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일에 시골로 왔으니 이제 거의 3달이 다 되어간다.
시골생활 3개월간 내가 만난 이들 가운데
'어떻게 이런 분이 계시지??????????'하며
날 놀라게 한!!!
내 관념을 완전히 파괴한!!!!
2분을 소개하려 한다.
글이 많이 길어질 듯해 오늘 1분, 다음편에 1분 소개하겠다.
이 분들을 대할 때마다의 상황의 극디테일과 내 마음에 처음 느낀 감정들을 표현하기에
내 글실력으로...
아... 어림도 없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게는 여기 시골로 이사와서 당장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작은 숙제 / 큰 숙제가 하나씩 있었다.
작은 숙제는
나는 차가 없고 우리 동네에는 지하철도 없고 인터넷엔 우리마을 버스노선이 나오지도 않고 터미널에 전화하면 일률적인 답변만 주고.
그래서 버스노선과 배차시간을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는 숙제.
큰 숙제는
우리집 왼쪽의 작은 언덕에 사는 나무들을 벌목해야 하는 숙제다. 일단 키가 너무 크고 우리집쪽으로 기울어진데다 전깃줄과 전봇대까지 감고 있어 위험했다. 게다가 사유지여서 소유주를 찾아 동의를 받아야 했고 그렇게 동의를 받았다 한들 벌목의 비용을 내가 내야 하나? 싶은 의구심까지.
자, 숙제는 크든 작든 일단 해야 한다.
연필을 쥐고 일단 아는 공식으로 대입해서 시작해야 한다.
풀다보면 기억속에 숨어있던 공식도 나올 것이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풀리게 되어 있음을 믿고.
(지금은 알지만 그 때는 몰랐던) 120번 버스를 일단 탔다.
카드를 대자마자 3,270원이 찍혔다.
왜?
1500원 아닌가?
그래서 용감하게! 정말 용기내서 버스기사 뒤의 손잡이를 잡고 선 채 기사님께 여쭸다.
'기사님~ 죄송한데 요금이 정류장마다 다른가요?'
기사님의 설명은... 정말...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논리는 없는데...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상세하고 진심을 다해 말하려 하신다.
'아~~ 그게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는 얼마구요... 그런데 그게 왜 그러냐면.. 우리가 **고속 소속인데 거기서 어쩌구저쩌구... 블라블라...' 이렇게까지 다 얘기해주실 필요는 없는데... 괜히 질문했다는 후회 조금, 미안한 마음 엄청...
'저... 기사님... 하나만 더 여쭤봐도 돼요?'
진짜 궁금한 걸 여쭌 그 순간!!!!
그 분의 표정은 무조건 캡쳐해야 한다. 모두가 봐야 한다!!!!!
진짜 이 표정은... 내 관념을 완전히 박살내는 표정이었다.
나의 예상대로라면 '귀찮은' 표정이어야 했다.
내 관념이 잘못된 것인지, 기사님의 표정이 천연기념물감인지...
이 분의 표정은
'그럼요!! 얼마든지요!!! 난 당신의 질문을 무척이나 기다렸어요!!!! 너~~~무 궁금해요!!!'였다.
헉....
소통이 이런 것이구나. 표정 하나에 내 마음이 사르르~~~, 내 입가에는 스르륵~~ 나도 모르게 안심의 미소가 번지고... 이제 궁금하던 걸 한번에 해결하겠다 싶은 시원함까지!!!!!
달리던 버스를 오른쪽에 멈춰세우셨다.
일어나셨다.
뒤돌아서 버스앞에 서셨다.
그리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리에 앉으세요. 아이고 손님이 서 있으면 내가 불안해서.'가 시작말이었고
'아... 그러니까... 손님이 어디서 타고 어디를 주로 가요?' 오히려 내게 질문하셨고
'아... 그러면... 전 정류장에서... 가만있자... 7시 30분? 아~ 할머니? (버스에 2분의 할머니가 타고 계셨다) 거기서 몇시에 타셨수? (할머니도 아....그러니까... 그게 몇시더라...) 잠깐만... (한참 생각)...'
이게 말이 되나?
버스운행중에 차를 세우고 손님을 앉히고 손님이 궁금해하는 것을 더듬더듬...
어떻게든 답변해주시려 다른 손님과 기억을 맞추고...
