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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Feb 11. 2023

글쓰는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맘으로 이 글을 씁니다

소로우의 일기

훌륭한 문장은 어쩌다 우연히 쓰여지지 않는다.

글에는 어떠한 속임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쓴 최상의 작품은 그의 인격의 최상을 나타낸다.

모든 문장은 오랜 시련의 결과이다.

속표지에서 책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속에는 저자의 인품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이는 저자라도 교정볼 수 없다.

작가만의 특징이 담긴 육필을 읽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때 장식적인 측면에 구애받아서는 안된다.

- 헨리데이빗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감히

저의 자세도 이와 같다고 말씀드립니다.

글을, 말을, 책을 대하는 제 마음이 이 방향으로 서 있습니다.


글과 말은

나를 세상에 노출시키는 도구일뿐, 그 자체가 '나'입니다.

노출은 세상속에 섞이는 것이며

섞임은 무언가와 연합되는 것이며

연합은 그리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기에

나의 말과 글에서는

꾀도, 요령도, 묘수도, 잔재주도, 억지도,

모두 체에 걸러야만 합니다.


가끔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거나

의지는 있는데 잔꾀를 부리거나

비상한 머리가 요상한 재주에 쓰이거나

미숙한 재능에 요란한 포장을 씌운

소리가 귀에 들리고

눈에 읽히곤 합니다.


이는

내 옆의 한 사람은 속일 수 있을 지 모르나

바로 당장 눈앞은 가릴 수 있을 지 모르나

오히려 이 작은 꼼수가 몸집을 키워

저 멀리 어느때 어디서 나를 향해 날아들지,

정작 무서운 것이 무서운 줄 모르는 처사입니다.


세치혀가,

꼼수부리는 손끝이 세상에 나가 부피와 질량을 키워 내게로 올 때

잔꾀와 농락과 치장에 익숙해진 나라면 아마도 감당하지 못할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기에

애초부터 그런 씨앗은 심지 않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세상이 내게 보내는 신호는

결코 예정된 시간없이

결코 보이는 앞이 아니라 볼 수 없는 옆과 뒤에서 등장하니까요.


진실과 진정이 담긴 가치가 세상에 나가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나와 함께 머무는 시간속에, 바로 옆 사람속에, 한글자한글자 내 손끝속에, 그리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내 눈빛속에, 담아내는 내 가슴속에, 그리고

비틀거리는 내 걸음속에

그대로 담겨져 어느 틈새로 서서히 전해지다

언젠가 날 눈여겨보던 신이 '때가 됐다.'며 뚜껑을 활짝 열어줄 때

켜켜히 쌓여 숨죽이던 '나'의 분신은 온세상으로 퍼져나가겠지요.

 

바로 내 옆, 오늘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알면 됩니다.

나의 글과 말과 행동이 같은 방향으로 서로 맞잡고 걷는다는 것을요.

날 가장 잘 아는 이가 진심으로 '나'의 인간다움을 인정한다면

신은 반드시 나의 창고를 방문하여 적절한 때에 뚜껑을 열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이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나는 글쓰는 자격을 스스로 박탈해야만 옳습니다.

글은 아무리 비상한 재주로 나를 숨겨도 그림자로 드러냅니다.

글은 아무리 짙은 어둠으로 장막을 쳐놔도 행간이 말해줍니다.

글은 아무리 무지개빛으로 치장을 해놔도 깊이로 가늠됩니다.


'드러나는 글과 말' 속에 '감춰진 가치'가 없다면

마치 포장만 화려한 선물상자처럼

받는 이를 허무하게 심지어 우롱하는, 게다가 읽고 듣는 수고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포장이 다소 허술하고 어눌해도 그 속에 '애써서' 무언가를 담으려던 흔적이 있다면

상대는 예리한 감각으로 그것에 눈물흘리지 않을까요?

내 글과 말은 누군가를 상대로 나의 선물을 건네는 것이니

나의 선물에는 나의 진심이 담겨야 하는 것입니다.


글과 말이 세상과 만나면

순식간에 여기서 저기로 날아가버립니다.

글과 말을 내가 세상에 내보내는 순간

나에게서 창조된 것이기에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로 돌려야 맞습니다.

글과 말이 바이러스처럼 세상에 침투했을 때

인간 개개인의 관념은 벽을 허물고 다시 새로운 벽을 쌓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글과 말은 이롭기도, 해롭기도 한

아주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너무 위험하여 조심스러우며

조심이 지나쳐 매사에 불편합니다.

하지만, 이 불편이 사라지는 순간 나는 오만과 거짓에 노출된 것이기에

기꺼이 이 불편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닐까요?

의미없이 쓴 글 한줄, 재미삼아 내뱉은 말 한마디, 어쩌다 그리 해버린 행동 하나.

이 사소한 것들이 시간속에 담겼다가

먼 훗날 신의 정확한 계산에 의해 영수증으로 인정받거나, 계산서로 다시 청구되거나.


나에게 글과 말은, 그리고 책으로 얻는 사고까지

이 사유의 길은

정직하면서도 유연한,

강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영리하면서도 순수하고,

멀리 보지만 가까이를 놓치지 않는,

많이 담지만 더 많이 버리고,

침묵하지만 눈으로 모두를 쏟아내는 그런 길이려 합니다.


때론 거짓이 양념처럼 첨가되더라도 이것이 참으로 가는 인과를 위해서라면

주장은 설득이 되고

오해는 이해가 되며

타협은 일체가 되고

독단은 용기가 되며

모순은 진리로 승화될 것입니다.


나는 사회질서나 인류, 시대를 위해 그 무엇도 공헌할 인물은 못되지만

그저 나 하나 만족스럽게 살고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삶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이 다시 태어나 '기꺼이 지금처럼' 살고 싶어진다면,

나는 충분히 세상에 내 몫 다 하고 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

미미한 나는 소소한 글로 좁디좁은 사유의 길위에서

가짜말고 진짜를 위해 치장, 포장 다 걷어치우고

'닮고 싶은' , '다시 살아도 좋은' 나만의 기간을 보내자는

이 단순한 바람을 가슴에 품어봅니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장엄한 걸음을 걷는 것도

유창한 주장이 있는 것도

내세울만한 철학을 지닌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독한 시간을 사색과 사유로 나를 찾는 나를 볼 때,

어쩌면 내 인생이 진주품은 조개의 일생을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당돌한 자만도 가슴에 심게 됩니다.



* 아래는 말과 글에 대한 저의 견해가 담긴 글들입니다.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265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285


* 헨리데이빗소로우, 소로우의일기, 윤규상역, 1996, 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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