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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02. 2024

자신없어요...

본 브런치북은 '나는 나의 장난감이며 나의 인생은 내 임상실험장'이라는 본질에 맞게 나 스스로 지금껏 내가 내려놓지도, 잘 다루지도, 그렇다고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나의 감정들을 파악, 분석, 분류, 연계, 추출, 혼합, 용해를 시도하는 글입니다. 본 브런치북을 통해 현재의 내가 지닌 감정들을 하나하나 풀어보며 신나게 놀아보는 중입니다!


우리는 매우 상냥하면서도 상처받기 쉽고 행복에 쉽게 무너지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도우며 사랑과 감사를 전하면서 지속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이러한 성정을 '인간다운' 삶, '인간'의 정체성으로 규정짓고 그렇게 자신을 이끄는 것이 '착한 사람'이 되어 '좋은 인생'을 사는 것으로 여기며...


'적당한' 인생의 행로에서 혹여 헛발질로 지옥에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불평불만과 짜증, 강박에 근접한 질주 속에서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사회로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여기서 억지로 만들어진 '근육'이 팽창하다 터지고 터진 곳이 다시 터지는 아픔이 두려워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행로에서 벗어날 경우 '자신없어' 한다. 나도 그렇다. 억지로 만들어진 근육은 비슷한 상황의 언저리에서라도 당시의 느낌을 부활시키며 '자신없다'며 멀치감치 떨어지는 자신을 만나게 한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작업은 앞으로 수년이 걸릴 지 모를, 책을 통해 얻은 명제를 바탕으로 나만의 사상을 구축한 책을 집필하는 것이다. '나부터 바로 세우는 이기가 전체를 위한 이타가 된다'는 논리를 하나의 궤로 꿰고 싶은데 여전히 부족한 지식과 논리와 근거, 더 나아가 그 길고 긴 이야기를 용감하게 써낼 감량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에 여전히 나는 '자신없다'라는 말만 물고기처럼 뻐끔거린다. 


자신없다... 는 심정이 가득한 내 속을 

찬찬히... 아주아주... 깊은 바닥까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 속엔... 놀랍게도...

자만...이...

있었다... 


자신이 없는 것인가.

자만한 것은 아닌가.


자신없어 이 이유 저 이유 모두 갖다대고 있지만 타당과 합리가 그리 어설프지 않을텐데..

갖다대는 이유만으로 타당하다고 나는 자만했던 것이다. 


수려한 말발로 청중에게 호소하면 그 눈빛마저 속일 수 있다는 자만,

숨참고 허리를 졸라맸지만 참고 있는 숨 간격조차 들키지 않으리란 자만,

유식한 단어 외워 폼나게 강의하면 바닥난 지식 탄로나지 않으리란 자만,

애교, 아양, 예의, 격식, 도덕의 포장 안에서 움직이면 뒤에 감춘 칼자루 보이지 않을 것이란 자만,

빳빳한 명함에 한줄 더 넣으면 인격까지 한단계 높아질 것이란 자만,


자신없어 행한 이 모든 이면에는

자만이 있다... 


자신없어도 잘 살아낼 수 있다는 자체가 자만아닌가?

자신없어서 이리 머물러도 된다는 자체가 자만아닌가?

자신없으니 '자신없어서'라는 말 뒤에 서도 된다는 자체가 자만아닌가?

그리고 또!

자신있게 행한 모든 것들의 결과가 만족스러워 자신감타령 하는 것인가.....?


자만!

자신만 모르는 치매.

언제 발작할 지 모를 간질(주1).


불치병에 걸린 자신을 그대로 냅둬도 된다는 자만...

아...


자만은 '없는 데 있는 체하는' 허영이다. 자만과 허영, 이 두 단어는 르네상스가 태동되던 14세기 이전까지 '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과도한 자신에의 믿음, 심지어 과대망삭적 자기애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없다'의 이면에 자만과 허영이 감춰진 것을 알아버렸으니 이제 자신없다는 말과 기억과 감정에 숨은 '현실의 나'는 어여 항복하고 그저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자신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겠다.


시험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그 시험을 통과하리라는 것은 자만이며 이는 죄(주2)라는 일침처럼 자신없어 안하고, 못하고, 피해가기보다 그저 그 잘못에 대한 결과는 내 이성과 감정의 역사에 맡기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주어진 배움을 외면하는 것, 결과될 것을 미리 가늠하여 창조의 태동을 미루는 것 자체가 자만임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겠다. 


힘이 없어서 힘든 일을 안해도 된다는 무책임,

돈이 없어서 주는대로 받아도 된다는 비합리,

학벌이 없어서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안이처럼

자신이 없어서 지금 주어진 의무를 극복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조야한 발상은

본연의 자아를 외면하는 정신이며

극복되어야 할 것에 저항하지 않으려는 반항이며

책임져야 할 곳에 자신을 세우는 노력에의 나태일지도 모른다.  



'그대는 지금 장차 그렇게 될 모습처럼 성스럽다. 

그대가 준비되자마자 신께서는 자신을 그대 안에 쏟아붓게 될 것이다(주3).' 


가슴에 이 뜨거운 글귀가 품겨져 있으면 무엇하리. 

'자신없어서' 미루고 시작도 못하고 있다면 말이다.

'장차 그렇게 될 모습'을 원하지 않는 처사일지도, 

'장차 그렇게 될 모습'을 믿지 않는 불신일지도, 

'장차 그렇게 될 모습'을 시도하자마자 스스로 이룰 수 있다는 자만일지도...


