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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5. 2024

오른쪽 어깨엔 시간이,
왼쪽 어깨엔 그녀가.


나는 뽜이팅을 자주 외친다. 

물론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말과 행동이지만 이 행동은 나만의 의미가 담긴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두려운 무언가의 앞에서, 

불안을 일으키는 현상 앞에서, 

막막하고 뿌연 터널을 지날 때, 


그래서, 

겁이 나고 망설여져 두다리가 꿈쩍하지 못하는 어떤 때에 온 에너지를 실어 이렇게 양주먹쥐고 양팔올려 뽜이팅을 외친다.



내 양쪽 어깨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오른쪽 어깨엔 '시간'이,

왼쪽 어깨엔 '미래의 나'가 있다.


오른쪽 어깨의 시간이 하는 짓은 

아주아주 치밀하고 디테일하고 정확하다. 


시간은 내가 망각한, 잘못 기억한, 휘발된, 힘없이 사그라들기 직전의 모든 것까지 고스란히 다 기록하고 있다. 항상 내 옆에서 나를 기록하고 있는 내 충신처럼 내가 놓친 모든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시간은 이렇게 기록한 것들을 내가 알든 모르든, 기억하든 못하든 상관하지 않고 내 걸음걸음 앞에 자신이 판단해 '이때다.' 싶은 것을 툭툭 던져놓는다. 


자신의 기록장을 열심히 뒤져서 

지금 내가 불안하여 한발짝도 나가는 상황이라면  

기억속 망각으로 지워진 어떤 경험을 끄집어내어 앞에 던진다. 

혹여 내가 자만하여 지금 발을 떼야할 때가 아닌데 발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알 수 없는 무지앞에서 헤맬 때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망설일 때도, 

여하튼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자기만의 파일 속에서 과거 내게서 휘발된 것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소환하여 !!!!!!!!!!! 느낌표를 열댓개 붙여도 모자랄만한 것을 앞에 던진다. 


아차! 실수에서 벗어난 경험.

어쩌지? 할 때 딱 필요한 문장을 책에서 만난 경험.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냥 눈감고 뛰어본 경험.

어쩐지. 하며 뒤늦게 이유를 알게 된 경험.

이 모든 순간의 경험은 시간이 적합한 것을 찾아 내 앞에 던진 덕이다.

내 경험의, 내 이성의 역사를 쓰는 것이 시간이 내게 늘 하는 짓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지 않고 기억을 믿지 못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니, 내 기억은 완전하지도 않고 오류도 많아 나의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기억이란 녀석이 감정의 저장창고라 감정에 사실이 희석되어 남아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인 나의 한계에 의해 내게서 방사된 것을 제대로 담아두지 못하는 것을 시간은 아주 철저하고 정확하고 세세하게. 그렇게 알아서 길 위에서 부활시킨다. 


이게 그 때 그 일이 일어난 이유라고

지금 이 경험이면 충분히 한발 내딛을 수 있다고

이렇게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면 어쩌냐고 

그렇게 시간은 나의 지난 것들을 부활시켜 내 인생에 다시 개입시킨다.


그래서,

시간은 내 기억, 나아가 정신보다 더 믿음직스럽다. 

시간 역시 날 믿음직스럽게 여기게 하기 위해 시간에게 잘 보여야 한다.

시간의 기록장에 무엇이 적힐지, 적힌 그것을 내게 가감없이 던지기에 

시간이 날 믿으면 믿을수록 적합한, 적당한, 제대로 된 과거를 던져 근사한 미래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왼쪽 어깨의 '미래의 나'는 더욱 더 믿음직스럽다. 


그녀는 초월된 시각으로 '지금의 내'가 원하는, 되고 싶은 그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에 그녀의 말만 잘 듣고 따르면 나는 그녀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불안에 떨 때 난 그녀를 바라보며 묻는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너처럼 되는거지?'하면 그녀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내 왼손을 잡고는 해답과 함께 화이팅을 외쳐준다. 


내가 설레는 가슴만으로 뜨거운지 차가운지 모를 때도,

내가 무지해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할 때도,

내가 넘치는 열정과 의지만으로 이쪽저쪽 구분못할 때도 

그녀는 날 경계시키고 제지시키고 전진시킨다. 

'그렇게 하면 안돼!, 거기로 가면 안돼, 이제는 가야 해. 이건 해봐야 해.'하면서.


양주먹을 불끈 쥐고 양팔올려 외치는 뽜이팅!

이 때 내 오른손은 시간의 손을, 

왼손은 미래의 내 손을 잡고 있다. 


이렇게 3이 일체가 되어 뽜이팅을 외치니 난 혼자가 아니라 3인 셈이다. 

하나의 뽜이팅이 아니라 3이 시너지를 낸 뽜이팅이라서 

두려움은 용기로, 

불안은 안정과 희망으로, 

터널은 밝은 빛으로 순간 믿음직스럽게 변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내려놓고 시간과 미래의 나를 믿고 한발 전진한다.


오늘도 내 허락없이 치고 들어오는 수많은 걱정과 불안 앞에

난 주먹 불끈쥐고 양팔을 올려 양쪽 어깨의 든든한 그들의 손을 잡고 힘차게 외치겠지.

난... 그래서...

혼자가 아니다.


정확한 기록으로 적재적소에 과거를 소환하여 내 앞길을 터주는 시간과

미래의 어떤 지점에 서서 정확한 롤모델로 방향을 알려주는 그녀가 

양쪽 어깨 위에서 항상 날 지켜주고 잡아주고 끌어주니...

오늘도 난 나보다 그들을 믿고 한발 전진할 수 있겠다...



[건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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