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re '엄마의 유산' - 15번째 편지
살다 보면 숱하게 많은 잘못을 저지르게 돼. 인간은 영원히 완전할 수 없거든.
그렇다고 매번 ‘잘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로 일관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오늘은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해
네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
또 하나는 되도록 '잘못'의 양을 줄여야 하는 문제.
이 두 가지에 대해 말해보려 해.
'잘못'은 잘하지 못한 것이지.
그렇다면 우선 잘하는 것을 알면 되겠지.
'잘하는 것'이 뭐지? 옳은(선,善) 것, 도움되는(이로운,利) 것이겠지.
잘하는 것을 제거하면 '잘못'한 것이 선명해지지.
(중략)
네가 법망을 넘어서거나 자연에 해가 되는 친구라고는 결코 여기지 않으니까 우리 그 정도의 삶의 수준에서 얘기하도록 하자.
자! 네가 잘못했을 경우부터 차근차근 얘기해보자!
우선, 잘못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닐거야. 이것은 분명하지. 가령, 네가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했을 경우, 그 거짓이 어디서 의도되었는지 따져볼 때, 거짓을 통해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었을거야. 결국, 얻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얻지 못할까 봐, 즉, '잃기 싫은 마음' 또는 '얻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서 거짓을 말하게 된 것이겠지.
또 이럴 수도 있어.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오류.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해줘야 해'와 같은 잘못된 판단 내지 편견때문에 그를 대하는 적합한 방법으로 '거짓'을 택한거야. 물론, 거짓을 잘했다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의도'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니 '의도'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야. 거짓을 말한 '의도'가 너의 욕구였으니 너 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 몰아갈 필요까지는 없다구. 거짓은 잘못이지만 네가 부정한 의도를 품은 부정한 사람이라는 자책까지는 할 필요가 없단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분명한 한가지를 짚어낼 수 있어. 의도는 선했으나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분명 의도와 방법 사이에 놓인 '판단'에서 '오류'가 생긴 것이 분명해지지. '판단'에 의해서 '선택'이 이뤄지니 '잘못된 선택'을 했던 것이며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거야. 자, 잘못은 판단의 오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연역해서 이해하도록 해.
그러면 '잘못'으로 자책하는 감정보다 오류를 찾는 이성의 정신활동에 너를 더 우선해서 사용할 수 있어. 그렇다면 '오류'가 뭔지 알면 잘못하는 일이 줄어들겠지? '오류'는 네가 부정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식의 결핍' 또는 '결여'에서 비롯되는 것이야. 배움이 부족해 지식의 양이 적거나 잘못 입력되어 지혜의 깊이가 얕고 힘이 약한 것이지. 결과적으로, '잘못'하는 일은 '배움'으로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결론내도 되겠지?
다시 말하면, 계속 배운다면 오류가 줄어들고, 즉, 인식의 결핍과 결여를 메울 수 있고 그 인식의 깊이와 정도만큼 판단은 제대로된 방향성과 힘을 갖게 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실수에서 악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경중의 잘못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야. 아니, 피해간다기보다 너 스스로 안 만들게 되지.
(중략)
네 안의 악마는 항상 정신의 빈공간에서 살고 있거든. 그래서 정신을 양식으로 채울수록 악마가 살 공간은 부족해져. 자, 천사같은 네 안에도 악마는 있어. 항상 둘은 같이 다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품고 있는 것과 같지. 해가 있을 때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네게 어떤 상황이 될 때 천사든 악마든 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 그래서 너 하기에 달려 있어. 태양은 변하지 않지만 네가 움직임으로서 그림자의 크기와 길이를 조절할 수 있듯이 네가 어떻게 무엇을 주입시키느냐에 따라 네 안의 악마의 힘을 조절할 수 있어.
악마에게 먹이를 주려면
정신에 공간을 만들면 되고
천사에게 먹이를 주려면
정신을 배움으로 계속 채워주면 돼.
채운다는 의미는 인식의 결여와 결핍이 메워진다는 의미지.
(중략)
너에게는 좋은 것만 들어가지 않아. 세상엔 분명 악한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은 네가 살아있는 한 어떤 경로로든 네게 침투할 수밖에 없어. 좋은 게 들어가면 좋은 것이 나오고 나쁜 것이 들어가면 나쁜 것이 나와. 네가 아무리 깨끗하게 샤워를 해도 가래나 농, 콧물이 네 안에서 나오지. 이미 네 몸속에 있거나 만들어질 것들이잖아. 나쁘고 더러운 것이 나오면 버리지, 다시 너에게로 넣지 않지?
정신도 마찬가지야. 나쁜 것들은 나쁘게 나오게 되어 있어. 너도 모르게 네 안으로 들어간 나쁜 정신들이 '잘못'으로 나오는 거야. 나와야 할 것이 나온 것이지. 그러니 다시 넣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야! 즉,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늘 조심하기보다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해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네 이성이 움직여 같은 것이 또 나오게 하지 말란 말이지. 네 인생에 '잘못'이라는 것이 개입했다는 것은 '자각'하여 다시 바람직한 것을 넣어주라는 의미야.
