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사치스럽게 살고 있다'라는 제목이 딱 어울려 마치 지난 글에 이어진 글이 된 듯하다.
사치스럽게 살고 싶었던 내가 온갖 사치를 다 누리고 있구나.를 느꼈기 때문이다.
오래전 '사치스럽게 살고 싶다'를 썼을 때 나는
'시간'을 없애고 '자연'에게 구속당하길 원했었다.
그렇게 6개월? 1년?만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몽테뉴처럼, 릴케처럼, 소로우처럼 그렇게 한 시절 보내고 싶은 지성의 사치를,
산도 강도, 하늘도, 땅도, 심지어 잡초까지 오로지 내가 독차지하는 자연의 사치를,
한계없이 읽고 쓰고 먹고 가고 오는, 제약없이 맘대로 갖다써도 되는 시간의 사치를,
누구라도 내 정신과 감정의 즙까지 써버리고 원망남긴 채 떠나도 내 마음에 동요가 없는 감정의 사치를,
나의 정신에 반듯한 습관의 주름이 깊이 패여 애쓰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유로운 정신의 사치를 원한다.
감.히. 원한다.
라고 썼던 날이 있었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1037
그렇게
시간을 없애 무한의 사치를,
보편을 벗어 독창의 사치를,
일상을 버려 하루의 사치를,
구속을 통해 자유의 사치를,
나를 버리고 나로써 사는 자아의 사치를 누리는,
나는 사치스런 여자로 살고 싶다.고.
내게 이 2가지의 사치가 허락된다면
하나의 생각으로 정박해 있는 나의 사상이
바다에서 독립된 하나의 호수로 생성되지 않을까?
소금물이 민물이 되고 민물이 맛좋은 담천수가 되거나 모두에게 귀한광천수가 되지 않을까?라고.
그런데...
지금 난!
맘껏 사치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원하던대로 시골로 와
시간을 없앴고
보편에서 벗어나 나의 사상의 바다를 향한 항해를 시작했고
일상에서 탈출하여 내 뜻대로 하루를 만들고
완벽한 산골의 구속에서 나만의 초고수의 자유를 누리며
인식 속의 나를 내려놓고 자아의 사치를 누리며 산다.
매일매일 이렇게 사치를 부려도 될까?
싶을 정도로 사치의 양과 폭과 다양성이 증가했다.
여기서는 그저 찐빵이나 케익만으로도 맘껏 사치를 부릴 수 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시내나갔을 때 사오는 찐빵이나 케익 정도가전부인데 이 보잘 것 없는것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난 너무 많은 것을 얻는다.
고구마, 무우, 무청, 김치, 총각김치, 가지, 서리태, 내 손바닥보다 더 큰 고구마, 고구마줄기....를 맘껏 주시고
고추는 맘대로 따가라 하시고, 심지어 청계가 갓 낳은 알까지...
마침 자전거타고 지나가던 길에 아랫집 할머니 혼자 김장하시길래 냅다 뛰어가서 돕고는 총각김치를 얼마나 많이 얻었는지~~ 옆 골짜기에 사시는 분은 김치 2포기를, 저~ 아랫집 어르시는 갓 낳은 청계알을, 주황색지붕에 사시는 어르신은 양미리 맛보라고, 밭에서 일하시는 어르신께 인사드렸더니 막 수확중이시던 서리태를 한봉지씩이나...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집앞에 무우 한박스가, 아무튼... 이런 식으로 너무 많이 받는다.
먹고 싶은 것을 넘치도록 얻는 사치!!!!!!
보고 듣는 느끼는 것은 거의 완벽한 사치에 가깝다.
내 눈에서 하늘 사이, 가로막는 건물이 없고
눈만 돌리면 저~어기 먼 산까지, 오른쪽으로는 낙엽송이, 왼쪽으로는 단풍나무가 지천에 널려서 가을엔 울긋불긋, 얼마전 하얀 눈으로 푹~~ 덮힌 대지와 요즘에 아침 해뜰 때 희끗희끗 보이는 땅에 내린 서리, 그리고 강가에 핀 물안개까지...
게다가 여기 심겨진 모든 것들은 명품 백화점의 최고급디퓨저보다 훨씬 고급진 향을 뿜어낸다. 온 마을이얼마전까지 고소한 들깨향으로 가득차 배고픈 들개처럼 밖에만 나가면 침이 질질 흐르곤 했는데 요즘은 숲속 거대한 디퓨저에서 품어져 나오는 고급스럽고 진한 숲향이 추워도 자꾸만 나를 밖으로 불러낸다. 게다가 이 오묘한 숲향은 매순간, 어디서 맡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진짜 고급스럽고 깊은 총천연의 향이다.
