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요즘 걱정이 하나 생겼어.
아랫집 토시랑 치즈, 모루(주1)있잖아.
얘네들이 2~3주 전부터 부쩍 엄마를 쫒아다니고
엄마가 지나갈 때마다 계속 엄마를 따라와.
치즈는 엄마가 걷지도 못하게 다리 사이로 왔다갔다 하다가 벌러덩 신발위에 들어눕기도 하고
토시랑 모루는 엄마랑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해.
뒤에 졸졸 따라오다가 엄마가 뒤돌아서면 얼음! 한다니까!
어느 정도로 따라 다니는지 엄마가 보여줬지?
그 전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거든.
고양이가 원래 사람을 보면 도망치잖아.
어느 날부터 갑자기 얘들이 이러는 게 처음엔 너무 귀엽고 신기했거든.
그런데 계속 엄마만 보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졸졸 따라오는거야.
그러다가 엄마가 현관문을 닫으려 하면 저렇게 방충망 밖에서 자기도 데려가라고. 아니면 얼른 다시 나오라고. 그러다가 엄마가 방에 앉아 있으면 길은 어떻게 알았는지 방에서 보이는 창밖에서 저렇게 또 엄마가 나오길 기다리고. 또 어디 좀 가려고 자전거를 타려면 자전거를 가로막고는 저렇게 뻐팅기고 있다!
음...
하도 이상해서 아래층 어르신에게 여쭤봤어.
요 녀석들은 아래층 어르신이 마당에서 밥을 늘 주니까 그 마당을 자기 집삼아 사는 녀석들이거든. 사실 길고양이지만 아래집어르신 마당냥이인 셈이지. 그래서 어르신에게 '얘네들이 계속 저를 따라오고 제 창밖에서 저한테 자꾸만 뭔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르신 말씀이...ㅠ.ㅠ
음...
엄마는 좀 놀랐어.
얘기인 즉슨,
며느리가 출산을 해서 1월에 며칠 머무르러 온대.
그런데 며느리가 고양이를 너무나 싫어한다고 녀석들 밥을 주지 않고 쫒아내기로 했다더라구.
물론, 길고양이니까 밥을 주고 안 주고는 선택이지.
당연히 첫 손주의 첫방문이니까 그 마음도 십분 이해도 되고.
시시비비는 따질 문제도 아니고 각자의 가치관대로 선택하는 것이지.
엄마가 하려는 얘기는 어르신의 얘기가 아니라
치즈, 토시, 모루에 대한 얘기야.
음...
본능을 상실한 토시, 치즈, 모루.
본능을 상실하니 생존력이 없지.
동물의 기본인 스스로 생존하지 못하는 생명.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생명.
특히 모루는 아직 아가야.
태어나서부터 사료에 길들여졌어.
토시와 치즈도 사료에 길들여졌고.
여기 시골의 많은 길고양이들은 쥐도, 뱀도, 뭣도 다 잡아먹으면서 본능적인 사냥꾼 기질을 발휘하면서 영역싸움을 하며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 하지만 얘네 3녀석은 그렇지 못했어. 어르신 집마당이 자기 터전이었으니 영역싸움을 할 필요도 없었고 맛있는 사료까지 늘 넘치니 사냥할 이유도 없었지.
본능을 잃어버린 생명에게
존재하던 환경의 외면이나 거부는
무서운 재앙이야.
얘네 3은 길고양이로서 영역을 개척하고 먹이를 직접 사냥해서 생존해야 해.
그런데 모루는 태어나자마자 본능이 아닌, 의존으로 삶을 시작했고
토시와 치즈도 엄마가 이사온 1년전부터 저렇게 안전한 곳에서 늘 준비된 사료를 먹으며 살았으니 어쩌면 본능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어.
아이야, 여기서 나심탈레브의 칠면조(주2)가 떠오르지 않니?
사육사가 주는 달콤한 사료와 안정된 공간에 길들여져 사랑받던 칠면조는 어느 날 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주인이 다가오자 행복에 겨워 넙죽 안겨버리지. 오늘은 또 얼마나 맛있는 사료를 줄까. 하면서. 하지만 그 날은 추수감사절이었어. 나심탈레브는 칠면조를 현대 직장인에 비유했지.
