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0일에 시골로 왔으니 이제 3달이 되었다.
시골생활 3개월간 내가 만난 이들 가운데
'어떻게 이런 분이 계시지??????????'하며
날 놀라게 한!!!
내 관념을 완전히 파괴한!!!!
2분을 소개하려 한다.
글이 많이 길어질 듯해 지난 수요일 1분 소개드렸고 오늘 1분 소개한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 분을 대할 때 상황의 극디테일과 내 마음에 처음 느낀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내 글실력으로... 어림도 없다...
그래서, 또!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난 수요일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1]에서 언급했듯 내게는 여기 시골로 이사와서 당장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작은 숙제 / 큰 숙제가 하나씩 있다고 언급했고 오늘 소개할 2번째 주인공은 내게 닥친 큰 숙제를 해결해주신 분이다.
우리집으로 올라오는 길옆은 낮지만 가파른 비탈로 된 언덕이 있다. 이 언덕은 밤나무와 낙엽송이 주로 심겨져 있는데 그 길이가 어림잡아도 20m는 족히 넘어보인다. 그런데 비탈에서 자라다보니 그렇게 키큰 나무가 우리집쪽으로 쏠려 있고 길가의 전깃줄까지 휘감고 있는데다 지난 11.27에 내린 117년만의 폭설로 3~4그루는 뿌리째뽑혀 앞으로 넘어져버렸다.(다행히 우리집 뒷부분이라서 집에 피해는 없었다).
사실, 처음엔 위험하다는 인지조차도 못했었다.
그냥 어디 놀러온 듯 나뭇길이 마냥 좋았던,
시골생활 1도 모르는 바보였다, 난.
하지만,
'노는'것과 '사는'것은 달랐다.
'보기 좋은' 것과 '함께 사는 것'은 달랐다.
'잠깐 들르는 것'과 '오래 머무는 것'은 달랐다.
아니,
달라야 한다.
이렇게 아주 기본되는 명제도 몰랐던 바보가...
삶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소소한 일상이 하나씩 채워져 하나의 거대한 삶이, 내 인생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내게 필요한 것은 집에 해가 들어야 한다는 것,
해를 들이기 위해 길가의 하늘길을 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나도, 길도, 집도. 해를 들여야 하며
게다가 멋지게 우거졌지만 우리집쪽으로 기운 나무들은 여러가지 위험을 예고하기 때문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시대에 대한 강의를 할 때 내가 주로 하는 말,
모르면 당한다. 알면 대비할 수 있고.
이 말이 지금 딱 내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들어본 '위험목'이라는 단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선 우리집마당과 길가를 경계짓는 나무는 나의 소유니까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었지만
언덕비탈의 나무는 소유주를 찾아 동의를 얻어야 했다.
일단 면사무소에 가서 위험목담당자를 만났다.
오늘 소개할 분이다.
이분과의 첫만남은
그냥...
그냥...
공무원이었다.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에 찍어간 사진 몇개를 보여주자...
아...
여기서 감 잡았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대로 이 때 이 분의 표정 역시 캡쳐감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민원받고 접수넣고 기다리세요.'해야 맞다.
그래야 우리나라 공무원이다.
이 분은 내 핸드폰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신다....
그리고는... 바로 인터넷으로 주소를 찍고서 '지적도'를 떼보시더니 소유주부터 찾는다.
나는 옆에서 멍...하게 앉아서 이 분의 행동을 주시했다.
'뭐지? 왜 저렇게 바로 행동으로 돌입하는거지? 공무원이 이렇게 빠르게, 그것도 자기집에 닥친 불운을 서둘러 해결하려는 듯 왜 이러는거지????'
그리고 좌르르~~~~~~ 지적도와 함께 소유주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종이를 프린트기에서 뽑아 내게 보여주며 찬찬히 설명해주신다. 아... 근데... 이 설명하는 말투... 이 말투를 내가 글로 옮길 수가 없다. 말이란 게... 글과 달라서... 목소리톤과 속도, 거기에 실린 감정, 호흡의 강약까지 모두 담고 있어서... 그 분의 말, 아니 표현을 글로 어떻게 옮기지..? 내 글실력이 얼른 늘었으면 좋겠다.ㅠ.ㅠ
하............. 한숨 수시로,
아~~ 아~~ 어쩌지... 어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감탄사 수시로...
