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직하다.
모두 모두 모두.
어느 누구라도.
단 한사람도 어떤 순간이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난 지금 이 모순에 놀라서 이 모순에 빠진 나와 날 거쳐간 사람들을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에서 다시 재고해야할 필요를 느낀다.
정직은 믿음에서 나온다.
이쪽보다는 저쪽을 택하겠다. 면 저쪽으로 정직하다.
하지만, 순간 바뀐다.
저쪽이 아니었네. 하며 다시 이쪽을 택해 이쪽으로 정직하다.
그러니, 믿음을 저버린 인간도 정직한 인간이 된다.
...
아... 이 모순을 마주하며
내 입에선 너털웃음도, 비웃음도 아닌,
그렇다고 비소(誹笑)도, 냉소(冷笑)도, 조소(嘲笑)도 아닌
알 수 없는 웃음, 그냥 실소(失笑)? 가 터져나왔다.
여하튼, '인간은 모두 정직하다.'라는 명제가 세워졌다.
믿음을 져버려도 '져버린 믿음'을 믿기에 그 쪽에서 정직한 것이니
결론적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정직은 거짓, 위선과 동격이다'는 명제가 그 위에 보태졌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하고 양극은 서로 맞닿아 있다더니 정직과 거짓이 다른 표현, 같은 의미가 되어 버렸다.
자, 그렇다면
정직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아. 순간, 내 정신에는 앞서 세운 명제 위에 다음과 같은 논리가 얹혀진다.
정직보다 더 상위에 세워두어야 할 미덕이 '양심'이 아닐까.
양심이 정직에 우선된다. 는 논리.
명제가 논리가 될 때에는 근거있는 타당한 주장이 필요할텐데...
양심(良心).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주).
여기서 '도덕적 의식'이라는 단어가 맘에 걸린다. '도덕'이라 하면 시대에, 환경에 따라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남자가 첩을 두는 것이 도덕에 위배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도덕'이라는 단어대신 '윤리'라는 단어를 적용하면 의미가 깊어지고 기준이 더 명확해진다. 제 아무리 조선시대였더라도 '사랑'이라는 윤리에 '첩'이라는 단어를 적용하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정리해보면.
자신의 '정직'에 대해
'윤리'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정신을 초월한 의식적 '믿음'에 따라
나의 정직이 본연의 가치를 갖게 된다.
그래서, 물어야겠다.
정직하다고, 내겐 결코 위선과 거짓이 없다고 자신하기 전에 더 깊이있게 자신을 바라보라고.
과연 그 깊이에서 내 가슴을 울리는 양심에 따라 정직하다고 말할 수 있냐고.
정직이라는 단어에 '보편타당'보다 '양심에 의한' 전제는 지니고 있냐고.
오늘 왜 이 모순이 날 날카롭게 찌르냐면,
믿었던 길과 다른 길을 걷는 나에게,
믿었던 사람과 다른 결의 사람을 따르는 너에게,
믿었던 사실과 다른 판단으로 번복된 의리를 지키려는 그에게,
믿었던 신념과 다른 질료의 신념을 숭배하는 그녀에게.
나는 나에게 물어야 했나보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나보다..
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