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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럴 때 화가 나는구나.

'화'에 대한 소고

by 지담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이는 바로 나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자신을 없애고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나는 나를 먼저 챙기고 싶어졌고 그러다 나를 탐구하는 지경까지 이르러 일정기간 외부와의 의도적 단절을 통해 나를 탐구중이다. 그래서, 살살 달래서 나를 나에게 보여주도록 유도하고 요리조리 나의 기분도 잘 살피고...여하튼 나는 늘 나와 잘 지내려 노력한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통해 인간본성의 수많은 요소들이 드러나고 이 하나하나는 본 매거진에 적힌대로 70편이 넘는 글로써 풀어지고 있다.


매일 매일 내가 어떻게 사고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지향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을 보고 빠져 있는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이 느낌은 무엇인지, 이 감각은 어디서 온것인지 등등 그렇게 온통 나 자신과 티격태격 옥신각신 하루를 보내고 나서 자기 전에는 하루동안 나는 나를 얼마나 키워냈는지 키재기도 해본다.


그렇게 나를 탐구하며 하나씩 적어나간 것들 가운데

나는 이런 면에서 유독 화가 나는구나를 알게 되었고

오늘은 나를 달래는 차원에서, 마치 오래 묵은 감정을 솔직하게 서로에게 털어놓듯

나도 나에게 나 좀 알아달라고, '나는 내가 이럴 때 화가 난다고!' 털어놓고 나에게 이해를 구하려 한다.


매일 새벽독서하는 나에게서

분명히 한글을 알고 문해력은 남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무식함이 발견될 때

읽으면서도 자꾸만 뒤에 두껍게 남은 책장을 뒤적이며 한숨쉬는 한심함이 발견될 때

눈앞에 책이 있고 의자에 깊숙이 엉덩이를 쳐박았는데도 도통 정신이 자리를 못잡는 산만함이 발견될 때

그 시대 최고 지성인들의 글 앞에서 이 작은 머리로 비판하려고 덤비는 건방짐이 발견될 때

정신이 조금 이른 지점에서 만족감에 기지개를 펴며 오늘은 여기까지만..하려는 자만심이 발견될 때

책 속의 작가들의 글발이 마냥 부러워 지금 내 위치를 파악못하고 흉내내는 무모함이 발견될 때


혼자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나에게서

배도 안 고프면서 다른 욕구가 뭔지 몰라 먹는 걸로 해결하는 미련함이 발견될 때

영화광이었던 기억과 타협해 '영화는 괜찮겠지?'라며 의미없는 영화로 시간을 떼우며 시간낭비할 때

치열했는데 그만큼 보상이 없다며 단념하려거나 또는 오히려 나를 더 닥달하는 비겁함이 발견될 때

분명 오지 마라 해놓고 진짜 안오나? 이리저리 망설이며 머리굴리는 극소심함이 발견될 때

일부러 혼자를 택했는데 외로움이 밀려와 이해타산을 따지는 질투심이 발견될 때


글을 쓰는 나에게서

소재가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새로운 곳을 보지도 발길을 돌리지도 않을 때

책에서 딱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발견하곤 질투심에 책을 덮어버리는 옹졸함이 느껴질 때

육체가 정신을 이겨먹으려는 순간인데도 정신이 정신못차릴 때

쥐어짜내도 글이 안나와 맨바닥이 드러날 때

자연은 모든 것을 제공한다는 이치대로라면 이래서는 안된다면서 자연에 오만방자할 때

써놓은 글을 보며 혼자 감탄하고 혼자 감동하며 혼자 감흥에 젖는 주책을 부릴 때

분명 며칠 전 내가 쓴 글인데 무슨 말인지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과 만날 때

분명 더 쓸 수 있는데 조금만 힘들면 거기서 딱 멈추는 나약함과 안이함이 느껴질 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나에게서

나에게 진심을 다하는 조언인 줄 알면서도 속으로 가나다라마바사아를 되풀이하는 자존심과 딱 마주칠때

보여지는 것으로만 판단해 버리고선 딱 거기까지만 상대를 대하려고 경계할 때

상대의 곤란이 예상되는데도 미워서 말해주지 않는 치사함이 발견될 때

나를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표안나게 말할 찬스를 찾는 조바심에 쩔어있을 때

모르면서 아는 체,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 비겁함을 알면서도 내 정신이 나를 냅둘 때

미안한 맘 가득하면서도 굳이 상대의 잘못과 상계처리하고 내 정당함을 계산하는 심보가 드러날 때

내가 해준 게 어딘데? 하며 본전생각에 상대방을 일부러 미워하려 작정할 때

말도 안해놓고 내 속내를 몰라준다며 상대에게 말도 못하면서 속으로만 토라질 때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 관계를 스스로 차단하려 벽을 만들 때

'사랑'이라는 착각에 빠져 또 다시 정신이 오지랖을 부리는 경거망동이 시작될 때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는 지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변명뒤에 숨어

어찌하지 않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변명하며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속에 한참을 숨어지내는

내 정신과 육체에

나는 화가 난다.


그래서,

나는 더 자라야 하고

더 커져야 한다.

더 쌓을 것이 아니라

아직도 버릴 것이 많은

나에게 나는 화가 난다.


나는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말이 점점 없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나에게 너무 지독한가? 싶어 나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져야겠다 싶기도 하고.....

그런데 뭐든 애쓰지 말자, 흘러가는대로 냅두자

이 감정이란 녀석도 지금 내게 필요하니 내 안에 눌러앉은 것일테고

내게 필요없다 판단되면 저 알아서 나가겠지.

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니 그냥 냅두자...

그래도 내가 나에게 솔직히 털어놨으니 내가 나에게 이해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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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독서 #지담북살롱 #김주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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