아!!!!!!!!! 이렇게 하면 어떨까? 번뜩이는 제안감탄사 수시로...
암튼.
'소유주가 2사람이며 여기 살지 않으니 주소알려주지만 연락처는 개인정보상 알려줄 수 없다. 위험목으로 바로 예산투입되는지 알아보겠다.' 간단한 내용이지만 감탄사와 한.... 참 생각하는 시간이 보태어져 무려 30분을 넘게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로 나오려는 나를 다시 부른다. '아!!! 갑자기 생각났는데요. 저도 도울테니까 한전에 전화해서 전봇대 위험하다고 민원넣으세요. 면사무소도 위험목으로 지정했다 하시고.' 팁도 알려주신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께요!'하고 가려는데 또 '아!! 잠깐만요.'하시더니 '혹시 소유주분 연락처 찾으시면 제게 알려주세요. 직접 통화해 드릴께요.'하신다.
완전 감동.... 찐감동...
내 심장은 감동으로 마구마구 뛰었고
이내 '이게 이렇게 위험한 일인가?' 걱정은 산더미가 되었고
'어떻게 소유주 연락처를 알아내지?' 내 귀찮음은 다시 발동했고.
본 연재글을 통해 언급했듯이 내가 하루종일 앉아있는 서재는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낮이건 밤이건 우리집에 올라오는 차와 사람이 다 보인다. 우리집은 끝집이라 거의 아무도 오지 않고.
그런데 바로 다음날.
못보던 차가 한대 올라오더니 길가에 차를 세우고 누군가가 내린다.
앗!!!!!!!!!!! 그 분이다!!!!!!! (이 기념적인 날이 글이 될 줄 알았으면 사진을 남겼을텐데...)
난 당장 뛰어나가서 '왠 일이세요?'했는데
그 분은 건성으로 고개만 까닥 내게 인사하더니
한~~~~~~~~~~~~~~~참 나무위를 보고
한~~~~~~~~~~~~~~~참 길가와 우리집을 보고
또 한~~~~~~~~~~~~~참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암튼 ...
한~~~~~~~~~~참을 그렇게 혼자 왔다갔다 하시다가 내게 말했다.
"제가 직접 봐야 해서요. 사진도 찍었구요. 지금 12월이 다 되가는 시점이라 예산이 별로 없는데 제가 최대한 있는 예산 다 당겨볼께요...."
이 말을 하는 이 분의 표정과 손짓, 고갯짓은 직접 봐야만 한다.
예산 얘기할 때는 고개를 갸우뚱갸우뚱갸우뚱... 아... 위에서 허락해주겠지? 싶은 심정이 보였고
최대한 해볼께요 라고 말할 때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의지가 보였고
'아... 이... 공무원의 일이라는 게... 나라돈을 쓰는 거라... 제 개인적인 맘과는 달라서.... 블라블라....'라고 말할 땐 '정말.. 주민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데...'정성가득 + 현실적인 딜레마가 보였다.
나는 분명 며칠 전까지 '위험목'이라는 단어도 몰랐었는데
'위험목'의 '위험'이 내 가슴에 들어오는 속도보다
이 분의 정성과 관심과 의지가 내 가슴에 들어오는 속도가 더 빨라서...
사람의 관심과 정성이란 게.. 어떤 위기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위기가 결코 위기로 느껴지지 않게 하는 힘이 있구나... 를 난생 처음 느꼈다... 이 느낌은 처음 느낀 것이라 어떤 단어가 적당할 지 모르겠다. 혹시 지금까지 읽으면서 '과장'이나 '미화'를 의심하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 나처럼 '공무원'에 대한 이미지를 '그다지 좋지 않게'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 분의 말투에서... 일의 진행에서... 나의 감동은 클 수밖에... 없다.
