는 게 상책(策)이겠다.

계속 더 읽어서 내 안의 고인 것들을 자극하는 것이 일수(數)이겠다.

맘에 들지 않고 표현할 길 없어도 이렇게라도 계속 써대는 것이 상수(數)이겠다.


그렇게 하다보면

종이에 내 생명을 불어넣어 내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주) 있는 묘수(手)가 내게로 오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지금 나의 무엇이 삐걱거리는가.

정신의 각도

심정의 온도

행동의 정도

영혼의 순도


어디인가?

어디가 넘치고 어디가 모자라는가?

어디에 불순물이 끼어 글이 이리도 머뭇거리는 것인가?


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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