사방천지가 대자연이라는 대작가의 작품이다. 여러번 언급했지만 무엇보다 오후 5시부터 펼쳐지는 태양과 하늘의 쇼! 나는 그야말로 어떤 미술경매품에서도 최고가로 낙찰되고도 남을 최고의 그림액자들을 다양한 크기와 디자인으로 집안 곳곳에 걸어놓고 사는 셈이다.
인간이 그려낼 수 없는 신의 손으로 빚어진 작품들...
최고층 펜트하우스에 산들 이보다 멋질까....
거주지와 서재를 잇는 가운데엔 정사각형, 서재엔 좁고 긴, 그리고 서재정면은 통창. 이 다양한 사이즈의 액자에 최고의 작품이 담겨 있다.
갖고 싶은 것을 거의 무제한, 무료로 공급받으니 이 또한 완벽한 사치에 가깝다.
단풍나무, 소나무, 주목나무를 비롯해 길가에 흐드러진 꽃씨와 나물들까지...
주목과 소나무, 단풍나무는 원하는대로 캐서 마당조경을 위해 몇그루 옮겨 심었고 내가 좋아하는 맥문동이랑 설악초 꽃씨를 또 얼마나 많이 마당에 뿌렸는지... 지금은 겨울이라 보이지 않지만 지천에 널린 나물들도 봄이 되면 맘껏 캐서 먹을테다!
아직 풀이랑 잡초도 구분못하는 나지만 몇몇 어르신들이 봄되면 자기가 다 알려주시겠다고.ㅎㅎ
두룹이 길가에 지천이고 달래, 취나물, 엄나무, 당귀, 부추들도 (지금의 나는 모르지만) 우리집 근처에 엄청나게 많다고 하니... 이 모든 먹거리들을 맘껏 양껏, 그것도 완전 유기농으로!!! 언제든 바로바로 섭취가능!!!
최고급 명품 동네에는 VIP들만을 위한 마트가 있다는데 난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온통 유기농먹거리이니!!!
나는 자연이 초대한 VIP다!!
집근처 소나무길에는 맥문동을 비롯한 여러 꽃씨들이 엄청나게 많다(좌) / 집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두릅나무들(우)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하루종일 온집안, 마당까지 쩌렁쩌렁 울리도록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을 수 있는 사치.
천연자연수 사우나, 그것도 단돈 2천원에 즐길 수 있는 말도 안되는 사치!
집 바로 밑의 마을회관에 마련된 고급 안마의자와 헬스기구들을 언제든 맘껏 이용할 수 있는 사치!
다른 소음과 섞이지 않게 하려 이어폰을 낄 필요도, 천연사우나를 가기 위해 차를 타고 나갈 필요도, 안마의자를 살 필요도, 헬스장을 돈주고 등록할 필요도 없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나중에 돈이 많~~~아지고 집이 더 넓~~~~어지면 집안에 사우나시설을 갖추고 안마의자를 꼭 사야지!'하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일단, 내가 사우나를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
안마의자가 너~~~무 갖고 싶었다는 사실.
집 바로 밑에 이 모든 게 구비되어 있다는 사실!
참! 싸다고, 시골사우나라고 얕잡아볼 수준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
완전 최고최고!!!
그저 뭔가에 이끌려 여기로 왔을 뿐인데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사치'라는 단어가 적합할 정도로 무한정 누리고 있다!
적당히. 가 아니라 무한히. 누리고 있다.
그런데 가만...
'사치'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을수도 있겠다.
사치는 내 분수를 너머서 취하는 것인데
뭔가에 이끌려 여기에 왔을 뿐. 이런 것들을 알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왔는데 누린다면
사치가 아니라 내가 이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누릴 자격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바라던, '사치'라 여겼던 많은 것들...
남들처럼 당연하게 살던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곳으로 왔더니...
오로지 자연에게만 구속되는 삶의 사치를 지닌 데다 먹거리, 볼거리, 느끼고 즐길거리들이 너무나 무한하다...
난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
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자연이 내게 이 모든 것들을 제공하면서 명한 숙제는 뭘까...
시간이 내게 이 모든 자유를 허락하면서 어떻게 자신을 사용하라는 걸까...
공간이 내게 이 모든 환경을 들이밀면서 내가 어떻게 움직이길 바라는걸까...
세상이, 온우주가 이렇게 원하는대로 사치부리게 하고서는 내게 어떤 임무를 맡기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