나는 그 분이 시킨대로 소유주를 찾기 위해 그 분께 받은 주소로 사진과 내용을 적고 동의를 구하는 편지를 썼고 우체국에서 부치기 전에 그 분께 다시 '이렇게 썼어요.' 보여줬다. 그 분의 왈. "정...말 죄송한데... 제가 좀 고쳐도 되겠습니까?" 너무 미안해하면서 말씀하신다. 나야 너무 좋은데 말이다. 그러더니 상대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좀 더 형식을 갖춰야겠다면 내용을 살리고 형식을 보태어 다시 편지를 써주셨고 한부는 자기가 보관해놓고 만약에 대비해야겠다며 프린트도 하셨다.
아무튼. 결국 동의서를 받았고 바로 2일 뒤,
"정말 죄송한데... 예산을 겨우겨우 받았는데 턱없이 부족하게 받아서 일부 가지만이라도 자르려구요."하면서 벌목하시는 분들을 보내주셨다. 4분이 오셔서 많이 기울어진 나무는 제거해 주셨지만 예산때문에 고소작업차와 스카이를 동원하지 못해 아쉬운대로 진행해서 미안하다고... 이렇게라도 우선 하고 내년예산에서 꼭 자기가 이 일을 우선적으로 건의해보겠다고... 하셨다.
117년만의 폭설. 35시간의 기록(11.27-28일). 눈이 그치고 전기가 들어오고... 찬찬히 집근처를 돌아본 내게 포착된, 뿌리째 뽑힌 나무들. 나는 다시 가슴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저 나무가 우리집으로 쓰러졌다면, 혹여 누군가가 걸어갈 때 쓰러진다면... 말도 안되는 상상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바로 사진을 찍어 그 분께 전송했다.
이 분이 날 감동시킨 것은 친절하거나 일적으로 디테일해서가 아니다.
공무원과 소통이 된다는 것자체가 '세상에 이런 일이'인 것이다.
공무원이 먼저 자기일처럼 연락을 준다는 자체가 '세상에 이런 일이'인 것이다.
공무원이 그렇게 감탄사가 많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화하는 것이 '세상에 이런 일이'인 것이다.
공무원이 책상앞이 아니라 직접 (내가 부탁도 안했는데) 현장을 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까지 움직인다는 게 '세상에 이런 일이'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한번은 여쭤봤다.
질문이 너무 우습겠지만 진짜 내 마음이 그랬다.
난 너무 신기했으니까.
공무원은
형식에 얽매여야 하고
무표정이어야 하고
단답형으로 말해야 하고
애매한 질문에는 천편일률적인 답변을 하는 자여야 한다.
지금 내 머리속에 경험으로 인식된 공무원은 그래야 맞는 것이다.
그런데 내 질문에 이 분은 '뭐 그런 질문을 해?'라는 표정으로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헛웃음조차 없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는 자리로 돌아간다.
친절이라곤, 웃음이라곤 없다.
그런데...
왜 내 가슴이... 이렇게 따뜻한거지??????????
암튼,
그리고 1주일 뒤, 그 분께 전화가 왔다.
단 한마디, "지금 빨리 오실 수 있으세요?" 전화 뚝!
글쓰다 말고 나는 바로 자전거로 달려갔고
그 분은 종이를 내밀며 "여기 사인해주세요."한다.
이번 폭설로 재난기금이 나왔는데 지금 벌목신청을 하라는 것이다.
재난기금??????
전혀 나는 알지도 못했고 제안도 안했고 독촉은 커녕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 집에 재난은 없었으니까...
그저 내년 예산이 나오면 다시 건의해봐야지. 했을 뿐.
그런데 이 분이 알아서 먼저 챙겨주신 것이다.
덕분에... 덕분에.. 바로 그 주 토요일, 그러니까 12월 7일.
우리집으로 몸을 쭉~~~~~내밀고 있던 나무들은 대다수 사라졌다.......
단 2그루 빼고.
가장 키큰, 전봇대를 위협하는...
스카이가 와야 하는데 이는 예산때문에 내년으로 넘기자고....
