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같은 인간이 또 있을까?
어쩌면 하나라서 다행인,
어쩌면 하나쯤 있어도 괜찮은,
그런 인간.이 내가 아닐까 싶다.
마치 야누스처럼 선명하게 다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인간.
마치 아르고스(주1)처럼 백개의 눈으로 사물을 감시하는 인간.
한쪽에는 절대자에 대한 아가페적인 사랑을 품고
다른 한쪽에는 '지각있게' 냉철한 세속적인 검열의 사랑을 품고
한쪽에는 개구쟁이처럼 쾌활하고 아무 걱정없는 웃음이 만연하고
다른 한쪽에는 어쩔 수 없이 안고 살아가는 숙명같은 우수와 고독이 자리하고
한쪽에는 곰처럼 무디고 더뎌 제 아무리 찔러대도 꿈쩍않고
다른 한쪽에는 잠시도 쉬지 않는 영혼이 찔러대는 천만가지 섬세함에 매우 활발한
하나라서 다행인지,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은지...
이런 나라서
새해라든지 생일이나 기념일같은 날들이 내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그냥 그렇게 명명되어 있을뿐, 하루하루가 그날이 그날일뿐, 내게 어떤 자극이 없다.
하나도 들뜨지 않으니 당연히 특별한 이벤트 역시 내겐 아무런 소용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에겐...
2019년 2월 19일.
새벽독서를 시작한 날이다. 새벽에 일어날 생각도, 게다가 새벽에 책을 읽은 적도 없는 내가 이런 기이한(당시 내겐 기이한) 발상을 실천으로 과감하게 옮긴 날. 이 날부터 지금까지 6년여간 새벽 4시 독서를 이어가고 있다. [새벽독서는 내게 혁명이다.]
2022년 9월 18일.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날. 우연히 브런치를, 내가 브런치작가가 된 것을 알고부터 바로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결단하고 지금까지 26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브런치성장기록일지]
2024년 9월 20일.
준비도, 계획도, 이유도 모른 채 뭔가에 홀려서 여기 시골, 골짜기로 터를 옮겼다. 그리고 나의 일상은 책과 글, 사색으로 단순하게 도배되고 있다. [나는 시골로 갑니다.]
내겐
이 날이 기념일이고
이 날이 생일이고
이 날이 나만의 크리스마스다!
기념일이라면 기념될만한 역사여야 할 것이고 생일이라면 탄생이 의미를 지녀야할 것이며 크리스마스라면 (종교적 해석을 제외하고) 기다려지고 행복하고 기뻐야 할 것이다. 3날에 공통적으로 9라는 숫자가 있으니... 암튼 나의 9들은 미친듯이 '읽어야 할 책을 읽어나간', '매일 나의 정신을 쏟아낸 글을 써낸', 그렇게 '영혼이 이끄는 길'로 과감했기에 내 정신과 이성의 역사가 진화를 시작한 날이니 기념일이라 불리울만하고 이를 위해 내 몸을 잘 이용하고 있으니 탄생의 의미가 다분하고 이런 이유로 글과 책과 사유의 일상이 내게 주어졌으니 매일이 내겐 크리스마스인 것이다.
나를 몇달간 봐온 분들은 어김없이 내게 묻는다.(길게 봐온 분들은 묻지 않는다.)
"왜 그렇게 치열하게 사세요?"
"왜 스스로를 구속하세요?"
"너무 빡빡하게 살면 건강해쳐요."
"좀 즐기면서 사시면 좋겠어요."
"꿈은 현실과 달라요. 현실을 외면하지 마세요."
"그냥 교수하면 될텐데 왜 그렇게 사세요?"등
아니다.
그들은 나를 너무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다.
나는 치열한 게 아니라 날 장난감삼아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날 임상삼은 탐구에 빠져 있는 것이다.
나는 자유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의 자유를 맘껏 누리는 것이다.
나는 빡빡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최대한 즙까지 짜내어 엑기스를 추출중인 것이다.
나는 꿈만 꾸는 허상가가 아니라 꿈이 나를 선택해준 감사에 내게 시.행.착.오.를 허락한 것이다.
나는 바보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바보처럼 보여도 좋을만큼 내게, 내 꿈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 관심없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관심갖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나는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날 즐거이 가지고 놀도록 날 제거한 것이다.
나는 내 재능을 멈춘 것이 아니라 더 위대한 꿈을 위해 지금껏 내가 만든 재능들을 연결지어 하나의 결과로 데려가는 중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찰나의 시간조차
나의 정신은 마치 컴파스처럼 중심축을 당당히, 단단히 고정하고 넓고 둥근 고리를 그리며
나의 행동은 정신의 충복이 되어 그대로 명을 수행하고
이런 정신과 행동의 연합에 나의 영혼은 나를 더 자극하려 우주와 나 사이를 쉴 새없이 교신한다.
표피적으로만 보면 난 아주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는 내가 상투적인 표면에서 점점 멀어져 내 속 깊숙한 잠입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보편에서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남들과는 다소 다른 선택을 한다고,
'이상(異常)'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이상(理想)'을 모르는 자의 안타까운 시력이라 감히 말해야겠다.
거죽에 신경쓸 겨를이 없고 타인의 시선에도 무관심할 힘이
내 내면에서 단단하게 굳혀지고 있는 것은 시력(視力)이 아니라 지력(智力)으로만 보이니까.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형상이다.
내가 이상하게 보인다면 이는 드디어! 내가 '남들처럼', '남들 눈에'의 저항에 성공한 것이며!
내가 특이하게 보인다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고르곤(주2)이 드디어 내게 항복한 것이며!
내가 이로써 나만의 특수성으로 향하고 있다는 아주, 대단히, 격렬하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정해진 것들이 낯설어지거나 이미 익숙해진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어느 정도 독립적인 사람입니다. (중략)
'우리'에서 혼자만 벗어나 '이탈'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변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중략)
이때의 백지 상태란 익숙한 논리나 문법 혹은 이미 배워서 가지고 있던 지식의 패쇄적 지배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독한 시선만이 남은 상태일 것입니다.
배움을 통해 얻었던 내용에 구속되지 않고 오히려 해방되어 마치 배우려고 덤비던 호기심 가득한 원초적 심리상태와 같습니다. 이때를 '덕'이 등장한 상태라고 할 수 있고, '욕망'이 등장한 상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내용도 자기를 구속하지 못하고 온전히 자신으로만 되어 있는 상태, 즉 독립적 주체로, (중략) 성숙한 직관의 소유자가 되는 겁니다(주3).
자, 이제 시작이다!
그러니,
이렇게!
주1> 아르고스 :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백개의 눈을 가진 거인.
주2> 고르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이 괴물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돌로 변했다.
주3>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