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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29. 2024

117년만의 폭설, 정전.
35시간의 기록.


지금, 새벽 4시 46분. 마을회관에서 홀로 나는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117년만의 폭설로 뉴스를 도배했던,

11/27일 새벽 4시 ~ 11/28일 오후까지.

폭설 현장, 정전사태.

시골로 이사온지 2달. 첫눈.

하지만 작은 시골마을에서 난생처음 겪은, 보고 듣고... 느낀 심정들을 적어봅니다.


28일 새벽 4시 조금 넘어 마을회관에서 홀로.


# 11월 27일, 늘 하던대로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하얀 세상에 감탄하며.


눈이 온다고 이렇게 심장이 쿵! 소리가 들릴 정도로 짜릿했던 적이 있었나?

새벽에 눈을 뜨니 온세상이 하얗다!

아직 11월인데.

아직 겨울준비를 해놓지도 않았는데...싶다가도

눈이 오면 오는거지. 그랬던 내가 '와!! 너무 예뻐!!' 하며 추운 줄도 모르고 이 컴컴한 새벽에 마당에 나가 한참...을... 서있다니...


바람없이 아래로 쏟아지는 눈을 맞으려 고개도 뒤로 젖혀 보고

아직 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는데도 낙엽송에 쌓인 눈에도 눈길주고

연못가 돌위에 소복하게 올라앉은 눈을 보며 다시 심장이 쿵. 소리를 내고....


27일 새벽 4시경. 온세상이 어둠속에서 하얗다.


그러면서도 

아~ 독서모임끝나자마자 길가 눈부터 치워야 하지? 

아랫집은 주말에만 오니까 아랫집길가까지 쓸어야겠지?

아! 1번째 집은 유럽여행가셨으니까 저어기 길가까지 쓸어야 하네! 한다.

(우리집으로 올라오는 언덕에는 3채의 집이 있다. 우리집이 젤 위.)

 

꽤 긴 길인데 이 길을 다 비질하려면..ㅠ.ㅠ 걱정1

지붕은 괜찮겠지? 걱정2

오늘 오기로 한 택배는 오려나? 걱정3

이렇게 길이 꽁꽁 얼어붙지는 않겠지? 걱정4

수도가 얼어서 터지지는 않겠지? 걱정5

시골 초년생이 난생 처음 겪으며 할 수 있는 걱정이라고 해봤자 여기저기 들은 말들뿐이라 이것말고도 또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 걱정6


심장이 또 한번 쿵! 하지만 바로전의 쿵과 지금의 쿵은 다른 쿵이다.


핸드폰이 계속 울린다.

대설경보 발령.

문자가 흰눈에 팔린 정신을 걱정으로 정착시킨다.

살면서 한번도 이런 문자에 걱정해보거나 내가 처리해야 할 것들은 없었다.

그저 너무 춥거나 눈이 많이 오면 안나가면 그만이었는데 여기서는 해야할 일, 걱정이 줄줄이다.


오늘 40센티가량 눈이 내린다고 하니

이 난생 처음의 경험이 시골에서 맞이하는 첫겨울을 제대로, 잘 넘어갈 힘이 되어야 할텐데.


2024/11/27 새벽에 테라스에서. 쌓인 눈, 쏟아지는 눈, 쏟아지는 경보문자.



# 11월 27일 새벽 6시 40분 

   정.전.


방금전. 독서모임이 한창인 시간, 

그러니까 지금 시간 6시 40분a.m..


전기가 사라졌다.

인터넷도 사라졌다.

물도 사라졌다.


바로 이장님 방송이 들린다.

마을 전체가 정전.


곧 들어오겠지 하면서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일단 카톡으로 상황을 전하고 나없이도 마무리까지 잘 해내시라 부탁드린 후 순간, 나는 허둥댄다. 정전이라서가 아니라 독서모임에 한번도 지각한 적 없고 이렇게 느닷없이 나가버린 적도 없는데... 아... 난감, 허둥, 당황, 황당..........


하지만 곧, 어두운 방에서 지금 이 글을 쓴다.


차분하게.

차분하게.

차분하..자..


마을 전체가 정전이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냥 기다리는 것뿐.


능력, 성격, 나태, 의존과는 무관한 일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게다가 내가 한전직원도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

전기가 나가면 물도 안 나온다(여긴 지하수).