11그루를 베기로 했는데 9그루만 우선 하자고...
완전 예상밖이다.
감동은 한 번 느끼고 나면 사라진다.
더 큰 감동만이 이전의 감동을 대신해서 '감동'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명색을 유지한다.
감동은 야박하게도 같은 질량이거나 작아지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꽃한송이의 감동은 꽃 두송이가 되어야 다시 감동이 되는데...
왜 이분은 만날 때마다 감동이 커지지?????????
9그루의 '위험목'들이 제거된 언덕은 미안할 정도로 민둥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곳의 뿌리들은 살아서 다시 싹을 틔울 것이고 내가 이 집에 사는 한, 이 나무들이 지금처럼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마구 키를 키워 잘려지는 운명이 되지 않게 소담하게 키울 것이다. 우리집 나무들처럼 말이다.
이제 하늘길도 열렸고
바닥길도 넓어졌고
해가 드는 시간도 길어졌고
해가 비추는 면적도 넓어졌다.
어떤 시기엔 하는 일마다 꼬이고 엉킬 때가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아니, 글에 미친듯이 매달리고...
내 영혼을 갈아 종이에 쏟아붓기 시작한지 25개월째...
나이 50이 넘어 들어선 '글쓰는 이'라는 자격에 어울리고자 애쓰는 내가 가여웠던지, 릴케가 로뎅을 보며 읊조렸던 그 말,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이 자라날수록 그분에게 미치는 방해물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습니다. 그분을 에워싸고 있는 현실로부터 모든 소리가 차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들이 그분을 보호해 준 것입니다. 그분은 숲속에 사는 것처럼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살았습니다(주). 처럼... 내게도 이런 경험이 선물로 온 것이 아닐까...
비약이라 치치거리겠지만
난 이리 생각하련다.
내 글이 애쓰는 날 보호해주는구나...
내 방해물을 없애도록 이 분을 보낸 것이구나...
내가 더 나은 글을 쓰고, 내 글이 누군가를, 어떤 곳을, 어느 사회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다면 그 분이 얘기하는 '주민들이 편하게 살' 권리에 나도 한몫하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이 어떤 인과고리에 의해 세상에 알려져 그 분이 '공무원의 기준'이 되는 사회가 된다면...
전혀 과장과 미화가 없는, 사실을 그나마 축소축소축소해서 적은 이 글이, 글실력이 모자라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이 글이 어떤 연결고리에 얽혀 그 분의 미래 어떤 지점에 어떤 행운으로 닿는다면...
그렇게 닿은 행복이 그 분의 에너지를 더 높여 지금 내가 느끼는 감동을 더 많은 이들이 누린다면...
그렇다면,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라는 나의 글 제목이
'왜 그런 사람이 없어? 여기도 저기도 다 그래!'라고 비난받아 마땅한 내가 된다면...
방해물이 알아서 비껴가는... 이 행운을 내가 넙죽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벌목한 거대한 나무들, 지름이 족히 2-30cm나 되는 나무들을 이렇게 두고 가셨다.
잔가지들은 모두 치우고 말이다.
시골은 이런 나무들을 아주 귀하게 여기니까 어떻게든 요긴하게 쓰라는 배려다.
아... 이걸로 마당 곳곳에 놓을 통나무의자를 만들고 싶다.
실력이 조금 있다면 길게 반으로 쭉~~ 잘라서 넓은 테이블도 만들고 싶은데......
10월, 처음 면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그 분이 한전에 전화하라고 해서 바로 전화했었다.
한전직원은 '아~10년 넘게 자란 나무가 쓰러지겠습니까? 그리고 전봇대가 0000정도 무게도 견디는데 그 정도로 안쓰러져요!'가 끝이었다.
하지만.... 바로 한달 뒤. 11.27일.
폭설로 옆마을 가*리의 전봇대가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함께 쓰러져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그런데... 화나지 않았다. 당연하게 여겼다.
공무원에 대한 너무나 익숙한 경험때문에....
주>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2년여전 처음 연재를 시작한 [엄마의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