길들여진다는 것은 의존력이 강해진다는 것이겠지?
의존력이 강해지는 것은 자체동력은 소실된다는 것이겠지?
자체동력의 소실은 자체생명력의 강도가 약해진다는 의미겠지?
자체생명력이 약해지면 삶의 위기가 재앙일 수도 있겠다. 그치?
직장에 길들여지지 마라.
너의 창의성은 점점 가치를 잃고 심지어 소용없어질지도 몰라.
월급에 길들여지지 마라.
너의 무한한 잠재력 대신 한정된, 안정된 소득에 너의 삶이 짜맞춰진단다.
만족에 길들여지지 마라.
불만족한 것에서 가능성은 싹튼단다.
편리에 길들여지지 마라.
너의 감각이 점점 둔해지고 감각의 둔화는 감정의 약화로 이어진단다.
저축에 길들여지지 마라.
금리인상은 결코 물가상승을 쫒아가지 못하니 넌 서서히 더 가난으로 삶이 굴러간단다.
시선에 길들여지지 마라.
너만이 지닌 내면의 시력이 점점 퇴화되어 결국 관점은 모호해지고 통찰은 무뎌진단다.
평가에 길들여지지 마라.
세상 그 무엇에 평가당하다가 너 스스로 세운 기준은 무너진단다.
공부에 길들여지지 마라.
지배계급과 소수의 노예를 양산하는 교육에 너는 지배당할지도 모른단다.
물론, 이 모든 '길들여지지 말아야 할 것'들 이면에도 길들여졌기에 이로운 점도 있어. 가령, 직장생활에 길들여져서 안정과 평안을 누리고 새로운 욕구를 생성시키지. 자, 그러니까. 길들여질 때쯤 넌 지난온 뒤를 돌아보며 길들여진, 그래서 너도 모르게 널 중독시킨 그것으로 잃었거나 잊은 것은 없는지 한번은 널 멈춰세워 보렴.
길들여지느라 보낸 시간 속에는 보지 못했고 잡지 못했던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분명 있을거야.
길들여진 곳에서 너를 끄집어내려면
너만의 '본능'이 네 바닥에 제대로 살아 있어야 해.
본능이 없으면 주인의 외면에 또 다시 의존할 곳을 향해 자신을 비벼대는 치즈와 토시, 모루와 다를 게 뭐야? 그 녀석들은 고양이의 삶이니 그래도 괜찮아. 또 엄마같은 어른이 옆에 있으니 괜찮아. 하지만 넌 고양이가 아니잖아. 사람이잖아.
길들여지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은
어쩌면 다시 새로운 길로 너를 들이기 위한 원인이었을거야.
길들여졌음을 느꼈을 때
새로운 길로 너를 다시 들이렴.
길이 들여진 수동의 삶에서
너 스스로 길로 들어서는 능동의 삶으로
그 길위에서 다시 길이 들여지는 수동의 삶에서
또 다시 새로운 길로 너를 들이미는 능동의 삶으로.
그렇게
길을 들이고 길이 들여지고
길을 들이고 길이 들여지는.
너 자신을 들였다 빼내었다 들였다 빼내었다 하는
생의 본능적 힘,
생동으로 생기를 드높혀
생존하고 생성시켜라.
생업을 찾고 생장에 유리해져
생태를 확장시키고
생명을 생생하게 이어가라.
길들여진 채 스스로의 자체생명력이 소실되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둔자는 되지 말거라.
삶은 언제나 '자기 삶을 살지 않는 자'에겐 위기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현실에 들이민단다.
제발 자기 삶을 살라는 경고겠지.
세상이 하는 유일한 일은 '조화'니까.
자기 삶을 살지 않는 자는 조화에 일익(一益)일 수 없으니까.
본능에 너를 길들이고
그 길들임 위에서
길을 들였다 내었다 네 삶을 조타(操舵)한다면
넌 삶의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진부한 말이지만)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낼 수 있단다.
