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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04. 2024

-생과 사-
오늘을 '그토록 바라던 그 날'처럼

지난 27-28일 117년만의 폭설로 인한 정전.

나에게 안부를 묻는 이들이 많지만 난 한결같이 말한다. '잃은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은 게 너무 커서 마음이 무겁다...'고.


이에 대해서는 지난 글 [117년만의 폭설, 정전. 35시간의 기록]에서 썼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지금의 무거운 마음은 

내가 정말 소중한 것들을 모르고 살았구나,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며 모르는 양만큼 나의 힘이 약했구나... 에 대한 처절한 현실자각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우리네 인생에 줄줄이 대기중일텐데, 

그래서 많은 이들이 희망을 품기보다 불안을 감추며 준비하며 사는 것일텐데 

나도 그러한가에 대한 자문은 있으나 자답이 없는 모호한 경계를 대변하는 마음일테다.


지난 28일 아침에 바라본 우리 오른쪽의 낙엽송으로 빽빽한 작은 산.

20m가 족히 넘는 낙엽송들이 일제히 무거운 눈을 버티려 등을 굽히고 있는 것이다!

가볍게 '아~ 너무 예쁘다'에서 시작된 내 시선이 민망할 정도로 내 심장에 강한 타격을 입혔던 그 장면.


바로 서 있던 나무들의 각도가 다음 날 이른 아침 모두 기울어져 있다.


모든 생명에겐 버텨내야 할 고통과 시련의 무게가 있다.

제대로 서 있지 않으면 꺾인다.

뿌리가 튼실하지 않으면 뽑힌다.

줄기도 가지의 균형도 조화롭지 않으면 부러진다.


인간삶의 여러 범주, 가령 경제적, 건강적, 환경적, 인격적, 정서적, 정신적 범주.

어떤 한 부분이라도 지나치게 나약하면 전체가 무너진다. 

나약한 한 부분으로 인해 대립된 다른 범주는 지나치게 비대하기 때문이다. 

보편, 평범에서는 모른다. 

블랙스완(참고 : 나는 칠면조인가?)인생의 곳곳에서 출몰할테고 때서야 버텨낼 지, 가지정도 부러지고 말지, 꺾여버릴지, 아니면 뿌리째 뽑혀 생을 마감할지 결론난다. 


이번 폭설.

그렇게 당당하게 서 있던 나무들이 무거운 눈의 무게를 버티다 버티다... 등을, 허리를, 팔을 아래로아래로... 결국 땅에 닿으면서도 끝까지 자기를 꺾지 않고 지켜내는 것을 한참을.... 그렇게... 뭔가 한대 된통 얻어맞은 듯... 한참을... 서서 바라봤다. 


왜 나무의 기울어진 각도에 내 감정의 각도계도 덩달아 움직였는지...

아마... 내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징징대고 피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나뭇가지들은 땅으로.. 땅으로.. 결국 땅에 닿아버렸지만 결코 꺾이지도 뽑히지도 않았다.


나무들에게 이번 습설은 블랙스완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도 그럴 것이다.


눈이 그친 어제(11/30일)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뿌리째 뽑혀 생명을 잃은 녀석도

허리가 두동강난 녀석도

한쪽 팔을 잃은 녀석도

그저 손가락정도 다친 녀석도.


나무의 굵기나 키가 기준이 아니었다. 

뿌리가 약한 녀석들은 뽑혔고

가지끼리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녀석들은 잘렸고

옆나무에 의존하며 기생했던 녀석들은 옆나무대신 부러졌고

혼자 해를 받으며 큰 키로 자신만 키웠던 녀석은 물귀신처럼 아래의 다른 나무까지 부러뜨리며 뽑혔고

분명 똑같이 서 있었는데 왜 혼자만 뿌리째 뽑혔는지 영문을 알 수 없이 뽑혀버린 나무도 있었고

 

자전거로 달리며 맥문동씨앗을 잔뜩 주워왔던 소나무길의 소나무들도... 저렇게....



얼마나 버티느냐... 도 중요하겠지만

얼마나 그동안 면역을 키우며 자신의 생에 감당할 모든 부분을 균형있게 키워왔는지가 

블랙스완에서는 생과 사를 결정한다.


가늘지만 살아난 녀석, 굵지만 부러진 녀석.

높은 키때문에 뿌리째 뽑힌 녀석, 낮은 키때문에 제대로 버틴 녀석.

더 많은 눈이 쌓였지만 끝까지 모든 가지를 지켜낸 녀석, 상대적으로 눈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모든 가지가 잘린 녀석.

자기 혼자 쓰러지면 될텐데 옆의 나무, 길가까지 피해를 주며 생을 마감한 녀석... 그리고...

크고 굵은 자신이 많은 눈을 등에 짊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듯 버티며 아래 키작은 나무들을 지켜낸 녀석까지...


우리네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우리네 미래가 이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과연...

나는...

준비되어 있는지...

지켜낼 수 있는지...

지켜줄 수 있는지...


이 나무들의 꼿꼿함과 처참함의 대비를 통해

나는 나를, 그리고 떠오르는 모든 상념들을 품기에 작은 나라서 내 마음이 무거운가보다.

무겁다는 것은 내가 그 무게보다 힘이 적다는 것이니...

작은 것이 큰 것을 품으려면 무거운 게 당연하지...

나의 무거움은...

고통에 대한 비겁한 무거움이 아니라

내가 힘이 없고 약하다는 현실자각의 무거움이었다.


아... 작은 나를 알았다.

현실을 자각했다는 것은 알게 된 것이니 그만큼 무게가 덜아져야 옳은데

잠깐 또 '그래도 무거운데...'라고 징징대는 꼴불견이 됐다.


나를 키워내야 할 때임을 더 절실히 느낀다.

항상 내 이상은 온건히 버티고 있는지 내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할 것이며 

마치 오늘이 '그토록 바라던 그 날'인 것처럼 지금을 살아야 할 것이다.


어제(11/30).

잘 버텨낸 키큰 낙엽송들은 다시 꼿꼿한 자세로 당당하게 허리를 폈다!

그 위로...

굶주린 매 한마리가 유유히 날아다닌다...

꼿꼿한 나무도, 먹이를 찾는 매도

지금이, 오늘이 '그토록 바라던 그 날'인 것처럼.


시골생활은 

보이는 모든 것이 나의 교과서이며

발길 닿는 모든 곳이 나의 교실이며

만나는 모든 생명이 나의 스승이다...



[건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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