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 사고'에 대한 소고
자기비난(self-reproach)은 고통스럽지만 바로 그 고통이 자아가 아직 온전하다는 뚜렷한 증거다.
- 올더스헉슬리 '영원의철학'
우리는 너무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 한다.
그런데 그게 잘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내 안에서 치밀고 올라온 것들로부터 도망치는 꼴을 면하기 어려우니까.
긍정적으로 나를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회피나 외면은 결코 도움되지 않는다.
해석. 해내야 한다.
나에게서 나를 비난하는 내면의 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고마워해야 한다.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비난받지 않을지
그리고,
나를 비난할 용기를 스스로 안다는 것이니까.
또한, 아는 데도 그리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며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 자체가 긍정인 것이다.
자기비난은 이렇게 시작부터 커다란 가치를 품고 시작한다.
유난히 자기성찰(비난이기도)이 심한 내가 이러한 사고를 갖게 된 것에
나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크다.
자기비난이 감사한 마음을 갖게 했다.
자기비난을 해본 사람은
자기를 알게 된 것이고
안다는 것은 자기를 해석해냈다는 것이다.
자기해석이 등장하는 순간 자기비난은 자기비판으로 승격된다.
비난받아 마땅한 자기를 비판해낸 사람은
자기가 가야할 방향을 알게 되며
그리로 가기 위해
자기극복으로 자신을 이끌려 한다.
극복은 극복해야 할 것이 존재하기에
자기의지와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기존, 즉, 극복전의 자기를 파괴할 용기를 갖는다.
자기파괴를 통해 기존의 자기를 없앤다.
자기살해다.
그리고 극복된 자신을 얻는다.
자기극복은 새롭게 정화된 자신을 알게 한다.
이러한 자기정화는 차원이 달라진 자신을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내적 성숙은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킨다.
즉, 자기변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렇게 자기변화를 성공해낸 사람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내는
성숙한 자기존재감을 지닌 존재가 된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려 애쓰지 말자.
감정이 아닌, 이성의 해석을 해야 하고
애씀이 아닌, 연역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렇게 관점만 바꿔 내 이성을 사용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자기비난'의 가는 길에 따라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부정은 자기긍정으로,
자기파괴는 자기정화로,
자기비난은 자기비판으로,
자기함몰은 자기변화로,
자기정체는 자기극복으로,
진정 긍정적인 사람, 긍정적인 인생으로 전환된다.