몰라서, 힘이 없어서, 생각이 모자라서, 경험이 달라서, 그래서 자신없지만 해보는 것. 영원한 우연성과 신성한 무관심을 믿고 꾸역꾸역, 묵묵히, 의도에 대한 의심없이 가다보면 나도 모르는 어떤 때에 '준비'가 되어 있을테고 '준비되자마자' 내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신이 대기하고 있으니 이제 아양, 애교부리지도 말고 타당없는 이유 꺼내지도 말고 '언제 생길지도 모를 자신감' 기다리지도 말고 

그냥... 

시행착오.를 떠안고 가보는거다. 

자만말고 겸손과 순응의 자세로 말이다.


자신없는 자에게 주어진 시행착오.

이는 지식의 암묵지에서 자신만이 지닌, 그러니까 희소가치를 매우 높여주는 무기이다.

자신없지만 걷는 겸손한 자에게는 자신만의 착오경험이 최고의 가치로 기적을 불러올 것이며

자신없어서 걷지 않는 자만한 자에게는 완전함을 기다리는 어리석음으로 기회를 탕진할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망설이고 숨고 기다리다가 끝이 날지도 모른다...



주1> 그리스철학자열전, 동서문화사 /  헤라클레이토스편.

주2> 호라티우스 보나, 영혼을 인도하는 이에게 주는 글. 생명의 말씀사.

주3> 영원의 철학, 올더스헉슬리, 김영사 


[건율원 ]

https://guhnyulwon.liveklass.com


[지담북살롱]

책, 글, 코칭으로 함께 하는 놀이터,

https://cafe.naver.com/joowonw


[지담연재]

월 5:00a.m. [감정의 반전]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p.s. 호라티우스 보나의 '죄'


일에 태만히 한 것에 대해 애통해하지 않은 죄

자기부인을 배우지 못한 죄와 

죄와 죄의 비참한 결과에 대한 의식과 이해를 부지런히 함양시키지 못한 죄

썩어질 것에 대항하여 싸우지 못한 죄

금욕과 극기를 배우지 못한 죄


자신이 동기가 되어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죄

다른 사람들이 불충하고 태만한 것이 마치 우리 자신의 신실함과 근면함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결점을 지적하고 고쳐주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거나 그저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지낸 죄.

의무를 수행할 때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덜 쓴 죄


자연인의 양심에 비추어볼 때 자신은 그다지 악한 사람은 아니요, 

또 악을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기만한 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파수하지 못한 죄 즉, 마음에 악한 생각이 들어와도 그것을 그대로 묵인하고 자기 반성을 소홀히 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서먹서먹해짐은 물론이요 하나님과도 멀어진 죄.

자기가 알고 있는 자신의 악한 소위들, 특히 자신의 지배적인 성격과 싸워 그것을 몰아내지 못한 죄.

자신의 성향이나 교제에 있어서, 시간과 관련된 유혹 및 다른 특별한 유혹들에 잘 넘어간 죄

다른 사람들의 질투나 질책이 두려워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 한 죄


실제의 우리 자신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한 죄

말로는 죄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단호하게 그 죄를 슬퍼하며 회개하지 못한 죄.

분명히 잘못한 줄 아는 죄들에 대해서조차 자백하는 일을 등한히 여긴 죄.

자신의 죄를 엄숙히 깨달았을 뿐 아니라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겠다고 서약해놓고도 실제로는 전혀 개선하지 않은 죄

죄를 자백한 후에는 자신이 무죄한 것처럼 생각한 죄


자신안에 있는 결점을 고치기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결점들을 찾아내서 비난하기에 급급했던 죄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상태와 사는 방식을 평가한 죄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우리 견해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에 따라 평가한 죄

시험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그 시험을 통과하리라 자만했던 죄


품위있는 사람들이 타락하거나 멸망하는 것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그들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주지 못한 죄

우리의 본성이 타락한 것에 대해 거의, 아니 전혀 애통해하지 않은 죄

일상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열매없는 대화, 즉 바람직하지 못한 대화들을 나눈 죄.

다른 사람들은 영적인 성과를 걷기 시작할 때 우리 손에서는 그것이 종종 죽어간 죄


함께 교제를 나누면 유익이 될만한 사람들과의 교제를 소홀히 한 죄

다른 사람들에게 선행 베풀 기회를 모색하지 않은 죄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충고하거나 훈계 또는 질책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싫어하거나 분한 마음을 품는 한편, 우리한테서 어떤 충고나 훈계도 달게 받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신실하게 충고하지 못한 죄.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대신, 오히려 그들과 거리를 두고 멀리한 죄.


다른 사람들의 결점이나 실책을 보고 염려하고 걱정해 주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우리 자신을 정당화한 죄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대신, 오히려 그 결점에 대해 말하며 비웃은 죄.

가족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정진시키지 못한 죄.

탐심, 세속적인 마음, 이생의 것들을 부당하게 사모한 욕심. 또 소명받은 의무들을 소홀히 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 일에 사로잡혀 산 죄.


자신의 의무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 이것이 양심에 질리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양심을 무마시키는 죄

육신에 빠져 너무 많은 시간을 게으르게 허비하는 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박수갈채 받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며, 그것을 얻으면 기뻐하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불만스러워하는 죄

우리 자신의 가르침이나 다른 사람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 죄

학자의 혀로 아프고 지친 사람에게 꼭 맞는 말을 해주는 법을 몰라 쩔쩔 매는 죄

문답식으로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고 태만히 하는 죄


==> 영혼을 인도하는 이들에게 주는 글, 본 글은 p.66-86의 글로써 필자에 의해 다소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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