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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Feb 22. 2023

큰 시야와
작은 시선이 함께여야.

'소로우의 일기'

소로우는 참 나와 비슷하다.

아니, 내가 소로우를 닮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가 쓰는 글은 전부 나를 위한 글처럼 읽히고 그가 추구하는 것이 나의 추구와 상당히 비슷해서 나는 그의 일기가 마치 내가 쓴(쓸) 일기같이 느껴진다.

내가 소로우를 곁에 두는 이유다. 

배우고 따르고 싶은 이유며 그처럼 살고 싶은 이유다.


오늘도 소로우는 나를 크게 반성케하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 잘못을 행하고 있는지를 꼭 짚어서 알려줬다. 

나는 사람들의 일상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들이 뭘 먹고 어디를 가고 왜 웃는지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나로 인해 나는 사람만나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항상 먼저 자리를 뜨거나 대화에서 침묵하거나 애써 자리의 숫자를 채워주는, 그저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나다. 나는 그렇게 남들의 일상에 관심없는 내가 왜 그럴까에 대해 고민해봤지만 해답도 없었고 그저 나는 그런가보다.를 고민거리로 남기지 않았는데 내가 부족했던 부분을 소로우는 이렇게 알려준다.


그렇다고 나는 돌다리를 수선하고 있는 저 사람들 옆을 지나가기를 꺼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시(詩)는 없는지, 또 나의 반성의 재료는 없는지 알아볼 것이다. 숲과 들 등 자연의 광대한 모습만을 보려는 것도 일종의 편협함이다. 위대한 지혜는 사람들의 일상과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편협했던 것이다. '고립'을 원해서 그것으로 자위하며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세상 속 어느 언저리에 머물려 했다. 아니, 영원히 그리 살길 원한다. 지금도. 그렇게 선택한 삶이다보니 내 곁에 머무는 이들에게만 지독하게 관심이 깊고 그들과의 대화에 열을 올리고는 있으나 돌다리를 수리하는 누군가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저 길가에 핀 민들레보다도 나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나의 눈이 더 날카로워지려면 크게크게 보려는 큰 시야와 함께 더 세심한 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시선도 필요함을 느낀다. 무관하지만 연결되어 있음을 나 스스로 알아내야 하고 무관한 이들에게서 나를 들여다보며 나를 통해 그들의 일상이 보여지는, 그렇게 나의 글은 나와 모두를 연결지어 공감을 끌어내는 글이라면 좋겠다. 


지금의 말보다는 더 멀리서 말할 수 있는 통찰의 시선으로

상세한 설명보다는 추상적인 울림으로 실체를 그려내는 시선으로

하나를 묘사하기보다는 전체가 연결된 그 지점에서 하나를 포착하는 시선으로

대부분이 아는 단어로 이해시키려하기보다는 내가 창조한 언어로서 보편으로 스며드는 시선으로

적당히 거론해도 무방하다 판단되더라도 읽는 이들의 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영혼의 시선으로

나의 글이 나아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조금은 다른 곳으로, 조금은 먼 곳으로, 조금은 낯선 곳으로, 조금은 불편한 곳으로 내 다리를 옮겨봐야한다. 너무 편하고 안락하게만 지내는 요즘, 내가 '외출'이라는, 굳이 명목이 없어도 '외출'을 해보겠다는, 남들이 들으면 '뭔소리?'라고 반문하겠지만, 나에게는 내 공간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발길을 내미는 것이, 내 시간을 이.유.없.이. 쓰는 것이 낯선 것이기에 낯선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보려 한다.


분명 나는 

이상과 현실이 먼 거리에 존재함을 안다. 

경박한 삶과 신성한 삶의 거리가 먼 것도 안다.

내 가까이의 일상과 어떤 의도를 품은 인생이 먼 거리라는 것도 안다.

'지금의 나'와 '내가 원하는 나'도 자로 잴 수 없는 먼 거리에 서있다는 것도 안다.

무심한 것과 신성한 무관심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정신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도를 분절시켜 나아가지 않으면 전체 궤도를 이어갈 수 없기에

이것을 무시하면 저것으로 연결시킬 수 없기에

여기서만 보면 더 큰 시선의 의도를 담아낼 수 없기에

일상을 즐기는 편협은  거대한 조화를 방해할 수 있기에


전체의 시선으로 보지 못한 상세한 날카로움과 

우주의 시선으로 점하나를 응시하여 얻은 날카로움은

주장과 아집에 머무를 것인가, 주장을 설득으로 아집을 고집스런 사상으로 초월시킬 것인가의

경계선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할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소로우처럼 나의 일상에서 작은 일탈을 해보련다.

일탈 속에서 

무관심한 것으로 애써 눈길주고

낯선 것들에 애써 귀를 기울이고

드문 것들을 귀하게 들여다보며

그 것들이 주는 사랑과 아름다움에 내 가슴이 어떻게 진동하는지 나는 느껴보련다.


내 시야에 다 담지 못하는 하늘의 시선으로

내 발밑을 기어가는 개미의 걸음에 찬사를 보낼 것이며

내 시야를 모두 채워버리는 바다의 시선으로

내 발밑의 작은 물방울의 앙증맞음에 폴짝 뛰어볼 것이며

내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저어기 먼 달에게 내 눈을 허락하여

내 옆에 지나가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에 감동할 것이며

내 시야에 담아본 적 없는 땅속 깊이 내려진 뿌리의 끝에서

내게 포착된 새싹의 강인한 신비로움에 경탄할 것이며

내 시야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누군가의 시선으로 

내 앞에 있는 이의 하얀 치아에 나는 함께 환할 것이며

내 시야에 단한번 보여진 적 없는 내 글을 읽는 모두의 시선으로

내 세포 곳곳에서 꿈틀대는 사소함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점점 큰 시야에서

점점 작은 시선에 날카로워지는,

그런 글의 창조자이고 싶다.


* 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1996, 윤규상역, 도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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