(중략)
잘못을 했더라도 '반성'이라는 감정활동에 집중하지 말고 '자각'이라는 정신활동에 집중하렴. 인간의 '감정'이란 유효시간이 굉장히 짧아. 금새 망각하지. 그래서 같은 감정을 매번 느끼면서도 매번 끌어안고 살지. 반성이 잦은 사람은 계속 같은 잘못으로 같은 반성을 반복한단다. 하지만 정신은 달라. 차곡차곡 자신을 키우고 변화시킬 수 있어. 반성하고 자책하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은 감정의 낭비야. 반성하는 이유는 자각을 위해서인데 반성만 하고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저 감정으로 잘못을 덮어버릴 수 있다는 오만, 종교인들이 주로 저지르는 행동없이 회개만 일삼는, 다소 효과없는 감정놀이라고 할 수 있어.
네가 잘못한 것을 아는 순간, 네 앞에는 2개의 문이 등장하지.
하나는 비굴의 문이고 하나는 신망의 문이야.
단어에서 딱 감잡았겠지만
비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핑계들만 투성이로 있어. 이 핑계 저 핑계만 대는, 눈치살피고 요령으로 수작부리는 이들이 이 문으로 들어서.
천하지.
쫄보지.
반면, 신망의 문을 열고 들어가 당당하게 잘못을 인정하면 잘못보다 더 위대한 신뢰의 길로 나아갈 수 있어.
귀하지.
소중하지.
반성은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대상 앞에서 눈치살피다 변명 뒤에 숨어서 자기 스스로 자기를 용서해버리는 이상한 결과를 가져와서 비굴의 문앞에 서 있는 쫄보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해. 니체가 말하길, '양심의 가책은 점잖지 못하다[1]'고 했어. 반성 이면엔 비굴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단다....
(중략)
그런데 혹 누군가는 '왜 세상에는 이리 악한 사람들이 많지? 왜 신은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라며 툴툴거리기도 해. 그런데 이런 발상은 결코 도움되지 않아. 없는 답을 찾아 헤매는 정신의 낭비지.
신이 만든 것은 신이 알지 인간은 알 수 없어. 네가 무언가 필요해서 만들었다면 그 필요목적은 그것을 만든 사람인 너밖에 모르거나 네가 제일 잘 알지. 남이 들쑤신다고 그것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니? 겨우, '이유가 있겠지' 정도로 마무리될걸!
마찬가지야. 신의 목적은 신이 알지, 인간은 몰라, 간혹 이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히 안다고는 할 수 없겠지. 데카르트가 이렇게 말했어. '신의 목적을 알아내려는 것은 주제넘는 짓[2]'이라고. 참 명쾌하지?
그러니, 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의 원인, 즉, 어떤 인식이 결핍되서 이 사태가 일어났는지에 국한해서 사고하는 버릇을 가지렴. 잘못은 뒤로 하고 세상탓, 신탓, 운명탓하는 것은 네 이성을 혼란스럽게 하며 널 데리고 노는 악마의 소행이야. 지금의 잘못을 연역적으로 이해하려는 사고활동으로 정신에 먹이를 주면 악마는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 너를 싫어하게 되고 천사는 너를 대견히 여겨 더 큰 정신, 즉, 전체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시야를 선물할거야.
큰 시야가 없으면 수많은 경우의 수에 단 하나의 퍼즐조각만 들고 덤비는 격이야. 부분적으로 보면 '잘못'일 수 있는 사태가 네 인생 전체를 볼 때 '필요'에 의해 의도된 사태인 경우가 아주 많아. 그러니 멀리서 높이서 바라보는 거대한 시야로 지금의 잘못을 연역하여 사고한다면 앞으로 네가 살아갈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더 많은 퍼즐조각들로 하나씩 맞춰갈 수 있을거야.
(중략)
이제 다른 이가 네게 잘못을 했을 때는 어찌 해야 할지에 대해 얘기해보자.
네 주변에는 크고 작은 실수나 잘못으로 너를 힘들게 또는 피곤하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거야. 이러한 사람을 대할 때도 지금껏 언급한 인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거야. 무시나 비난, 심지어 경멸이라는 감정을 앞세운다면 너에게도 신경질, 짜증과 같은 감정이 올라오게 되거든. 그저 ‘모르는구나.’하며 바라보렴. 대부분이 성격탓으로 이를 무마시키려 하는데 성격이나 성향 역시 습관이 만든 것이며 습관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성격탓이라고 무마시키지 않길 바란다. 그러한 상대가 너와 밀접한 연관이 있거나 네가 가까이 하고자 하는 누군가라면 네가 몸소 보여줌으로써 알려주길 바래. 지시하거나 가르치려 하기보다 그저 보여주면 된단다.
