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골에 이사온지 약 50여일.
도시와 여기의 극명한 차이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당연히 보여지는 풍경이 다르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다.
이미 예상한 것외에 지난 50일간 내가 느낀 도시와는 다른 극명한 차이가운데 하나는
'두려움'의 속성과 질이다.
처음엔 시골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도시에서만 살았고 시골에 사는 친척도 없고, 캠핑이나 여행을 좋아해서 시골 여기저기를 다닌 것도, 남들처럼 1달살기라는 걸 해본적도 없는데... 그렇게 '시골살기'는 내게 허황, 허영, 허상같은 꿈이었지만
니체(주1)가 알려준대로 저 너머 광대한 허무가 있을지라도 '아마도'에 올라타는 심정으로 무작정 이 곳으로 나는 나를 옮겼다. 지방에서 서울로의 이주가 2차원적 평면이주라면 50년을 살아왔던 환경의 편리함을 뒤로 하고 산골짜기로의 이주는 3차원적 입체이주라 여긴다. 마치 태초에 나무위에서 살던 인간이 나무아래로 내려온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멧돼지.
우리집은 양평군 **면 **리의 골짜기에 자리잡은 끝집이다. 그러니까 집 뒤로는 산이다. 마을주민들이 모두 이리로 멧돼지가 내려온다고... 그 말을 들은 뒤부터 이상한 소리만 들리면 '멧돼지?'하며 움츠러 들었다. 부엌쪽으로 난 테라스에서는 가끔 풀숲에서 뭔가 휘젓는 소리가 난다. 멧돼지거나 고라니라고 하는데... 이제 안 두렵다. 그냥 같이 사는거지 뭐. 싶어서.
이사와서 처음엔 얼마나 바짝 쫄았는지 현관을 지나 산쪽으로는 한달이 지나도록 한번도 걸음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간다.
얼마전 폭설 후 날이 따뜻해지면서 집 전체를 덮은 안개.(난 구름이라고 믿는다.ㅎㅎ)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에 빠져 멧돼지때문에 한번도 걸음하지 않은 그 곳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내 발자국소리보다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릴 정도로 분위기에 심취했었는데 마치 저~~어기 산위에서 길고 흰 수염을 바람에 날리며 지팡이든 도사님이 구름타고 내려올 것도 같고, 저~어기 끝에서 '그토록 바라는 미래의 나, 영혼의 나'가 반갑게 날 안아줄 것도 같아서... 영화속 주인공처럼 그 몽환적인 구름 안에서 얼마나 한참을 뱅뱅 돌며 깊게 깊게 숨을 들이쉬었는지....
또 지금 날 두렵게 하는 것은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추위'에 대한 경고인데,
날씨때문에 두려웠다가 날씨때문에 신비로웠다가 날씨때문에 하루종일 나의 내면과 놀수도 있는, 시골에서 맞이한 첫눈(11/27)이 폭설과 정전으로 낭패와 함께 커다란 배움을 주었는데 곧이어 몽환적인 신비로움이라는 영화속에나 느끼는 난생 처음의 감정까지 내게 선물했다.
도시에 살면서는 '이유없는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다. 집밖만 나가도 사람들이 많으니 시각과 속도에 제 아무리 둔감하려 해도 전해지는 '상대적인' 그것들이 날 타격하는 반면 여기는 '절대적인'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다. 정체가 분명하다. 멧돼지. 낭떠러지, 어둠, 추위. 기름보일러값, 수도가 어는 것, 뱀, 불쑥불쑥 말거는 사람들(처음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도시에서의 두려움과 불안이 상대적, 지속적, 무정체성이라면 여기서의 그것은 절대적, 일시적, 유정체성이기에 금새 익숙해지고 두렵지 않게 되었다. 받아들여야 하거나 싫으면 떠나거나니까.
결국, 여기서는 두려움과 불안이 없다? 적어졌다? 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오늘 새벽...(12/7)...
지금까지 두려움의 총량을 이~만큼 지니고 산 내가 여기 와서 그것들이 적어지거나 없어졌다면...
비어있지는 않을텐데 혹여 다른 불안과 두려움이 등장하는 걸까?
아니면 불안과 두려움말고 다른 감정들이 채워진 것일까?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불안과 두려움의 총량을 이미 많이 써버렸으니 조금만 두렵고 불안한 것일까?
오늘 새벽... 그러니까 지금 내 심정을 거침없이 리얼하게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즉흥적으로 내 내면에 무엇이 얼마만큼 함유되어 있는지를 꺼내봤다.
두려움과 불안의 질이 달라졌다.
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정량만큼 저변에 두고 살아야 하는 두려움과 불안. 제 아무리 포장을 해도 그 성질이 워낙 독해서 전신에 독을 서서히 퍼뜨리는 녀석인데 지금 내 안의 그것은 질적으로 화학변화를 일으킨 것을 알 수 있었다.