물도, 전기도, 강추위에 보일러도 모든 것이 다 내 통제밖에서 움직인다는 사실.

생존과 관련된 모든 것이 정.지.된. 지금.


상황파악 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하자.

남은 노트북의 배터리로 글을 쓰는 것뿐.

노트북과 핸드폰의 후레쉬만이 유일한 빛인 이 곳에서 그냥 담담히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사용하자.

기다리는 것은 기다릴 때 오지 않았던 경험에 익숙하니 난 그냥 지금처럼 글쓰면서 세상과 차단된 이 시간을 지나보내면 된다.


어차피 지나갈 것에 애닳을 필요없고

지금 가장 빠르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소중한 그것을 하면 된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진 닭한마리를 갚아달라(주)고 크리톤에게 부탁한 마음에 비할까마는 지금 나는 그냥 일상처럼 이 시간을 보내면 그만인거다.


인생이 한치앞도 볼 수 없다더니...

두어시간전 눈뜨자마자 촐랑대며 좋아라 글쓰다가

한시간전 걱정이 쏟아져 들어오다가

지금 어둠과 흰눈을 감당하는 것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블랙스완(주)이다!

나는 평범의 왕국에서 극단의 왕국으로 초대된 것이다! 

아니, 난 평범의 왕국에서 극단의 왕국으로 던져진 것이다!

왜 이 왕국은 날 초대했으며 아니, 자연은 왜 이 왕국으로 날 던진 것인가! 

니콜라스나심탈레브의 말대로 인생의 급변은 평범이 아닌, 극단치에서 벌어진다. 세세하고 소소한... 그러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내 인생을 만들며 내 역사를 쓰는 것이다.


'눈이 오면 얼마나 이쁠까?' 노래를 부른 나에게

이렇게 가득가득 눈을 내려주며 날 들뜨게 하더니 곧바로 심기를 아주 불편케 하는 일들을 몰아서 함께 보내는 자연의 심보! 내가 그 심보를 읽었으니 이보다 더한 것이 오더라도 그 다음은 길게 더 깊이 이 겨울을 즐길 수 있으리라. 


심보부리는 자연에게는 어쩔 수 없다. 

자체의 이유를 담고 나를 여기저기서 괴롭히겠지만 내 어찌 그 위대한 이유를 알까. 그냥 당하든가 즐기든가 둘 중 하나지.


경험만이 지식이다. 

지금 시간, 7시 01분. 

조금씩 날이 밝아온다.

이 곳에서의 첫눈, 첫위기, 첫자유, 첫첫첫....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어떤 신경도 쓰지 않기!

내 통제안의 것, 무엇부터 할 수 있을까.

일단 밖으로 나가서 뭐라도 하자!


마당의 수도에서 우선 물부터 받아놔야 한다. 지하수를 쓰기 때문에 전기가 나가면 집안의 모든 수도는 일을 못한다. 화장실, 마실물, 밥물... 물 안나오는 집에서 한번도 살아본 적 없고 캠핑도 가본 적이 없는 나라서 커다란 물통이 없다. 만약에 대비해야 한다고 마을 주민들이 미리 일러줬는데 미뤘다. 사람은 당해봐야 안다. 세상의 단 1사람이라도 겪은 일이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법.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느닷없는 난감은 작은 인간인 내 심장에 강한 타격으로 온다.


여하튼 집의 냄비란 냄비는 다 가지고 나가 계곡에서 직접 연결해놓은 수도에서 물을 담아 집안으로 옮긴다. 그리고는 여행가신 저 아래집까지 모든 길의 눈을 치워야 한다. 이대로 얼면 난 진짜 고립이다. 꽤 가파르기 때문에 저 아래까지 무조건 치워야 하는데(눈 치우는 삽? 은 미리 사뒀다. 휴.. 다행) 난생 처음 눈을 치우면서 처음엔 신났다. 캬~~ 하며 내 앞으로 삽을 쭉 뻗고 일단 길~~게 한줄로~~. 죽~~ 뚫리는 길을 보며 이 하얀 세상에 감탄도 하고 사진도 찍고 나만의 놀이에 흠.뻑. 진짜 흠.뻑. 취하기도 했다.


