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인형

by 지담

왜 나만 까만 머리에 까만얼굴이었을까?

예쁜 언니와 더 예쁜 동생은 둘 다 금발에 하얀 피부였는데.


울음으로 끝난

어릴 적 기억 하나를 꺼낸다.



어린 시절 우리집 2층엔 당시 대학생이었던 막내삼촌이 사셨다. 6남매의 둘째였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한참 어린 막내동생을 데리고 사셨다. 고등학교도 보내고 대학도 보내셨다. 지금 아들의 나이였던 당시의 삼촌은 장난이 아주 심했다. 그 대상은 언제나 나였다.


내 기억은 항상 삼촌의 장난에 울었지만 그 뒤를 기억하지 못한다.

울고 난 다음은 지워지고 없다.


해질 무렵 삼촌이 잡아 흔들던 박쥐때문에 나는 울었고

까만 인형을 받아든 날도 그랬다.

기억은 늘 울음끝에서 멈춰 있고

나는,

나를 울렸던 사건이 남긴 감정만 부여잡고

어른이 되었다.




어떤 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삼촌은 큰맘먹고 산 선물이라며 우리를 불러 모았다.

바비인형.

당시 10살, 8살, 5살 여자아이들을 홀릴만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삼촌 앞에 쪼로록 앉아서 포장이 풀리길 기다리다

짠! 하고 드러난 벌거벗은 3개의 인형 앞에서

나는 엉엉 소리내서 울고 말았다.


언니와 동생의 것은 금발의 하얀피부,

내 것은 흑발에 검은 피부.


무엇이 그 어린 아이에게

예쁨과 미움의 절대적 편견을 넣었는지

어른인 지금도 모른다.

어떤 환경이든 시선이든

그것을 초월하여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어린 내겐 없었다.


사실 그 때를 생각하면 어른들이 원망스럽다.

흑인도 백인도 본 적없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왜 경계부터 생겼는지 난 억울하다.

하지만 지금의 억울함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어린 나는 더 억울해하며 울었던 것 같다.


왜 나만 까만인형이냐고.

왜 언니는 예쁘고 난 밉냐고.

왜 나는 미운 선물을 받아야 하냐고.


따지지도 못하고 펑펑 울게만 내버려둔 어른들에게 억울하다.

그렇게 운 뒤의 기억들이 지금 나에게는 없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절대적 비교들.

그 날 이후 나는

사랑의 중심에 서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 누구라도

'이 인형이 가장 귀해'라고 말해 줬더라면,

나중에라도 내게 하얀인형을 사줬더라면,

그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고 말해줬더라면.

억울함이라는 감정은

비교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조금 일찍 알 수 있었을까.

사랑과 억울함을 연결짓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억울함'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정이다.

해소되지 않는 분통감.

해소시키지도 못하는 나의 능력.

시작이 그 때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삼촌의 장난은 8살 여자아이가 사는 내내 전쟁을 치르게 한

감정의 씨앗이었다.


나는 항상 주는 것에 익숙하다. 받으면 체할 것 같다. 칭찬을 받아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야 하고 잘못한 것이 없어도 굳이 내 잘못을 찾아내어 먼저 사과해야 한다.


그렇게 내 존재를 상대보다 격하시키는 것이 내가 중심이 되는 방법이었고 사랑받는 길이었다. 남보다 못하면 날 싫어할까봐 이겨야 했고 역할은 해야할 것보다 더 많이 떠맡아 해내야 했다.


잘 해야만 사랑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어리석음은 그렇게 내 안에서

나의 존재를 갉아먹으며 몸집을 키워갔다.



수도꼭지.

별명은 나를 대변한다.


감정은 곧바로 눈물로 표현되었지만

눈물을 호소하고 설명할 줄은 몰랐다.

겉으로 흐르는 눈물은 의미를 속으로 응축시킨 채

아무렇지 않게 뚝 그치고 일어서야 하는,

나는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어른이 되어 갔다.


편견을 절대치로 내 속에 넣은 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편견을 상대적 감정으로 키워버린 나를 풀어주지도 못한 채

나는 어른으로 살아간다.

가족 안에서도 사랑의 허기를 채우지 못하던 나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 흑인인형 앞에서 엉엉 울던 내가 생각난다.


그런데

검은 것은 인형이 아니었다.

차별도, 상처도 아니었다.

비교 속에 갇힌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지 못한

나의 눈이었고

사랑받지 못한다고 숨은 아이를 꺼내주지 못한

나의 손이었다.



언니랑 가끔 어린 시절 대화를 하면 네가 맞니, 내가 맞니 한다. 같은 시간 다른 기억으로, 결코 확인할 수 없는 사실앞에서, 그래도 부여잡은 내 기억이 맞아야 하는 이유는, 지금 나는 그 기억들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 기억으로 버텼고 저 기억으로 아팠던 시간들이 소용없어지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 해석으로 세워졌다 해도 그 해석 위에 서 있는 존재가 지금의 나다.


검은 기억도 사실과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기억이 눈이 되고 손이 되었다면 이제 씻어내야 한다.


아이는 어리석지 않았다.

경쟁하지 않아도 사랑스러웠고

굳이 중심에 서지 않아도 이미 중심을 아는 아이였다.


기억이 사라진 울음의 끝은

사랑받지 못한 증거가 아니라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구하며 흐르게 할 줄 알았던 작은 힘이었다.


지금,

속눈썹이 길었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그 검은 인형이 지독하게 그립다.

사랑을 너무 진지하게 믿었던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는 그 인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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