낯선 시골생활, 낯선 사람들의 느닷없는 방문, 멧돼지와 뱀, 추위로 인한 수도의 결빙, 칡흙같은 어둠으로 인한 저녁의 소멸, 집집마다 숟가락 몇개인지까지 알려드는 속성.... 이것들이 지금까지의 시골생활의 두려움이었다면 지금 내 안에서 울컥울컥하는, 눈물이 쏟아질 듯 날 두렵게 하는 정체는...
'시골에 온 이유대로 살고 있는가!'
'여기까지 와서 이루려는 그것이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가!'
'내가 여기로 오면서 손에서 내려놓은, 잃기로 작정한 많은 것들에 대한 미안함만큼 하루를 가치있게 쓰는가!'
나도 소로우(주2)와 같은 심정으로 이 곳에 왔다.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만을 마주하면서 삶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깨닫고 싶어서,
그렇게 나 역시 진정한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 나의 두려움은 이러한 나의 의도와 의지에 맞게 하루하루의 의미를 채워나가고 있는가.라는 자문에 '아니면 안되는데...'에서 오는 두려움인 것이다.
두려움이 화학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외적인 두려움이 내적인 두려움으로,
현실적 두려움이 미래의 두려움으로,
정체없던 두려움이 명철한 두려움으로...
내 심장이 또 진동하나보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니...
자발적 고립과 은둔을 택한 이 곳에서의 외출은 얼마전부터 드나들기 시작한 마을회관, 동네산책, 매주 일요일 성당과 도서관, 10일에 한 번 장날 장보러 가는 것외에는 없다. 꼭 필요한 외출밖에 없으니 평균 하루 10시간 이상을 책상앞에 앉아 있는 나에 대해 스스로가 열심히, 제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질적으로 더 깊이있고 고귀한 길로 나의 글이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에 간과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는 나, 결국, 외부에서, 낯선 환경에서 오는 두려움이 사라진 공간은 내면의 갈구에 대해 왜 충분히 응답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질타,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데 라는 미지의 두려움으로 진화된 것이다.
또 한편으론 이 두려움의 전이와 진화가 '내가 시골까지 온 이유'에 타당한 증명을 해내야 하는 의지로의 길을 내고 있는 것도 알겠다.
이제 겨울이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다는 이 곳에서 나는 여기 동식물들과 함께 겨울잠에 들어가기로 한지 1주일이 지났다. 식물들은 추운 겨울 에너지를 뿌리와 기둥에 집중하기 위해 죄다 잎을 떨구거나 땅위로 솟은 자신을 고사시켰고 이사오자마자 한참을 나와 재미지게 놀았던 개구리, 다람쥐도 땅속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야 이들처럼 변온동물은 아니지만 잠.이라는 것이 단지 눈을 감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진작에 알기에, 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행위만은 아니란 것도 진작에 알기에 자연의 시간에 발맞추어 나만의 겨울잠을 자기로 한 것이다.
내게 없던 것이 내게서 나오게 하려면,
지금의 힘으로 이만큼인데 저어기까지 가기 위해 저만큼의 힘이 필요하다면,
니체의 '아마도'의 심정으로 그 곳까지 가보려 용기를 품은 자라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니까에.
기꺼이가 아니라 마땅히에 이미 순응한 자라면...
화학변화의 시간인 겨울잠은 내게 본능적인 순응일뿐 특별함도 아닌 것이다. 마치 미카엘이 자면서 꾸는 꿈에서 어떤 힘이 작용해 대신 결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 그렇게 꿈이 데려다주는 곳으로 흘러가기만 하면(주3) 되는 내가 되니 오히려 더 편할지도, 수월하고 효율적이고 빠를지도 모르겠다.
이번 장날에 가면 겨울내 먹을거리들을 장만해두려 한다. 아무래도 10일에 한번 장보러 나갈 수도 없을테고 길이 얼면 나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자전거를 타지도 못할테니 나는 오히려 감사히도 겨울로부터 강제된 구속을 얻어 날 더 책상에 앉혀둘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12, 1, 2월이 지나... 숫자와 상관없이 하늘로부터의 따뜻한 기운과 땅으로부터의 새로운 생명이 솟구칠 때까지, 긴 겨울잠을 끝낸 동식물과 함께 나 역시 힘찬 기지개를 펴고 새로운 봄을 당.당.하고 건.방.지고 자.신.있게 맞이하고 싶다. 같은 포유류인 곰은 겨울잠을 자는 동안 새끼를 낳는다. 같은 종인 나도 지금 잉태된 씨앗을 배양시키고 순산해야겠다.
긴 겨울잠...
화학변화는 새로운 창조로 이어질 것이다.
낡은 정신에서 새로운 융합이 이뤄질 수 없고
낡은 나이에서 새로운 지혜가 솟을 수 없고
낡은 육체에서 새로운 힘이 생성될 수 없고
낡은 힘에서 새로운 기운이 용솟을 수 없고
낡은 나에게서 새로운 창조가 생겨날 수 없으니
나의 겨울잠은 낡은 나를 본격적으로 진화시켜 새로움을 창출시킬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추운 겨울...
주1>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주2> 헨리데이빗소로우,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 오래된 미래
주3> 아모스오즈, 나의 미카엘,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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