치즈와 토시와 모루가 사료에 길들여진 후 사냥감각이 없으니까
자기가 몇번 마주친 엄마에게 저리도 간절히 쫒아다니며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아.
본능을 잃은 생명.
사냥을 하는 본능을 유지한 채 가끔 사료를 먹어왔다면 어르신에게서 쫒겨나는 이 상황이 이들에겐 다시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 더 많고 다양한 먹잇감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지. 사람도 그렇겠지. 어느 날 회사에서 책상이 없어지는 사태를 맞이하더라도 그간 키워온 능력으로 자기만의 영토를 개척해낼 수 있겠지.
본능.
본유된 능력.
이는 누구에게나 있단다.
이를 보유하면서 '의존'할 때 의존해야 해.
처음부터 '의존'하는 삶은 본능을 써볼 기회조차 자신에게서 박탈한 너무나 위험한 선택이란다.
지금 잠깐 너를 멈춰세우고
너 스스로 지닌 인간을 너머선 동물로서의 감각,
생존력. 무엇이니?
너 스스로 타고난 인간으로서의 가치,
추구. 어디를 향하니?
이를 잃고서 부모에, 직장에, 사회에 의존해왔다면
잠깐 멈춰서 본능부터 되찾아 다지길 바래.
사냥본능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사료를 먹으란 말이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생존을 책임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위대한 것이란다.
사람의 탄생은 우주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이란다.
한 사람의 탄생과 생태는
그 사람의 생존의 힘과 시간만큼
세계의 변화에 기여하게 되니까 말이야.
너를 타인, 타물이 먼저 길들이게 하지 말고
너를 너의 본능에 먼저 충분히 길들이렴.
그 위에 다양한 경험들을 쌓으렴.
그러면 세상의 어떤 위기에서도 넌 충분히 느끼며 경험해본 본능의 힘으로
엄청난 가능성의 세상으로 널 진입시킬 수 있을거야.
현재에 안주하거나 편함에 길들여지고 만족감에 젖어 있는 상태.
너무 좋지. 물론 좋아.
하지만, 네 인생에 진입하고 싶어하는 가능성은 심하게 방해받고 있을거야.
네 인생에 새로움으로 진입하고 싶은데도 들어갈 틈이 없어지잖아.
아이야,
길들여진다는 것은 세뇌되고 중독된다는 것이야.
이럴 때,
옳은가?
나아가는가?
깨어 있는가?
이 3가지를 스스로에게 꼭 물으렴.
혹여 길들여진 것이 네가 옳은 방향이 아닌 곳으로 널 향하게 하거나 창조적 정신을 잠재운다면 얼른 그 중독에서 빠져나와야 해.
그건 그렇고.
엄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토시와 치즈와 모루에게 사료를 주어 본능을 앗아야 할까?
아니면 마음이 아파도 본능을 찾도로 외면해야 할까?
이 둘을 동시에 하며 서서히 본능적인 삶을 살도록 하려면 어찌 해야 하지?
어제 밤엔 눈이 많이 와서 먹이사냥이 쉽지 않을텐데.....
길들여지지 않게 그저 돌봄으로 머무를 수 있는,
안전한 손길은 어떤 손길일까.
엄마는 이 세 녀석에게...
사회는 너희들에게...
그리고
너는
너의 자아에게...
네 대답이 궁금해.
주1> 토시, 치즈, 모루는 우리집으로 올라오는 언덕부터 우리집뒤 텃밭까지를 자기영역삼아 터를 잡은 고양이들이다. 아랫집 어르신이 밥을 주니 그 집 마당이 녀석들의 집이었다. 녀석들의 이름은 필자인 내가 생긴대로 노랑이는 치즈, 조끼를 입은 듯한 녀석은 토시라 이름붙였고, 특히 모루는 아직 아가인데 어느 날 우리집 마당에서 날 졸졸 따라다니길래 그 인연이 신기해서 단단한 모루처럼 자라라고 이름붙였다.
주2> 니콜라스나심탈레브, 블랙스완, 동녁사이언스
# 이제 성인이 된 2아이를 위해 2년간 쓴 30통의 편지를 담은 책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919230
[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조용한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