일단 마당수도에서 물을 되는대로 다 받고 노는 중


그렇게 다시 집까지 올라가서 한줄로 낸 길을 따라 좌우 옆으로 눈을 치우는데 중노동이 따로 없었다. 

한참을 그리 내려오는데 저~~ 어기 언덕 아래서 이장님이 소리치신다! 


'아! 트랙터가 다 치워줄건데 그 힘든걸 여태 했어요? 집에 들어가 있어요! 여기 다 정전이라 난리도 아니네!'


처음 한줄로 내려갈 땐 진짜 재밌었는데 저렇게 넓게 눈치우는 건..ㅠ.ㅠ 중노동이었다.



아... 여기는 여기의 시스템이 있구나... 

집에 들어오자 트랙터가 올라온다. 

냉큼 뛰어나갔더니 '어이쿠, 이 길을 다 치우셨어?' 하신다.




# 11월 27일 정오, 마을회관 


잠시 후 이장님 방송이 나온다. 다행히 마을회관과 몇몇집은 정전이 아니니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으라는 것이다. 어찌 돌아가는 상황인지도 알아야겠고 대비를 어찌 해야 할지도 배워야겠고. 12시경 내려갔더니 할머니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주민들이 모여 갓 이주한 텃새인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낼름 앉아 주시는 음식 먹는 성격이 아니라 쭈뼛거리며 냉큼 주방으로 가 어르신들 식사부터 챙겼다. 


여하튼... 예상은 했지만 여기서 제일 젊은 내가 모든 설겆이를 했다는... 설겆이만이라도 해서 좋았다는... 

설겆이중에 내 귀는 주민들의 이야기에 쏠려 있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처음이야!' 이구동성으로 나누는 얘기에 한켠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사실, 첫눈이 이 정도면 나중에 더 추워지면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려나... 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뉴스를 미리 봤더라면 이런 걱정은 안했을지도 모르겠다.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일상으로 돌아가 글을 쓰고 있는데 커다란 tv로 계속 뉴스가 보도됐다. '117년만의 최악의 폭설'이란다. 이 통계가 11월에 한정된 것이지만 여하튼 내 걱정은 한시름 놓은 셈이다. 문제는 여기뿐만 아니라 경기도일대의 대규모정전사태. 우리같이 작은 마을까지 손이 닿기에는 더 크게 고립된 마을이 많았다. '오늘 전기가 들어오지 않겠다'는 예감하에 그냥 여기에 머무르기로 하고 저녁은 라면으로, 그리고 노트북과 오가는 어르신들 챙기며 하루를 마감하는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다.



# 11월 27일 저녁 7시 

   

저녁 7시경... 저녁설겆이를 모두 마치고 노트북앞에 조금 더 앉아 있다가 집으로 가려는데 동네주민두어분이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을 모시고 허겁지겁 오신다. 독거노인이신데 약간의 치매증상도 가지신 분이시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 드신채 냉골에 계시길래 모셔왔다는. 나는 서둘러 어르신께 저녁을 차려드리고 찬찬히 낯선 마을분들의 얼굴에 비친 긴장, 걱정, 난감한 표정들에서 지금의 분위기를 읽어야 했다.


이들에게도 이같은 난리는 처음이구나...

누구에게나 처음은 낯설고 두려운 것이구나...

나의 낯섦과 두려움만큼 이들도 그렇겠구나...

또한...

내가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구나...


난... 전기가 빨리 들어오기만을 바랬지 내 주변에 내가 챙겨야할 어르신들이 계신다는 사실조차 전혀 염두에 두지 못했다. 물론, '이사온지 두달인데 모르는 게 당연하지.' 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난 편하고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 정도 살았으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시골이고. 여기엔 노인들이 많고. 전기때문에 난방이 안되고. 이 3가지만 해도 한번쯤 '혹시 여기 어르신들 다 괜찮으실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야 마땅하다. 

난 그러지 못했다...


삶에서 꼭 배워야만 할 것도 있지만 배우지 않아도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난 여전히 철부지고 여전히 생각이 얕다. 이 깊이를 키우는 것이 진짜 삶의 공부인데... 50이 넘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살면서 당연히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알아야만 하겠다...