때로는 잘못을 저지른 이가 네게 도움을 청할지 몰라.
이 때에는 2가지만 명심하렴.
우선, 그 잘못된 사태가 그 사람 혼자의 힘으로 해결될 일이라고 판단된다면 돕지 마라. 이는 그가 스스로 길러내야 할 힘을 지켜주기 위함이야. 네가 도와주지 않아 원망을 받더라도 괜찮아. 원망받는 것보다 상대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더 가치롭거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데 돕는다면 오히려 그 힘을 기를 기회를 네가 빼앗은 것이 될 수도 있으니 네 잘못이 쌓인단다. 그러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독려만 해주렴. 이성적으로 찬찬히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을거야.
그리고 만약, 혼자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도와라. 네가 할 수 있다면 네가 돕고 네 역량으로 부족하다면 더 도움되는 사람을 찾아 네가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해서라도 끝까지 도와라. 그리고, 네가 도왔을 경우 그 어떤 것도 바라지 마라. 오로지 너의 선택이었고 네가 쓰여야 할 곳에 쓰인 것이니 이에 대한 보상도 너의 삶 어떤 시점에 네게 올 것이니 도움받은 상대에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길 바란다. (중략) 상대는 상대 인생에서, 너는 네 인생에서 스스로 치른 대가에 보상이 오는 것이니 네 할일 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중략)
우주의 시선으로 지구를 봐봐. 많은 오류들이 있지만 그 오류들도 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 미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거든. 우주가 완전을 향해 가는 길에 오류도, 오류가 아닌 것도 존재하는거야. 이렇게 너를 하나의 우주로서 바라보는 시야를 갖는다면 지금 미운 모습으로 네 인생에 등장한 '잘못'도 결코 쓸데없는 오류가 아니라 쓸모있어서 네게 개입된 '의도된 오류'가 되는 것이지.
'나같은 사람이 잘못할 리가 없잖아!'라면서 잘못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자신이 아는 것이 옳으니 결코 자신의 잘못은 없다는 자만한 사람이지. 또한 잘못을 모르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할 일이 벌어질까봐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에 갇혀 사는 사람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든. 뭐라도 하기 때문에 잘못도 하고 실수도, 실패도 하는 것이거든! 그러니, '나는 잘못이 없어!'라는 사람은 잘못을 모르는 것이 잘못, 시도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삭감시킨 것이 잘못이야.
또한 네게 잘못한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네가 지적하고 벌하려 하지 마라. 길 잃은 양을 네가 벌할 필요는 없단다. 길을 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니 상대의 벌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두고 그저 너는 너 자신을 키우는 것에 더 의미를 두기 바란다. 그렇게 한다면 원망도, 배신감도, 복수도.. 이런 무서운 단어가 네 인생에서 힘을 쓰지 못할거야.
(중략)
자, 5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 누구나 잘못할 수 있어. 그러니 자신을 부정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 것.
둘째, 잘못했을 경우 '잘못'은 인식의 결여나 결핍이 원인이니 '반성'이라는 감정말고 '자각'의 정신활동에 집중하여 '잘못'이라는 미운 모습으로 네 인생에 등장한 녀석의 의도를 파악할 것.
셋째, 가래나 콧물과 같이 네 속에는 오물도 있어. 나쁜 것이 네 밖으로 나오면 다시 주워담지 않듯이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배움에 널 머물게 할 것.
넷째, 누군가가 잘못한 후 네게 도움을 청할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돕는 것은 오히려 상대가 힘을 기를 기회를 뺏는 너의 잘못으로 이어지니 도우면 안된다. 또한, 정말 도와야겠다 판단된다면 끝까지 너의 모든 것으로 도울 것.
다섯째, 네게 누군가가 잘못했을 경우, 잘못한 그 자체가 이미 벌이니 네가 벌주려 하지 마라. 이는 원망, 복수와 같은 무서운 단어가 네 인생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등장한 사건이니 오히려 네게 잘못한 이에게 감사할 것.
사랑이 넘쳐서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맘이 가득하지만 먼저 산 한사람으로서 줄 수 있는 것은 네 정신이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해 바람직한 '이성의 역사'를 써나가도록 권유하는 것밖에 없구나. 엄마는 엄마의 전부를 너에게 주고 싶단다...
[1] 우상의 황혼, 니체, 2015, 아카넷
[2] 방법서설, 데카르트, 1997, 문예출판사
2년전 처음 연재를 시작한 [엄마의 유산]
브런치에서 깊은 사랑을 받았던 저의 편지가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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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엄마작가', '아빠작가'를 기다립니다!
엄마의 유산은 계승이 목적입니다. 저와 함께 '엄마의 유산2'를 이어가실 엄마작가(초보자라도 상관없습니다.)들, '아빠의 유산'을 써주실 아빠작가님들을 기다립니다.[작가에게 제안하기]로 메일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