혹 누군가는
버스기사가 왜 버스시간도 몰라? 왜 바로 답변을 못해줘? 가다가 맘대로 세운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음... 잘 모르겠다.
지식이란 게... 조금 몰라도, 틀려도 괜찮고
규정이란 게... 그 위에 상위가치를 넘어설 필요까진 없을 것이고...
직업윤리라는 게... 어찌 내규에 따라서만 움직이겠는가...
여하튼,
지식, 규정, 직업윤리와 같은 가치들은 관계를 이어주는 기능일 뿐, 그 다음은 이 모두를 뛰어넘는 인격이다.
인연이란 게 이런 것이지.. 싶을 정도로 항상 내가 120번을 타면 그 기사님이 계셨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난 120번을 기다리는지, 그 기사님을 기다리는지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설렌다. 기사님은 날 잊어버리셨겠지만... 버스를 설레며 기다리다니.ㅎㅎㅎ '안녕하세요!' 큰소리로 인사하며 버스에 오르면 기사님은 아주아주 친근한 시골아저씨마냥 '어~써~~오세요우!!!'하면서 버스에 오르는 모두에게 한결같이 기분좋은 에너지를 나누신다.
뿐만 아니라 정류장마다 오르는 손님들을 챙기신다.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가 타실 땐 꼭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들어 올려주시고 할머니를 자리에 앉게 도우신 다음 운전석에 앉으시고 여러 손님이 탈 때는 '젊은 친구, 뒤에 가서 앉으면 안될까?'하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앞쪽에 앉으시게끔 자리배정도 다시 해주시고 주로 현금을 쓰시는 노인분들이 많은데 10원, 100원짜리까지 꼼꼼하게 두 손에 꼭 쥐어주신다.
뿐만 아니다. 버스에 오르지 않고 버스기사에게 '**가유?' 하고 물으시는 할아버지. 기사님의 대답은 들리지 않는다. 또 '**가유?'. 이렇게 서너차례. 기사님은 또 일어나 할아버지께 가까이 가서 몇 마디 대화나누신 후 할아버지는 타지 않고 기사님만 운전석으로. 아마도 할아버지가 타야할 버스는 이 버스가 아닌 듯하다. 기사님이 할아버지와 대화나누며 손짓 몇번을 한 걸 유추해볼때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면 되는지까지 알려드린 듯하다.
120번은 항상 제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버스정류장에 적힌 시간에 딱 맞춰 오는 경우가 없다.
짧게는 10분, 길게는 30여분을 기다려야 한다.
사실 여기서는 교통체증이 없으니까 늦을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알았다.
제 시간에 올 수 없는 이유를.
하지만, 늦게 온다고 따질 이유도, 불쾌한 심정도 없다.
늦게 올때마다 내 설레임도, 기쁨도, 그리고 내 상상도... 마구마구 커지니까...
'딱 그 자리에 적합한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정말 잘 살아온 삶을 대변하는 주인공이다.
'인격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있다면 이 분이 '따라해도 좋을' 교본으로 수록되어야 할 것이다.
'즐겁게 일하기'를 몸소 보여줄 강사가 필요하다면 이 분이 가장 비싼 강사로 추대되어야 할 것이다.
'몰입'을 연구하는 학자가 연구대상이 필요하다면 이 분이 얼마나 자신의 일에 몰입하며 그 가치를 모든 손님과 나누는지 그 효과성을 검증해야할 것이다.
'워라벨'을 꿈꾼다면 진정한 워라벨이 일과 삶의 통일성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이 분에게 확실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세대간의 갈등'을 고민중이라면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삶이 하나로 응축된 이 버스안을 유심히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인간'을 탐구하는 사상가라면 인품, 인격, 인물... 그가 가진 모든 것, 그러니까 힘, 지식, 도덕성, 성향등 모든 것들의 깊이가 어떻게 응집되어 삶으로 승화되는지 이 분을 통해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을 원하는 모두는 자기자체로서 세상의 잣대를 너머선 어떤 고지위에 스스로를 올린 이 분의 삶에서 책에도 없는 공개된 비밀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관계'나 '소통'을 써내려가는 작가라면 이 분이 손님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그 모든 해답이 담겨 있음을, 하지만 이 분의 언어 너머의 초월된 비언어를 활자로 표기하기는 꽤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정신의 물질화'를 추구하는 나는 '건강한 정신'이 어떤 정신인지 이 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돌아오는 일요일, '이런 사람 없습니다. 2'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