홀로 계셨던 치매어르신을 보살펴주는 시설에 연락을 해서 아들의 연락처를 알아내 상황을 전하자 아들은 다음날,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 오후에 아버지를 모시러 온다고 한다. 이렇게 몇분. 어르신들이 여기에 머무르셔야 하고 마을회관 주변으로는 정전으로 인해 물이 없는 주민들이 물을 길어가고 어디에 모여서 잘지를 상의한다. 시골공동체가 이런 건가... 싶었고 내게도 찜질시설을 갖춰놓은 집에 가서 같이 자자는 권유를 받았지만 내 성격상 감사히 거절하고는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27일 저녁 8시경, 면장님 이장님과 함께.


이장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면장님도 함께 오셨다. 어쩌다보니 내가 어른들틈에 끼어서 현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처지?위치? 아니, 그냥 그 자리에 있는 젊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내 일인 듯 간결하고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오늘의 상황을 면장에게 알려주고 몇가지 당부도 아울러 건넸다. 가장 우선은 우리같이 젊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괜찮다. 하지만 독거노인들은 얼른 파악해서 조치를 취해달라였다. 


치매어르신에게 크게 배웠다. 

그 어르신이 아니었으면 면장님앞에서

'전기 좀 빨리 들어오게 힘써주세요, 물도 안나오고 불편해요' 라는 말밖에 할 줄 몰랐을 나였다.



# 11월 28일 새벽 4시 


이 글을 쓰는 새벽. 나는 3시 50분에 일어나 서둘러 마을회관으로 왔다. 

치매어르신이 잘 주무시는지도 걱정되었고 4시부터 새벽독서가 습관이 된 탓이다. 


(여기까지 쓴 후 아래의 글은 전기가 들어온 2024년 11월 28일 오후 2시 40분 이어서 씁니다.)


새벽 4시경, 마을회관에 도착한 나는 커피 한잔부터 타고 노트북을 켜는데 이장님사모님이 오셔서 어르신들 주무시는 방을 열더니

 '그 노인네! 어디 갔어요? 안 보이네!'

하신다.


아... 치매어르신이 없어지셨다.

새벽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온 마을에 비상연락망이 돌았고 아직 컴컴한 시간, 이 눈길에 어르신에게 혹여 변이라도 생기지 않기를 모두가 바라면서 어르신집으로 향했다. 난 길은 모르니 여기 남기로 하고 몇분이 흩어져 찾기로 했다. 어르신댁까지는 걷기에 꽤 먼거리라 했는데...


내 떨리는 심장과 함께 순식간에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6시 30분경, 

어르신을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행히 집에 계셨다고 한다...

순간 내 가슴이 어찌나... 

내 잘못도 아닌데, 내 부모도 아닌데, 내 일도 아닌데, 생판 모르는 남인데

왜 내 가슴이 울었고 왜 내 가슴이 웃는 것인지...

이런 심정은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옳을지...


# 11월 28일 오전 7시 


독서토론이 끝난 오전 7시.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여기서 젊다는 것은 50~60대) 사람들이 한두분씩 모여 작당(?)을 한다. '아~~ 절대 안오신대잖아!', '그럼 네가 이렇게 꼬셔봐~~ 안되면 힘으로라도 업고 나오든지!!' 치매어르신께서 한사코 혼자 계시겠다고 하시지만 일단 여기로 모셔와야 한다. 너무 춥고 혼자서는 챙겨드시지 못한다. 아. '그럼 여태 어떻게 지내셨지?' 궁금해서 여쭸더니 보호해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눈때문에 못오신다고 연락하셨단다. 그럼 무조건 모시고 오는 게 맞다.


오늘도 그래서 여러 독거어르신들이 오셨고 점심식사를 챙겨주시러 또 여러 어르신들이 오셨고 제일 막내인 나는 어제에 이어 설겆이와 서빙을 담당했다. 어제 처음 찾은 마을회관. 둘째날인데도 주방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일이 척척 진행이 됐고 손발도 맞았다.  


잠시 후 청년회총무님이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보일러실에 넣어두라고 숯까지 챙겨서 내게 화로를 건네신다. 전기가 나가면 벌어질 일에 대해 난 완벽히 무지하다. 안다한들 어떻게 조치해야할지도 무지하다. 그런데 경험이란 이렇게 놀랍다. 모르면 당하지만 알면 대비된다. 미리 낯선 나를 위해 베푸는 배려에 난 무엇으로 갚아야 한단 말인가...


