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꼬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한다.
며칠 전 글을 쓸 때,
'하루'가 '하류'가 되더니
방금 전엔 '오늘'이 '노을'이 되었다.
'ㅜ'가 바로 옆 'ㅠ'로 갔고
'ㅇ'과 'ㄴ'이 꼬이면서 오늘이 노을이 된 것이다.
내 하루가 하류가 되면 안되는데 싶어 피식 웃었고
오늘이라는 전체는
노을이라는 하루의 끝에 이뤄지는구나 싶어
글보다 먼저 다가온 언어에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자판으로 잠깐 놀아봤다.
사랑이 사망이 되고
미움이 미음이 되고
가지는 자기가,
길이가 일기가 됐다.
딸아이 어렸을 때 머리를 네 갈래로 땋아줬다.
3갈래 땋기의 마지막 단계에서 미리 남겨뒀던 4번째 가닥을 합쳐주면 훨씬 촘촘하고 이뻤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옷도 직접 떠서 입혔다. 임신했을 때 취미삼던 뜨개질은 어느 새 아이들 옷을 직접 떠 입힐만큼 실력이 늘었다.
오늘이 노을로 바뀌는 순간,
나는 아이 머리를 총총 땋고
이 실, 저 실 바꿔가며 무늬를 넣었던 그 때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논문쓰고 강의하는 것으로 머리 속이 꽉 차 있으면서도
그렇게 나는 매일 손으로 뭔가를 만지작대며 살아왔다.
손은 손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때론, 머리보다 손이 기억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오늘이 노을이 되는 것처럼 요즘 나는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손가락이 자판을 먼저 두드리고
생각은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다.
몸이 먼저 길을 내고
생각이 그 뒤를 따르고
의미는 가장 늦게 입혀진다.
두어달 전부터
자판에 바로 글을 쓰지 않고 종이 위에 펜으로 글을 쓴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손은 이미 종이를 채우고 있고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뒤늦게 문장사이에 의미를 보탠다.
꼬인 손가락은
오늘을 노을로 만들었지만
그 덕에 하루의 전체는 하루의 끝에 달려 있다는 의미가 생겼다.
꼬인 손가락은
실을 두번 꼬았지만
그 덕에 아이 옷엔 도드라지게 볼륨감있는 무늬가 새겨졌다.
꼬인 손가락은
3갈래 머리를 4갈래로 꼬았지만
아이의 땋은 머리는 친구들의 부러움이 되었다.
의미있는 것만이 시작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손이 먼저 길을 내고
그 뒤를 따르는 의미가
더 깊기도 하고
완전히 새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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