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개월, 매일 쓴 글이 내게 남긴 것들

by 지담

글은 단지 쓰는 행위가 아니었다.

정신이 활자 이상의 부산물을 내게 선물한 행위였다.


2022년 8월부터 브런치에 매일 글을 발행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 며칠,

나는 지난 40여 개월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느닷없는 하루였다.

2019년부터 새벽독서를 이어오던 평범한 어느 날,

그 날, 글이 날 잡아챘다.

그냥 썼다.

그리고 폭포처럼 매일 쏟아져 나왔다.



에세이를 써본 적 없는 내가,

'독자'라는 대상이 존재하는 공간에

뭣모르고 써내려간 '기록'들은 어쩌면

'무식한 용맹'이었을지도,

'미지의 모험'이었을지도,

혹은, '나조차 어쩔 수 없는 갈구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니,

'글'의 세계는 바다처럼 방대했다.

쟝르가 있었고 구조도, 형식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갈 줄도 몰랐고

형식은 전혀 의식조차 못했다.


쓰면서 알았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그런데 괜찮았다. 지금도 여전히 괜찮다.


창작보다 먼저 형성된 형식은 횡포일 수도 있다고 여긴다.

구조를 모르니 내 글이 구조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몰랐고,

쟝르는 남들이 '에세이'라 알려주니 그런 줄 알 뿐이다.


그렇게 나는 그냥

쓸 뿐이다.

쓰면서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바다만큼 방대한 글의 세계에 나는 어쩌다 들어와 있다.

'어쩌다'지만

그 '어쩌다'가 운명같은 필연을 만드는지도 모르니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글로 꿈을 꾼다.



단순히 브런치에 글을 쓴 것뿐인데

글은 내게 많은 부산물들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사유하고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 알게 됐다.

파편적인 생각들이 사유의 길을 내고

사고는 사상으로 정립되어 가며

'무심코' 흘려보낼 뻔한 나의 이성이

기록의 역사가 되고 있다.


이제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날 선택하여 데려가는 느낌까지 드니

무식했던 용맹이 삶에 뒤쳐졌던 나를

삶 속으로 진입시켜준 것에 감사하다.


철저히 혼자였고

지독한 고립의 시간이었다.

쓰고 발행하고, 또 쓰고 발행하고

그렇게 매일 반복뿐이었다.



'독자'라는 개념도 없었다.

그러다가 구독자가 1천명을 5개월만에 넘었을 즈음,

'독자? 내 글에 독자가?'

독자의 존재와 존재의 귀함을 알게 됐다.


지금은

독자가 글벗이 되었고

글벗은 인연이 되었고

인연은 창조를 낳았고

창조는 미래를 열고 있다.


글이 내게 준 부산물 가운데 으뜸을 꼽으라면

40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던 존재를

기껏 40여 개월. 매일 반복하며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가치있는 방향으로 함께 걷는 동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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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를 사상의 바다로 데려갔고

나의 정체성이 일상의 구조속에서 제대로 숨쉬기 시작했다.

그 사상의 바다를 함께 항해할 동반자를 만났으니,

이제 나는,

바다로 뛰어내릴 필요도, 표류할 걱정도 없다.

선택할 필요없이 항해를 지속하면 된다.


이 바다에서의 유영은

번영을 이끌 것을 믿는다.


글은 단순히 '쓰는 행위'가 아니었다.

나를 시험하는 무대였고

나를 밀어붙이고 올리는 힘이었고

그렇게

나의 이성의 역사는 기록되고 있고

게다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까지 주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쾌락을 주는 놀이라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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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조용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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