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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an 26. 2023

말과 글을 이제서야 배웁니다.

'글'을 쓰시는 분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 오늘은 늘 써오던 매거진이 아닌,  '글쓰는 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이 있어 나누려 합니다.^^


언제부턴가 릴케에게 푹... 빠져 버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 젊은 시절에는 그가 여성인 줄 알았고

지금은 그가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인 것은 알지만 

그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가 남성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의 글 전반에 넘치는 여성성...

섬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디서 그렇게 아름다운 어휘들을 골라서 오는지...


<말테의 수기>는

릴케가 로뎅과 1년 살다 헤어진 후 파리에 오면서

대도시의 폐허와 침체에 환멸을 느끼며 수기형식으로 쓴 글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서평이나 그것에 대한 나의 감정을 적는 것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폐허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수기를 써내는 그의 천재적인 표현력에 지금의 감탄을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어졌다. 


나도 배우고 싶다.

로댕에게 릴케가 배운 것을 나도 배우고 싶다.


하나의 생명을 보는 조건을 구비하기 위하여 끈기있게 내면적으로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을,

무겁게 닫혀 있는 사물의 압력에 견디고 경건하게 그 내부에 들어가는 것을 통해

요설(饒舌)과는 정반대의 침묵 속에서 보는 방법을 터득한,

나도 배우련다.

끈기있게 내면적으로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을,

사물의 압력을 견디고 그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통해 침묵으로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부터 조금만 더 들여다보자....

그렇게 하면 나도 배워 습득할 수 있겠지.


감탄해마지않는 릴케의 책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그리고

<말테의 수기>정도 읽었고


아직 그의 시는 내겐 조금 어렵다.

로댕이 그에게 '동물원에나 가보시오' 해서 탄생한

그 유명한 '표범'에 엄청 감동받고 나도 그 길로 동물원으로 달려갔었지만 나에게선 아무 것도 탄생하지 않았다.

나에겐 그와 같은 깊이의 시선이 없었던 것이었고

그래서, 동물원에 가보길 잘했다고 여겼다.

아. 나는 깊이 있는 시선이 부족하구나. 를 알게 되었으니.


일찌감치 완성된 이들
그대들, 창조의 총아들
산맥들, 모든 창조의 아침노을에 물든 산마루를 활짝 핀 신성의 꽃가루들,
빛의 마디와 굽이들,
통로며, 계단이며, 옥좌며, 존재의 공간들, 기쁨의 방패들,
폭풍처럼 휘몰아 사로잡는 감정
그리고
홀연,
홀로
흘러나갔던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다시 스스로의 얼굴에 다시 거두어들이는 거울들...


<말테의 수기>를 탈고한 직후 탁시스 부인에게 아드리아 해변의 두이노성에 초대받아 탄생시킨

그의 시, <비가> 시리즈 가운데 <제2비가>에 담긴 시다.


시를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나 부족하지만

흘러나갔던 아름다움을 다시 나에게로 거두어 들여주는 

대자연과 인조된 모든 것을 포착된 '거울'이라는 한 단어에 모두 담아내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파했을까..


왜 이해도 못하면서 그의 치열함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왜 가슴이 아프고 

왜 이 글이 이리도 고마운지...


나에게서 나도 모르게 홀연 흘러나간 나의 아름다움이 다시 거둬질까...


그의 시는 좀 더 읽고 싶다.

형상시집과 기도시집, 그리고 신시집까지.

모두 읽어버리고 싶다.

시적이해가 현저히 부족한 내가, 

읽기는 하겠지만 

가슴으로 이해하기 버거울 것 같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하다. 


<말테의 수기> 마지막 2장을 남기고 이 글이 날 사로잡았다.

릴케가 요 몇달 날 유심히 관찰하고 쓴 글같아서 나는 놀라고 고마웠다.


나는 늘 말하고 살았는데, 나름 말 잘한다 싶었는데 말하기부터 골치아팠고

말 그대로 첫문장쓰는데 일생이 걸리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현자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으나 행복을 인내의 납덩이로 바꾸도록 나는 늘 나에게 강요했으며

책상앞에 나를 붙이고 출구도 방향도 다 가로막아버린,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미로속을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는 늘 사랑하고 사랑받는 줄 알았는데 

'사랑'이라는 단어의 깊이에 대해 이제서야 알게 되는....


그에게 나를 훤히 들켜버려 새벽내내 어찌나 눈물이 흐르던지...

나 역시 그가 말한대로 '나의 일', '나의 사랑'을 한번도 시작한 일이 없었다는 이 말을 거부할 수가 없어서

또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치고 올라오는 기억들에서 도망치려, 도망치려는 기억들을 부여잡으려 또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말을 배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놀라는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아무 뜻도 없는 짤막한 허위의 첫 문장을 쓰기까지 일생이 걸린다는 것을 처음에는 믿지 않으려 했다.
그는 주자가 시합에 나가 뛰듯 이 말을 습득하는 데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 뛰는 속도를 지연시켰다.
초보자보다 더 굴욕적인 것은 생각해볼 수가 없었다.

그는 현자의 돌을 발견했으나,
빨리 만들어진 그 행복의 황금을 인내의 납덩이로 바꾸도록 끝도 없이 강요당했다. 
스스로 공간에다 자신을 적응시킨 그는 출구도 방향도 없는 미로를 벌레처럼 기어나가야 했다.

이제 그가 몹시 애를 써서 고통스럽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 때,
지금까지 그가 이루어왔다고 생각한 사랑이 모두 얼마나 부족하고 미미하였는지 드러났다.

그것은 무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일을 하기를,
사랑을 실현하기를 시작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 릴케, 말테의수기


생의 긍정과 죽음의 긍정을 일체로 풀어내며

사물의 통찰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는 죽음에 있어서까지 전설을 남겼다.

그가 직접 자작(自作)한 그의 묘비명을 읽으면서 그가 생전에 인식했듯이 두 세계에 걸쳐 존재하며 수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장미의 기꺼운 잠을 자고 또 자고 있는 그에게


요 며칠 당신과 함께여서 너무나 황홀했다고,

당신 책을 접할 때마다 내 언어의 보잘것없음이 한탄스러웠지만 

당신으로 인해 나는 언어의 격이 다른 차원의 세계를 경험했다고.

당신의 세상에서 당신이 들여다보는 그 특별하게 깊이있는 시선에 난 항상 감탄했다고. 


장미꽃이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로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꺼움이여.
-릴케 자작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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