정전을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으면 보일러가 터질 수도 있다고, 그 땐 화로에 불을 지펴놓으면 방지할 수 있다고.


# 11월 28일 오후 3시경 


어르신들 식사와

화로로 얻은 배려에 벅차있던... 

1시간전쯤...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다....


어느 누구도 보채지 않고 바로 옆마을, 마을회관부터 마을전체가 정전이 된 그 마을부터 살리고 우리에게 와도 된다고... 그렇게 35여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들.... 모두가 전기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이제 살겠네~~'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여기... 나... 혼자... 조금 더 머물러 이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모두가 돌아가고 나 홀로 남은 오후 3시경.


겨우 35시간...

자연이 인간의 인생을 삐긋거리게 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며칠 전 아랫집 할머니에게 찐빵을 드리고 콩을 얻어오던 그 비닐하우스가 무너졌다.

남편의 급작스런 대장암수술로 올해 수박농사를 짓지 못해 작년 수박들을 잘 저장해두려 비닐하우스 3개동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오늘 아침 비닐하우스도 수박도 모두 망가져 버렸다고... 걸을 힘도 없다고 흐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귤을 입에 자꾸만 넣으시는 어르신...


난 이들을 품에 안았다.

꼭 안았다.

그저 불편했을뿐 아무것도 잃은 게 없는 나는 여기서 힘이 남는 존재였지만

아무 힘도 없는 내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난생처음

폭설에 의한 고립.

전기로 인한 생리적인 불편.

참담함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눈물.

하지만.


평소의 눈보다 3배나 무겁다는 '습설'에 무려 20m가 넘는 낙엽송도 기울어지고 

위로 뻗치던 주목나무의 가지들도 땅으로 꺼질 듯 꼬꾸라졌고 

어떤 나무는 꺾였고 

또 많은 나뭇가지들은 땅으로 떨어졌다. 


모든 생명에겐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삶의 어떤 시점에 오나보다. 


큰 나무는 큰 무게로,

작은 나무는 작은 무게로.

자신의 크기만큼 무게를 짊어져야 하나 보다...


나에게도... 

여기... 

어르신들에게도...


위로, 옆으로 솟았던 나뭇가지들이 땅에 닿을 정도로 눈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낙엽송의 각도가 기울었다. 꺽인 나무들도 곳곳에 보이고.


하지만, 우리는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밥을 지었고

그들을 위해 새벽 꽁꽁 언 마을을 헤집었고

귤로 눈물을 가리려던 어르신의 어깨를 안아드렸고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같이 손보자며 손을 꼭 잡았다.


누구보다 일찍 새벽에 나가 길가의 눈을 치우고

누구보다 늦게까지 남아 힘없는 자를 지켰다.

누구보다 강해지려 서로가 서로를 위했던 시간...


11/28일 오후 4시경 하늘.


# 11월 28일 오후 4시경


기가 들어오고 모두가 웃으며 자신이 감당해야할 무게만큼을 안은채 집으로 돌아간 시간.

글을 쓰다 잠깐 집에 다녀오며 바라본 하늘...


구름사이로 햇살이, 아니,

햇살이 있는 힘껏 구름을 벌려 

땅으로 자신을 내리 꽂는다.

눈은 자신으로 인해 흘린 우리의 눈물에 미안한듯 서둘러 녹아내린다.


각자 감당해야할 무게가 다르겠지만

자신의 무게가 비단 혼자만의 무게가 아님을,

자신만 부당하게 당한 억울한 무게가 아님을,

나무들이 무거운 눈을 떨구며 다시 위로 솟구치듯

우리 자신 역시 지금의 무게를 떨구고 다시 솟구칠 날을 맞이할 것을...

아마..

각자 집으로 돌아간 모든 이들은 지금의 내 맘과 같으리라...


이제 저도.. 이 글을 마무리하며 남은 음식정리, 바닥청소하고...

집으로 갑니다....


집에 오는 길, 길가의 가로등이 이렇게 반가웠던가...


집앞 가로등 

[건율원 ]

https://guhnyulwon.liveklass.com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https://cafe.naver.com/joowonw


[지담연재]

월 5:00a.m. [감정의 반전]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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